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6월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혐의 항소심에서 내가 했던 증언에 대해 악의적으로 왜곡했던 극우신문 기자들과 치졸하게 비난했던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들 때문에 이 연재를 시작해 방학을 보람차게 보낼 수 있었다.
매주 1~2회 글을 쓰면서 많은 분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따뜻한 격려와 뜨거운 지지가 담긴 이메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일일이 답하지 못했던 점 이제야 양해를 구한다. 천안함 침몰에 관한 글을 올렸을 때는 왜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하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 연방제통일에 관해 썼을 때는 감옥에 가게 되길 바란다는 야유를 받기도 했다.
강연 요청도 많이 받았고, 지금까지 발표한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책으로 펴내라는 제안도 받았다. 서둘러 쓰느라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빠진 부분을 보충할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가 왜 어떻게 통일해야 하는지 호소하는 글로 이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1. 통일을 왜 이루지 못하고 있는가
한반도가 분단된 지 거의 70년이 흘렀는데도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쳐오면서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크게 네 가지 배경을 들고 싶다.
첫째,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남북 사이에 원한과 적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전쟁의 피해를 직접 겪은 세대는 북한을 증오하고 화해와 협력을 거부하며 '북한 타도'를 주장한다. 한쪽이 무너지지 않는 한 통일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둘째, 외세의 영향력 또는 주변 정세 때문이다. 분단이 우리의 뜻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이루어졌듯, 통일 역시 주변 강대국들의 방해를 받고 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러시아든, 대외정책의 가장 큰 목표는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특히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한과 유일한 군사동맹인 미국에게 한반도 분단은 이익이 되는 구조다.
셋째, 분단을 정권 유지 및 강화에 악용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독재 정권들이나 극우 정권들은 분단, 반공, 안보 등을 구실로 권력에 대한 비판을 억압할 수 있기 때문에 분단은 그들의 집권 및 통치에 이익이 된다. 예를 들어, 통일이 이루어지면 국가정보원이나 군대 같은 기구의 조직, 인원, 예산 등이 줄어들 게 뻔한 데 그 지도자들이 통일을 원하겠는가.
넷째, 양쪽 위정자들이 통일을 원하더라도 자신의 체제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남쪽에서는 "체제 경쟁은 끝났다"며 자본주의만을 고집하고, 북쪽에서는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라며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체제 통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
2.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반대가 왜 늘고 있을까
여기저기서 북한이나 통일 문제에 관해 강연하다 보면 통일에 대한 관심이 해가 흐를수록 낮아지는 것을 실감한다. 통일을 바라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만나게 된다. 여론조사 결과는 나이가 적을수록 그리고 학력과 소득이 높을수록 통일에 관심 없거나 반대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통일을 원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사회 혼란과 통일 비용. 한편으로는 70년 가까이 서로 다른 사상과 체제 아래서 살아온 사람들끼리 함께 살게 되면 정치 사회적 혼란이 생길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빌어먹고 굶어 죽는 사람들과 합치게 되면 천문학적인 경비가 들어갈 것이라는 경계심 때문이다. 분단된 채 잘살고 있는데 굳이 통일해서 사회 혼란 초래하며 북쪽의 거지 떼 먹여 살리려고 세금 더 낼 필요 있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어나는 데는 크게 네 가지 배경이나 이유가 있는 듯하다. 첫째, 교육과 언론을 통해 빚어지는 북한이나 통일에 대한 편견과 왜곡이다. 편견과 왜곡의 핵심엔 '북한 붕괴'와 '흡수 통일' 그리고 '사회 혼란'과 '통일 비용'이 자리 잡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많은 정치인, 학자, 언론인들이 북한이 곧 무너질 것 같다고 예상하거나 빨리 붕괴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북한이 무너져 흡수 통일이 되면 사회 혼란이 일어나고 천문학적 통일 경비가 들어갈 것이라는 내용이다.
남한 사회에서 '통일'의 정의는 북한 체제가 무너져 남한 체제에 흡수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북한이 주장해온 연방제는 말할 것도 없고 남한이 1990년대부터 공식적으로 채택해온 통일정책의 한 단계인 국가연합조차 거부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 아닌가. 북한이 무너져 남한에 흡수되어 70년 가까이 서로 다른 체제와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갑자기 함께 생활하게 되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것은 당연하다. '거지같은 사람들'을 도우면서 같이 살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도 확실하다. 특히 젊은이들은 이산가족들의 고통이나 한을 잘 모르며 북한 사람들을 동포형제라고 느끼지도 못할 텐데, 물질적으로 별 부족함 없이 잘살고 있는 터에 굳이 통일해서 남남 같은 사람들을 도우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부터 남북 관계가 악화하면서 북한이나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었을 것이다. 특히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 2009년 4월 인공위성 또는 미사일 발사, 2009년 5월 2차 핵실험, 2010년 3월 천안함 침몰,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2013년 2월 3차 핵실험 등은 북한이나 통일에 대한 거부감을 높여왔다.
셋째, 노년층을 비롯한 기성세대에서는 한국전쟁을 통해 생긴 북한에 대한 원한과 적대감 그리고 냉전에 따라 강화된 반공반북 정신이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강해지거나 확산되기도 한다.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과 끔찍한 피해를 안겨주었기에, 이미 두 세대나 흘렀지만 해마다 6월 25일이 다가오면 "잊지 말자 6·25"라는 구호와 함께 북한에 대한 적대감과 경계심을 고취시키며 안보의식을 강화하는 행사가 그치지 않고 있다.
넷째, 젊은이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과 개인주의적 생활방식의 영향으로 통일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어렵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풍조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보다는 남들보다 잘살아야겠다는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게 된다. 가난한 북쪽 사람들을 도우며 그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더불어' 살아가는 통일에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느끼기 쉽고 '나홀로' 살아가는 분단을 선호하는 성향이 커진다는 뜻이다.
3. 통일을 왜 해야 하는가
앞에서 통일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사회 혼란과 통일 비용을 그 이유로 꼽는다고 소개했는데, 이는 교육과 언론을 통해 확산된 통일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북한 붕괴에 따른 급진적 흡수통일은 당연히 사회 혼란을 초래하고 천문학적 경비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화해와 협력을 통해 국가연합이나 연방제를 거쳐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루면 사회 혼란이 생길 이유도 없고 막대한 경비가 들어갈 까닭도 없다. 통일의 방법이나 경로를 북한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에 고정시켜 놓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착각인 것이다.
통일을 원하는 사람들 역시 그 당위성이나 필요성으로 대게 두 가지를 든다.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해야 한다는 것과 남북이 합치면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것. 한 핏줄의 동포 형제끼리 함께 살아야 한다는 데 싫어할 사람은 거의 없을 테고, 지금까지 강대국들의 지배나 눈치를 받고 살아온 터에 힘을 합쳐 약소국의 설움을 떨쳐버리고 떳떳하게 잘 살아보자는 데도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둘 다 절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핏줄끼리 떨어져 사는 것보다 함께 사는 것이 더 좋을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가족 안에서조차 부부나 부모자식 또는 형제자매 사이에도 직장이나 교육 문제 등으로 떨어져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물며 남쪽 5000만과 북쪽 2500만이 한 민족이라고 꼭 한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야 할까. 그것도 나라 밖으로는 국경이 낮아지거나 무너지고 안으로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이 지방으로 분산되는 세계화와 지방화 시대에.
이 세상엔 약 2000종의 민족이 200개 정도의 국가를 이루고 있으며 이른바 한 민족으로만 형성된 국가는 20개 안팎이다. 평균 10종의 민족이 1개의 국가를 이루고 있는 셈인데, 우리는 한 민족이 두 개의 국가를 갖고 있지만, 같은 민족끼리 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욕구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고려하자. 따라서 나는 남북이 국토나 체제를 하나로 합치지 않더라도, 적대 관계를 풀고 서로 협력하며 자유롭게 연락하고 오갈 수 있다면 이미 통일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장해온 '21세기형 통일'이다.
강대국을 지향하는 것도 선뜻 내키지 않는다. 개인이든 국가든 힘이 커질수록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기보다는 남을 멸시하며 못살게 굴기 쉽기 때문이다. 나라 안에서는 조그만 권력이나 재력이라도 붙잡고 있으면 거들먹거리며 힘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등치는 일을 흔히 볼 수 있고, 나라 밖에서는 대국이라고 약소국들 내정에 오만하게 간섭하며 여차하면 군대를 보내 으름장을 놓는 짓을 쉽게 볼 수 있지 않는가. 그들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거니와 따라하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남한은 분단된 상태에서도 세계 12~15위의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다. 위에서 6~7% 안에 속하니 거들먹거릴 만하다. 북한과 합쳐 세계 10등 또는 5% 이내에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난 우리가 완력이 커지는 강대국보다 삶의 질이 높아지는 복지국가가 되기를 더욱 소망한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 등은 국토와 인구 또는 경제력과 군사력이 크지 않아도 다른 나라들에게 무시당하기는커녕 남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질 높은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내세우는 통일의 필요성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분단에 따르는 폐해가 너무 크고 통일을 이루면 얻을 편익이 몹시 크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통일 편익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이 뜬금없이 '통일 대박'을 외치는 것은 정치 선전이라 치부하고, 오래전부터 '통일 대박'을 주장해온 대표적 학자 두 사람의 책을 소개한다. 하나는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보수적 경제학자 신창민 교수의 <통일은 대박이다>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연합방'을 꿈꾸는 진보적 재미동포 의학자 오인동 박사의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이다.
이에 덧붙여 나는 통일을 꼭 이루어야 하는 이유로 분단의 폐해만 강조하겠다. 통일 경비가 많이 필요할 것이라는 말은 귀가 닳도록 들어왔겠지만, 분단 경비가 많이 지출되고 있다는 말은 별로 듣지 못했을 것이다. 앞에서 흡수 통일을 하지 않는다면 막대한 경비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는데, 설사 통일 경비가 천문학적으로 든다고 하더라도 분단 경비보다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통일 경비는 남북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더불어 살자는 건설적 투자비용이지만, 분단 경비는 서로 적대시하며 죽이자는 파괴적 소모비용이다. 통일 경비는 천금이라도 아깝지 않지만 분단 경비는 한 푼이라도 아깝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일시적으로 들어갈지 모를 통일 경비는 경계하면서 지금까지 70년 가까이 줄줄 새나가고 있는 분단 경비는 생활이 되고 습관이 되어버려 인식조차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고 통탄할 일인가. 거듭 강조하건대 분단이 지속됨으로써 새나가는 비용은 통일을 이룸으로써 들어갈 비용보다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크다. 분단 때문에 생기는 피해와 고통 등 돈으로 계산하기조차 어려운 대표적 분단 폐해 몇 가지를 아래에 소개한다.
첫째, 분단 때문에 정치 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북한을 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가장 강조하는 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것인데, 그들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현실이 참 역설적이다. 자유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를 핵심 가치로 삼는 민주주의로, 개인의 자유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 자유는 사상과 양심, 언론과 출판, 결사와 집회 등의 자유다. 그런데 분단을 핑계로 유지되는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기본적 자유조차 심각하게 제한하며 인권을 탄압하고 있지 않은가.
친일파들이 '친북'을 '용공이적'으로 매도하며 자신들의 죄와 허물을 덮고 기득권을 지킬 수 있는 것도 분단 때문이다.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생각과 언행을 하면 빨갱이로 몰아붙이며 개념 없이 순응하고 추종하는 사회로 이끌어가는 것도 분단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요즘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 투쟁조차 빨갱이 짓이고 잠실 일대에서 발견되는 ‘싱크홀’조차 북한 소행이라며 억지와 궤변을 늘어놓을 수 있는 것도 분단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제한되어온 자유를 맘껏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둘째, 분단 때문에 군사 외교적으로 자주권을 침해받고 있다. 군대의 작전통제권까지 미군에게 맡기는 등 미국에 너무 종속적이라 "남한은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국제적 조롱을 받는 것은 분단 때문이다.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어야 진정한 자주 독립국이 될 수 있다.
셋째, 분단 때문에 엄청난 국방비를 쏟아 붓고 있다. 대략 정부 예산의 15~20%다. 국방비 말고도 남북이 체제 경쟁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쓸데없이 지출하는 비용이 얼마나 많은가.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국방비를 비롯해 막대한 경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그만큼 사회복지비를 늘릴 수 있어, 요즘 사회적으로 떠들썩한 ‘반값 등록금’ 문제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분단 때문에 빚어지는 이산가족들의 한과 고통이 몹시 크다. 남북 사이에 일가친척끼리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소식을 알아도 제대로 연락도 하지 못하며, 평생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 죽어가는 이산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을 달랠 수 있는 길은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다.
다섯째, 분단 때문에 여행의 자유도 제한받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남한은 '완도(完島)'다. 육지와 연결된 '반쪽 섬'이 아니라 바다로만 나갈 수 있는 '완전한 섬'이란 말이다. 그러기에 해외여행을 하려면 편안한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돈이 많이 드는 비행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민족의 영산이라는 백두산에 오르려면 중국을 거쳐 돌아가야 하는 것도 분단 때문이다.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금강산이나 백두산까지 직접 차를 몰고 찾아갈 수도 있고, 기차를 타고 러시아나 중국을 거쳐 유럽까지 나갈 수도 있다. 돈은 없어도 시간이 많다면 나라 밖으로 걸어 나갈 수도 있을 테고. 나아가 휴전선만 열리면 아시아의 섬나라 일본에서 유럽의 섬나라 영국까지 기차여행을 즐길 수도 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해저터널처럼 일본과 남한 사이의 해저철도 건설 계획이 이미 1990년대 초부터 논의되어 왔다는 사실을 참고하기 바란다.
여섯째, 분단 때문에 주한미군이 유지되고 이를 통해 퇴폐문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범죄까지 늘고 있다. 미군들이 온갖 폭행과 만행을 일삼아도 처벌은커녕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분단 때문이다.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주한미군에게 있어달라고 매달릴 필요가 없고, 주한미군이 유지되더라도 그들의 범죄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일곱째, 분단 때문에 한반도가 동아시아 긴장과 갈등의 중심에 놓여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사이에도 남북한이 끼어 있다.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어야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
여덟째, 분단 때문에 징병제가 고수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전한 남자들이라면 거의 모두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20대에 공부하거나 일하다 말고 가장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인 군대에 불려가 2~3년 '썩어야'하는 현실이 왜 지속되는가. 적성에 맞지 않아도 불려가 자살하거나 사고를 저지르고, 차라리 자신이 죽더라도 남을 죽일 수 없다며 총칼을 들 수 없다는 평화주의자 또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마저 끌려가든지 감옥에 처박혀야 하는 현실도 분단에 따른 징병제 때문이다. 군대에 가기 싫어 자신의 몸을 일부러 망가뜨리기도 하고, '빽'을 쓰기도 하며, 해외로 도피하기도 하는 등 온갖 병역 비리가 저질러지는 이유도 징병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해교전이나 천안함 침몰 또는 연평도 포격 등 남북 사이의 갈등이나 무력충돌 때문에 희생된 젊은이들보다 군대 안에서 자살과 사고로 죽어가는 젊은이들이 비교도 할 수 없이 훨씬 많다.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꿔, 직업으로 군인을 선택하겠다는 젊은이, 군 생활이 적성에 맞겠다는 젊은이, 군대 가야 사람 된다고 생각하는 어른 등 원하는 사람들을 모집해 단결심과 충성심이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통일이 되더라도 중국과 일본 등의 침략 가능성 때문에 군사력을 줄일 수 없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런 나라들이 침략하려면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틈을 이용하지 통일된 이후에 쳐들어오겠는가. 병력 감축에 따라 기득권이 줄어들까봐 부리는 억지 논리다. 너무도 이상적이지만 비록 조그만 나라들일지라도 이 세상엔 군대가 전혀 없는 나라가 30개 안팎이라는 사실도 참고하기 바란다.
아홉째, 분단 때문에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만에 하나 서해교전 같은 무력충돌이 전면전으로 이어진다면 남북 모두 막강한 병력과 최첨단 무기들을 가지고 있는 터에 남쪽에서든 북쪽에서든 멀쩡하게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요즘 전쟁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또는 팔레스타인에서 보듯, 군인들만 죽는 게 아니라 민간인들이 더 많이 죽는다. 남자들만 죽는 게 아니라 여자들도 죽고, 전쟁을 좋아하고 일으킨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애꿎게 죽는다. 내가 통일운동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는 가장 큰 이유다.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되면 끔찍한 전쟁의 가능성이 사라지거나 최소한 줄어들 것 아닌가.
4. 통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주장하는 '21세기형 통일'은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다. 남북이 적대 관계를 풀고 서로 협력하며 자유롭게 연락하고 오갈 수 있는 상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개성공단을 확대하며 이산가족 상봉을 정기적으로 실현하기만 해도 절반은 이루어지는 셈이다. 시작이 반이니까. 2000년 6월 1차 남북 정상회담과 2007년 10월 2차 정상회담의 합의사항, 이른바 '6·15합의'와 '10·4선언'만 제대로 이행해도 통일의 문턱에 이르게 된다. 활발하게 교류하며 자유롭게 오가다 보면 머지않아 "어 통일이 꽤 됐네"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백낙청 선생이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에서 말하는 ‘어물어물 진행되는 통일’이다.
이런 가운데 체제 통일엔 신경 쓸 필요 없다. 통일 한반도의 체제로 남한의 천박한 자본주의도 적합하지 않고 북한의 배고픈 사회주의도 어울리지 않는다. 남북연합이나 연방제를 지향하면서, 남한은 자본주의를 지키되 사회주의 장점인 평등을 조금씩 추구하고, 북한은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 자본주의 장점인 자유를 조금씩 늘려간다. 남쪽에선 빨갱이 짓이라는 논란 일으킬 것 없이 복지정책을 조금씩 확대하면 충분하고, 북쪽에선 개혁개방을 조심스럽게 확대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적어도 우리 다음 세대에서는, 자연스럽게 자유와 평등이 어우러지는 복지국가 체제의 완전 통일까지 이루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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