권영자(70) 할머니는 월성 원전이 있는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산다. 슬하에 자식이 4명 있는데, 아들 한 명과 같은 동네에 산다.
60대였던 남편은 8년 전쯤에 위암 판정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아들(41)은 6년 전쯤에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권 할머니 자신은 3년 전 폐암 수술을 받았다. 외지에 나가 사는 나머지 자식 3명은 모두 건강하다. (☞관련 기사 : 월성원전 주민들 "여그 암 환자 없는 집 있나?")
권 할머니는 해녀다. 1983년 월성 원전 1호기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뒤에도, 30년 가까이 인근 바다에서 물질을 했다. "미역, 전복도 캐 먹고, 우리 아들한테도 몸에 좋다고 (전복을) 많이 먹였지."
할머니는 남편과 아들, 자신에게 왜 암이 왔는지 모른다. 원전 때문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지만, 월성 원전 홍보관에 표시된 방사능 수치는 항상 극미량이다.
확실한 것은 원전 때문에 해녀들의 생계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바다에서 뭘 캐 와도 상인들이 안 사갔다. 집에 팔리지 않은 미역들이 쌓여갔다. 채소를 키워도, 주변 사람들이 먹지를 않았다. 상처도 많이 받았다.
"우리 아(자녀)들은 먹는데, 내가 캐 가 공짜로 갖다 줘도 아들 이웃 사람들은 안 먹어. 핵(방사능 물질) 나온다고. 쓰레기통에 버린다 아이가."
할머니는 2011년 암 수술 이후 물질을 그만뒀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했지만…
면장이 나와서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당시 한전에서 운영하던 원전에 아들들을 다 취업시켜주겠다"고 달랬다고 했다. 그 말을 믿었다. "위에서 주는 대로 땅값을 받고" 나왔다. 월성 원전 1호기를 짓기 전인 1976년에 논 한 평에 당시 돈으로 2500원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아들을 취업시켜준다는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아들은 외지로 나갔고, 정 할아버지 홀로 남았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정부 하는 사업이라고 하믄 '하는가' 했지. 요새는 시위라도 하지. 그때는 그런 것도 못 했지. 자식들 취직시켜준다고 해서 좋아했지. 즈그들이 다 뽑아 놓고, 시험만 치고 '면접 떨어졌다' 카데."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원전이 생기면 지역 더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배운 사람들이 하는 말이니 촌부들은 믿고 살았다"고 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나아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최관두(69) 씨는 "언젠가는 지상 낙원이 되겠지 했는데, 아니었다"고 했다.
"사고 나면 죽는다"
원전이 고장 났다는 보도가 언론을 장식하고, 방사능 위험이 알려지면서 소문이 흉흉해졌다. 한수원 직원을 제외하고는 외지인 방문도 뜸해졌다. 이 지역에서 난 채소와 해산물은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우린 못 배워 가 (원전이) 나쁘다, 좋다 모를 때, 외지 나간 사람들이 더 빨리 알았다 아이가. 신문 보고 똑똑해서."
땅을 내준 지 38년이 지난 지금, 정 할아버지는 나아리를 벗어나고 싶다. 아내도 세상을 떠나서 고향에 미련도 없다. 정 할아버지뿐만이 아니다. 원전이 아니었다면 땅이나 부리고, 고기를 잡았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제는 떠나고 싶다 했다. 친척들이 찾아오기 꺼리니 쓸쓸하다 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난 뒤로는 원전 근처에서 살기가 더 불안하다고 했다.
"우리가 그때 국가를 위해 양보했으면, 이제 우리도 살 길 찾아 간닥카믄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닌교? 사고 나면 즉사할 수도 있다 카는데, 위험해서 다른 사람들은 안 오려고 하는데, 왜 우리만 살아야 합니꺼?"
노후 원전을 둘러싼 끊임없는 공방월성 원전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감은 기형 가축에서 시작했다. 1996년 월성 원전 근처에서 한 쪽 눈이 없는 기형 송아지가 태어났다. 이후 기형이라고 보고된 송아지가 50여 마리였다.일부 주민들은 소 값 폭락을 걱정해 밖에 알리지 않고 기형 송아지를 땅에 묻어버렸다. 대부분은 사지가 뒤틀린 송아지였지만, 머리가 둘 달린 송아지, 항문이 없는 송아지, 털이 없는 송아지, 암수 구별이 없는 송아지도 있었다. 시민단체들은 땅에 묻힌 송아지가 몇 십 마리 더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논란이 커지자 한수원이 직접 나섰다. 1997년 월성 원전은 기형 송아지 35마리를 조사한 결과, 기형의 원인은 바이러스성 질병인 '아카바네병'이라고 밝혔다. 임신한 어미 소가 모기를 통해 감염되면 사지가 뒤틀린 송아지를 낳는 병이다. 한수원 측은 목장 주변 물과 사료, 땅에서 시료를 채취했으나, 방사능 영향은 없었다고 했다. 백신 주사를 놓으니 뒤틀린 소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밝혔다.이유는 알 수 없으나, 당시 주민들은 암소들의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소 목장을 운영하거나 몇 마리씩 소를 키우던 농민들이 하나 둘, 소 키우기를 포기하기 시작했다.주민들도 건강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국내 연구에서 원전과 주민 건강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진 적은 없다. 원전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 결과를 보면, 방사능이 주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거의 미미하다는 결론이 대부분이다.다만, 2012년 국내 원전 주변 5킬로미터 이내에 사는 여성들의 갑상선암(갑상샘암) 발병률이 원전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여성들보다 2.5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원전에서 5~30킬로미터 거리에 사는 여성은 1.8배 높았다.이는 정부가 지난 2011년 12월 발표한 '원전 종사자 및 주변 지역 주민 역학조사 연구'의 원 자료를 민간 전문가들이 재검토한 결과다.이 결과를 발표한 주영수 한림대 의대 교수는 정부 조사의 한계로 "암 환자, 다른 병력이 있는 사람, 20세 미만 주민은 대상에서 제외시켰다"는 점을 들었다. 건강한 사람들만 조사해서 이미 암에 걸린 주민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이른바 '표본 선정 편파(Selection bias)'가 일어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반면 정부 용역 연구를 진행한 안윤옥 서울대 의대 교수는 주 교수의 분석에 대해 "원전 주변의 갑상선암 발생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원전 때문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원전 주변 여성 갑상샘암 발생률 2.5배 높다")환경단체들도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조사를 진행해왔지만, 결과를 두고 한수원 측과 공방을 벌였다.2012년 환경운동연합은 월성 1호기에서 체르노빌 수준의 사고가 난다면, 바람이 울산 방향으로 불 때 최대 2만 명의 급성 사망자와 70만3000명의 암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모의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 10명 중 1명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권고하는 방사선비상계획 구역인 원전 주변 30킬로미터 이내에 산다는 분석도 있다.반면에 한수원은 환경운동연합 모의 실험에 대해 "월성 원전에서 체르노빌 수준의 사고가 난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도, 마을 주민들이 피난을 가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도 과장됐다"며 "후쿠시마 사고 때도 즉사한 사람은 없었다"고 반박했다.체내 삼중수소 검출량이 원전과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11년 3월 경주 월성 원전 민간환경감시기구는 월성 원전 주변(나아리) 주민들의 소변에서 발암물질인 삼중수소가 경주 시내 주민의 평균 검출치(리터당 0.919베크렐)보다 최대 25.7배(리터당 23.6베크렐) 많이 검출됐다고 밝힌 바 있다.월성 원전 민간환경감시기구는 "이는 연간 피폭선량 제한치(1밀리시버트)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원전 인근 거주 주민 체내에 삼중수소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교과서에는 암 발생 가능성은 피폭량과 정비례한다고 적혀 있다"며 "한수원의 원전 주변 오염도 조사 보고서를 보면, 거의 미량이지만 (발암물질이) 검출되고 주민들은 그런 걸 먹고 마시고 하는데,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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