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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에서 한반도의 '과거'와 '미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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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현충원에서 한반도의 '과거'와 '미래'를 보다

<긴급분석> 북측 현충원 참배의 맥락과 파장

8․15 해방 60주년 기념 남북 공동행사에 참가하는 북측 대표단이 14일 오후 서울 동작동의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지난 6․15 정상회담 5주년 공동행사에서 남측 정부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고, 그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면담이 성사되며 북측은 6자회담 재개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이렇게 6자회담에서도 남북 간의 우호적 관계가 이뤄지면서 남북 관계가 복원되고 있음을 실감하는 터이지만, 이번 참배 의사를 북측이 먼저 밝히고 서울 방문 초기에 이를 단행했다는 사실에서 많은 남쪽 국민들은 좀 의아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6․15 때 김대중 대통령이 북측 의장대 사열한 것 주목해야**

그렇다면 우선 5년 전인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가진 의식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포옹 장면은 남측 사람들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그 직후 김 대통령이 조선인민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은 사실은 남측 언론에서도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이는 남북 양측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화해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가장 상징적인 의식이었다. 휴전체제 하에서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북측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대를 정식으로 인정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중단되기는 했으나 남북 간의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군사회담이 열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당시 김 대통령은 혁명열사능 등 북측의 국립묘지 참배까지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번 참배 의식에 북측을 대표해서 참가한 김기남 조선로동당 비서는 사실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간주해도 무방한 위치에 있다. 그의 참배는 김정일 위원장의 참배를 대신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안경호 북측 행사 준비위원장은 북측의 각계각층 단체를 대표하고 있다. 북의 체제는 정부-민간을 구분할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긴 하나, 남측 체제 식으로 설명한다면 정부-민간의 대표가 모두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셈이다.

현충원은 어떠한 기념시설인가?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역대 국가원수, 독립운동 유공자, 6․25전쟁 전사자, 베트남 전쟁을 포함하여 휴전체제 하의 남북 대치 상황 속에서 전사 내지 직무상 사망한 유공자들이 안장된 국립묘지다. 압도적 다수는 전쟁과 분단으로 희생된 군인 전사자들이다. 우선 북측 대표들의 참배는 8․15해방을 기념해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희생당한 인사들을 참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참배는 총체적인 것이며 다른 범주의 안장자들에게 향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미를 북측 대표들도 모를 리 없는 것이다.

***상호 체제인정은 상대방의 '현재'뿐 아니라 '과거'도 인정해야**

서로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상대의 현재뿐 아니라 과거까지 포함할 때 완전한 것이 된다. 화해란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대적 관계를 바꾸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은 지 한 세대가 지나지 않은 남북의 현실에서 화해는 산 사람만으로 그쳐서는 완전치 못하다. 그것은 '귀신'들의 화해로까지 이어질 때 온전한 것이 된다. 화해를 실행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전쟁과 분단 희생자의 2세들이기 때문이다.

70년대에 발표된 분단소설로 신상웅의 '심야의 정담'이란 작품이 있다. 소설은 동작동 국립묘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주인공은 탄생한 지 불과 30년도 안된 나라에 이처럼 많은 전사자를 묻은 거대한 규모의 국립묘지를 가진 나라가 또 있을까 하고 탄식한다. 소설이 탄식해마지 않던 그 넓은 동작동 묘지도 모자라 이제는 대전에 분원까지 만들기에 이르렀다.

과거 남측에서 북측과의 관계 개선이나 대북 지원을 앞장서서 반대한 단체들이 있다. 재향군인회를 필두로 전몰유가족회, 상이군경회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만큼 북측 체제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며 그 정당성에 추호도 의문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남북 관계를 산 자가 아닌 죽은 자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는 바로 이러한 단체들의 존재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과거의 적대관계는 끊임없이 재생산․재해석되며, 그것은 현재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화해는 과거의 화해와 함께 해야 하며 이를 '역사의 화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북측 대표단의 참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심장한 상징적 사건이다.

***'현충원 참배'는 '역사의 분단' 극복하는 계기 되어야**

국립묘지나 전쟁과 관련된 기념물은 한 국가․체제가 갖는 정체성의 핵심을 이룬다. 또한 이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실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이는 과거의 역사, 특히 국가의 탄생과 관련된 역사 해석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특히 식민지 지배를 겪은 나라에게 식민지 지배 및 민족독립운동과 관련된 역사는 가장 직접적이다. 남북은 분단정부로 출발해 그 귀결로서 전쟁을 겪은 만큼 분단과 전쟁의 역사도 이에 못지않은 비중을 지니고 있다.

남측은 광복 60주년을 맞이하며 과거사 청산작업을 추진 중이다. 이제 일부 사회주의 운동도 독립운동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며 독립유공자 속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남북 사이에서도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루려면 상대방의 묘지를 참배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독립운동의 역사에 대한 남북 양측의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전제가 된다. 북측에는 항일빨치산 출신을 안치한 혁명열사능, 그 밖의 독립운동, 정부 수립, 체제 건설에 기여한 인사들을 안치한 애국열사능, 국가원수로 유일한 김일성 주석의 시신을 안치한 금수산 기념궁전 등이 세워져 있다. 남측에서는 국립현충원 한 군데에 여러 범주가 결합되어 있으나 북측에서는 여러 범주로 나뉘어 있다는 차이가 있다.

물론 북측이 남측 묘지를 참배했다고 해서 남측의 독립운동 인식을 그대로 인정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현실의 분단, 대립의 대상으로서 역사의 분단, 역사의 대립을 극복하기 위한 긴 장정의 출발선에 위치해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분단과 6․25전쟁을 둘러싼 현대사의 대립은 아직 남북 모두 말도 꺼내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하지만 북측이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던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이 현충원에 안치되어 있다는 사실, 안치자의 최대 다수는 남북이 서로 맞선 6․25전쟁의 전사자라는 사실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북측의 행동이 쉽지 않은 결정에서 나왔을 것임을 짐작하는 역지사지의 입장에 선다면 남측도 화해를 위한 몸짓으로서 적절한 참배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수년간 '解寃 논의'의 결실…이제는 남측이 대응할 때**

이번 참배는 어디까지나 북측의 자발적 조치이지만, 실제 필자가 알기로 이번 참배가 꼭 갑작스럽게 성사된 것만은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남측의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남북 간의 전쟁과 분단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합동 문화행사를 타진해 왔다. 이른바 전쟁 귀신, 분단 귀신들의 넋을 위로하며 죽은 귀신들 사이의 화해를 꾀하는 푸닥거리인 셈이다. 또한 북측에 상이군경회의 남북 교류를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6월 평양에서 열린 6․15 공동행사에서는 상이군경회 대표가 만찬장의 축하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참배는 남북 당국자 간의 관계 복원을 배경으로 하여 최근 수년 간 지속되어 온 민간 차원의 논의에 북측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번 참배를 남측에서 남북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화해의 상징적 행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남북 관계가 한 단계 진전하는 역사적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갖는 함의가 매우 복합적인 만큼 남측에서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쉬운 문제는 아니다.

***남북 전몰유가족회가 한 자리에서 '상대방'을 추모할 수는 없을까**

먼저 현재의 대립적인 냉전체제를 넘어서서 화해를 진전시키기 위한 상생 노력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여건 조성 차원에서 이번 계기를 적극 살려 나가야 할 것이다. 남북의 전몰유가족회와 상이군경회의 교류, 그 남북 관련단체들 간이 합동으로 치르는 상대방에 대한 추모행사 등도 후속사업이 될 수 있다(북측에서는 상이군인을 '영예군인'이라고 부른다). 이는 남북 양측 재향군인회의 교류로 확대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업은 그 자체로서 중요하지만 남북군사회담을 본격적으로 개시하기 위한 준군사적 신뢰구축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적으로는 비무장지대나 남북의 묘지시설 등에서 분단과 전쟁, 냉전의 희생자들을 총체적으로 추모하는 남북 민간단체의 합동추모행사를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당국자 간에는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성격의 행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는 미국을 포함해 참전국들도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南-南갈등으로 이어지면 남한 민주주의의 저급함만 드러내는 꼴**

이와 동시에 무엇보다도 이번 참배가 남측 사회 내에서 남남갈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도 가장 절실한 과제다. 모처럼 어렵사리 이루어진 북측의 행동이 부정적으로 해석됨으로써 남측 내부의 갈등만 증폭되는 결과가 된다면 이는 남측 사회의 미성숙함, 민주주의 수준의 저급함을 드러내는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번 참배를 계기로 남북의 화해를 향한 노력이 꾸준히 진전되면서 그것이 진정한 것임을 남북 각각에서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다면,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여건 조성 차원에서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6자회담에서 북-미 양국 간에 벽에 부딪치고 있는 북측의 평화적 핵 이용권 문제는 주권국가의 국제법적 권리의 문제이지만, 한반도 국제관계 차원에서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그 근거가 되고 있다. 남북 관계에서 화해의 진전은 비핵화공동선언의 효력을 주장하는 데 필수불가결하다. 남측이 북측의 평화적 핵 이용권한을 인정하지 않는데 미국에게 이를 인정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또한 중국이 타협책으로서 제시한 6자회담의 합의문 속에는 한반도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당사국 포럼 개최 문제가 포함되어 있으며 미국도 동의하고 있다.

***'6자회담 분위기 조성'뿐 아니라 '남-북-미 적극 대화'의 신호탄**

북측은 자신의 체제보장 문제를 미국의 선제 핵공격 배제라는 소극적 안전보장 차원이 아니라 불가역적인 체제안전보장이란 차원에서 평화체제 수립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부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현 시점에서 미국을 이 과정에 적극 참가시키기 위해서는 남북 간에 군사적 화해의 진전이 가장 설득력을 갖는다. 이번 북측 대표들의 현충원 참배는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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