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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은 박근혜 정부의 '무덤'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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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은 박근혜 정부의 '무덤'이 될 것인가?

[초록發光] 사형 선고 받은 '에너지 민주주의'

김성훈 감독의 영화 <끝까지 간다>의 원래 제목은 <무덤까지 간다>였다. 개봉을 앞두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해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바꿨다는 후문이다. 정부와 국회가 세월호 사건을 두고 날선 공방을 거듭하며 세월을 낭비하는 동안, 정말이지 무덤까지 갈 일이 또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신규로 지정한 핵발전소를 놓고서 삼척시장과 시의회 그리고 지역 사회가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 투표를 실시하려 하자 정부가 주민 투표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사실상 주민 투표를 방해하는 결론을 내렸다. '밀양 전투'의 승리(?)에 도취한 탓인지, 어처구니없이 핵발전소 건설을 밀어 붙일 모양이다. 왜 어처구니가 없는지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2010년, 한국수력원자력은 삼척, 영덕, 해남, 고흥을 신규 핵 발전 단지 유치 가능 지역으로 선정하고, 각 지방자치단체에게 지방 의회의 동의를 얻어 유치 신청서의 제출을 요청했다. 핵발전소 2기 기준으로 1조5000억 원이라는 경제적 인센티브에도 불구하고, 해남군과 고흥군은 유치를 거부했다. 삼척시과 영덕군의 판단은 달랐다.

삼척시장은 주민 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시의회는 주민 투표 시행을 전제로 핵발전소 유치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해가 바뀌자 시장은 주민 투표 실시에 대해 시의회와 합의한 바가 없고, 법적으로도 그럴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입장을 바꿨다. 결국 2011년, 영덕군과 함께 삼척시는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삼아 신규 핵발전소 유치를 신청했다.

이에 반핵 진영은 '원전 유치 강행, 풀뿌리 민주주의의 왜곡과 억압, 주민 투표 약속의 미이행'을 들어 시장에 대한 주민 소환을 청구했다. 곧바로 유치 찬성 측의 소환 반대 운동이 전개되었고, 주민 소환 투표 청구 서명부를 둘러싼 공방이 일었지만, 주민 소환 투표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투표율 3분의 1에 미달한 25.9%에 그쳐 주민소환은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올해 지방 선거에서 핵발전소 건설 반대를 내건 김양호 후보가 62.4%의 득표율로 시장에 당선되었다. 안전행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선거관리위원회가 똘똘 뭉쳐 주민 투표 불가 입장을 표명하기 전까진 핵발전소 유치 신청 철회 주민 투표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주민 투표를 가로막아 삼척 시민들과 국민들을 담보로 위험천만한 모험을 강행하는 세력들이 되새겨야할 게 있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겠지만, 삼척은 20년 가까이 '핵발전소 후보지'로 묶여 있다가 1991년에서야 지구가 해제된 경험을 한 곳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핵발전소와 핵기물 처분장 후보지 지정을 반대해 지정 철회라는 성과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박정희 정부 이후 거의 모든 정부가 삼척을 잠재적인 핵시설 부지로 타진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삼척 시민 다수는 핵 시설을 거부해왔는데, 최근 여론조사에는 78%가 신규 핵발전소를 반대하고 있다.

지방 사무가 아니라 국가 사무라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는 궤변에 가깝다. 2005년, 경주, 군산, 영덕, 포항을 대상으로 '경쟁적 주민 투표'를 도입해 경주에 핵폐기물 처분장을 밀어 넣은 정부는 당시 이렇게 자화자찬하지 않았던가.

'부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경쟁적 주민 투표 방식을 도입한 결과, 지역 주민의 동의와 민주적인 갈등 조정을 통해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사회 갈등 모델이자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지방 자치를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관련 기사 : 노무현, 이명박 이어 박근혜 덮칠 무서운 쓰레기)

주민 투표는 부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적 절차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관료와 전문가들의 자가당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런 국가 사무는, 그런 국가는 없는 게 낫다. '지방 자치 시대'니, '균형 발전'이니, '행복 생활권'이니, 그럴싸한 말로 현실을 호도하지 말라. 여전히 '국가 자치 시대'이고, '불균형 발전'이며, '위험 생활권'에 살고 있다.

부안을 기억하라. 국가가 인정하지 않았지만 시민들의 손으로 직접 일궈낸 주민 투표는 진정 지방 자치와 에너지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꼽힌다. 사회적 갈등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주민 투표라는 방법이 있는데도 이를 거부한다면, 갈등을 유발하거나 갈등이 발생하길 바라는 꼼수가 아니고 뭐겠는가.

핵발전소와 화력 발전소에서 냉각수로 사용되고 도로 배출되는 온배수를 신·재생 에너지에 포함시키겠다는 정부의 창조성을 떠올리면, 지역의 에너지 주권과 에너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위헌적 태도야말로 혁신으로 거듭난 '창조적 파괴'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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