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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폭식 투쟁, 보고만 있어선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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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폭식 투쟁, 보고만 있어선 안 되는 이유

[시민정치시평] 2014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그 적들

지난 2월, 20세기 최고의 민주주의 이론가로 존경받던 미국의 로버트 달(Robert Dahl) 교수가 향년 98세로 타계했다. 필자의 '민주주의론' 강의에서 매 학기 빠지지 않고 사용되는 필독서 중 하나가 그의 저서인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Democracy and its Critics, 1989)이다. 여기에서 달은 플라톤이 이상(理想) 통치로 제시한 철인왕(philosopher king)부터 레닌의 전위 조직으로서 공산당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엘리트 지배를 묶어 수호자주의(guardianship)로 통칭하였다. 수호자주의의 핵심 교리는 보통 시민들은 자신들을 통치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수한 지혜와 덕성 등 특별한 자질을 가진 소수가 통치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달은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수호자주의는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민주주의의 가장 오랜 비판자이자 힘겨운 경쟁자였다고 평가하였다.

행동심리학으로 유명한 스키너(B.F. Skinner) 역시 "대다수 인간들은 그러한 수호자의 지배로 혜택을 입게 되면 그들은 스스로를 통치하는 어리석고 헛되고 자멸적인 노력을 그만둘 것이며 결국에는 자발적으로 왕의 부드럽고 계몽된 지배에 따를 것"으로 단언하였다. 수호자주의는 역사적으로 강력한 옹호자들을 갖고 있었지만 그 한계 역시 분명하였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수호자주의는 일반 시민의 공적 참여의 기회를 제약하고 도덕적 능력을 저하시킨다. 경험적으로도 불완전한 민주주의보다 불완전한 수호자주의가 인류에게 더 큰 위험을 부과하였음은 명백하다.

민주주의의 비판자가 아닌 그 적들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특히 헌정 체제를 위협하는 공공연한 적(enemies)들을 목격하고 있다. 그 적의 첫째 목록에 위치한 것은 국내외에서 '땅 밟기 기도'를 자행하고 있는 근본주의적 기독 세력이다. 그들은 2010년 봉은사, 동화사의 땅 밟기 동영상으로 사회적 논란을 부추기더니 2011년 미얀마 법당 땅 밟기에 이어 최근(2014.7.8) 불교 성지이자 세계 문화유산인 인도 부다가야 마하보디사원 내에서도 '땅 밟기 기도'를 자행해 외교적 분란을 일으킨 바 있다. 원래 '땅 밟기 기도'는 걸어 다니면서 하는 기도를 포함하는 현장 중보 기도의 일환인데, 이단에 정통한 한 목회자에 따르면 '땅밟기 기도'는 신 사도 운동의 "영적도해"(Spiritual Mapping)라는 사상에서 나온 것으로 비성경적인 사상이며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행위라고 한다.

종교적 차원의 해석을 떠나 '땅 밟기 기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을 보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땅 밟기 기도'가 조장하는 종교 갈등과 배타성에 대한 언론과 일반 시민들의 우려와 질타이다. 다른 하나는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것으로써 4대 종단은 우리 사회의 화합을 위해 '종교 평화법 및 차별 금지법'의 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필자는 이러한 사회적 우려나 차별 금지법의 제정은 당연한 반응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종교 갈등을 막기에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땅 밟기 기도'가 '일부 개신교의 무개념 선교 행위'나 '일탈 행위'가 아니라 종교적 차별을 금지한 대한민국 헌법 11조와 종교의 자유를 선언한 헌법 20조의 취지와 정신을 훼손한 위헌적 행태라고 판단한다. 4년 전에 프랑스의 대통령이었던 사르코지가 범죄 이민자의 프랑스 국적을 회수하는 등 이민자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프랑스의 대표적 인권단체인 '인종차별 반대 및 친선운동'(MRAP)은 "사르코지의 연설은 범죄와의 전쟁이 아니라 프랑스 공화국과의 전쟁 선포"라고 비난했으며, 제 1야당인 사회당의 마르탱 오브리 당수는 이 조처가 "매우 부당하고 위헌적인 법률로 프랑스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한국 사회 역시 '땅 밟기 기도'를 일부 몰지각한 개신교의 일탈적 해프닝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민주 공화국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위헌적 행위로 엄중히 단죄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만이 헌법을 매개로 한 사회적 통합과 다원적 민주주의가 공고해지며,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종교적 내분의 여지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강구해야 할 또 하나의 해법은 내부의 자체 정화이다. 제 3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개신교를 보면 양적 성장에 비해 사회적 책임감을 비롯한 질적 성장이 지체되었고, 사학법이래 차별 금지법까지 정치적 발언과 조직화는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다른 종교나 일반 국민과의 소통에는 실패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기독교계 원로나 교계 혁신세력의 반성과 자정 움직임은 매우 미약한 것 같다.

최근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일베의 폭식 퍼포먼스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 나라의 집권 여당의 어떤 국회의원은 일베를 일컬어 '20대 우파'라거나 '새로운 청년 보수층'으로 점잖게 칭하면서 그들에게서 희망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이라는 일베의 주장과 인식은 '땅 밟기 기도'와 마찬가지로 민주 공화국의 헌법 정신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왜곡이다. 왜냐하면 우리 헌법은 전문(前文)에서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의 계승'과 '조국의 민주 개혁'을 명토 박아 두었는데, 5.18 민주화운동이야말로 그것의 연장선에 있는 살아있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일베들의 폭식 투쟁은 자식을 잃은 유가족 앞에서 벌인 반인륜적 행동이라거나 20대 철부지 우파들의 세련되지 못한 일탈 행위로만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공화국은 제도상 전제 군주가 없는 정부 형태를 의미하지만 정치사상의 측면에서는 어떠한 유형의 단일한 지배도 부정하는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근거한 민주 체제이다. 단언컨대, 전투적 절멸주의와 근본적 배타주의로 무장한 일부 기독교단의 '땅 밟기 기도'나 '일베'를 자처하는 보수 세력 일파들은 종교와 사상의 관용, 즉 다원주의에 근거한 공화국의 헌법 정신을 위협하는 민주주의의 적들이다. 이 나라를 굳건한 헌정주의에 기초한 건강한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서도 언론과 정당을 비롯한 시민사회와 사법부는 민주주의의 공공연한 적들에 대해서 보다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목전의 이익에 급급하여 이들을 정치와 선교의 방패막이로 활용하기보다는 사회 통합의 장기적 안목에서 이들을 계몽·선도하려는 교계의 원로와 합리적인 보수의 인식 전환과 대대적인 자정 활동이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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