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달성군 A초등학교 '경비' 김모(69) 씨는 14년째 명절 없는 생활을 한다. 대구 동구 H초등학교 경비 송모(70) 씨도 3년째 가족과 추석을 보내지 못한다. 고령의 두 경비는 올 추석에도 가족 얼굴을 볼 수 없다. 9월 5일 금요일 오후부터 추석 대체공휴일(10일) 다음 날인 11일 아침까지 꼬박 6박7일을 학교 안에서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남들 다 쉬는 추석에 혼자 일한다. 감금되다시피 학교에서 나오지도 못한다. 남들은 대체휴일제가 도입돼 하루 더 쉰다는데 나는 하루 더 일해야 할 판이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송모 씨도 "단 하루라도 쉬었으면 좋겠다. 말이 6박7일이지 갇혀서 일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옆 학교 강 씨도, 이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버지 얼굴 보겠다고 서울에서 자식이 와도 집에 들어가질 못하니 참 갑갑하다"고 했다.
고령의 학교 경비들은 올해도 '6박7일'간 학교에서 나 홀로 추석을 보낸다. 대체휴일제 도입으로 연휴가 하루 더 늘었지만 교육청이 대안을 내놓지 못해 올해도 명절 없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경비(야간 당직 기사)들은 1년 근로일수가 365일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일 동안 오후 4시 30분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 8시 30분까지 하루 16시간, 주말이면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64시간 동안 근무해 주 128시간을 학교에 갇힌 채 일하기 때문이다. 설이나 추석 같은 연휴가 끼면 4~5일은 학교 안에서 숙식하며 일해야 해 학교 밖으로 나올 수조차 없다.
특히 국민권익위가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1만274개 학교 중 71.1퍼센트인 7301개 학교가 경비 1명만 두고 있고, 이들의 평균 연령은 70세로 연간 평균 노동 시간은 6800시간에 이른다. 이 가운데 47.1퍼센트는 월급이 100만 원이 채 안돼 최저임금도 못 받고 있다. 이 같은 노동 환경은 근로기준법 제50조(주 40시간, 1일 8시간 초과 근로 금지)와 최저임금법(2014년 기준 5210원)을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야근 수당은 물론 식대비나 명절 상여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청에 호소해도 "학교·용역업체 권한"이라는 답만 돌아올 뿐이다. 실제로 전국의 70퍼센트의 학교는 외부 용역 경비 업체와 계약을 맺고 경비를 고용한다. 이 때문에 노동 조건 또한 업체가 임의로 정한다. 대부분 업체들은 저녁 10시부터 아침 7시, 평일 9시간, 주말 18시간을 '휴게 시간'으로 정해 임금을 주지 않는다. 또 학교 밖을 나가면 '근무지 이탈'로 간주해 일당을 삭감하고, 대근자(대신 근무자)를 쓰면 월급에서 하루 7~10만 원을 가져간다.
매년 같은 문제가 반복되자 노조는 국회,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 국민권익위, 청와대에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올 3월 국민권익위는 1일 2교대, 평일·휴일 교대 근무, 월 2회 이상 휴무, 3일 연속 공휴일·명절 시 교대 근무, 학교장 직고용, 인건비 인상 등을 담은 '학교 당직 기사(경비) 권익 보호 개선 방안'을 17개 시도교육청에 보내고 내년 2월까지 개선방안 수립을 권고했다.
하지만 각 시도교육청은 "학교와 업체 권한"이라며 개선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추석에도 경비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대구에 있는 400여 개 학교 경비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해 전국학교비정규직본부 대구지부는 29일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석 기간 중 하루 유급 휴무와 2교대 도입, 국민권익위 권고 이행, 교육감 직고용을 촉구했다.
조대섭 학교비정규직본부 대구지부 당직분과장은 "경비는 살인적 노동 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명절이 되면 더 고달프다. 학교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고 6박7일을 일해야 한다"며 "비인간적 노동 조건을 교육청이 앞장서 개선해달라"고 했다. 이병수 학교비정규직본부 대구지부 조직국장은 "이런 노동 강도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해마다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라. 더 하소연할 데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구시교육청 총무인사팀 계장은 "고용 당사자는 학교와 용역업체로 노동 조건 개선 책임 당사자 역시 학교장과 업체 사장"이라며 "교육청이 세부적 사항까지 정할 수도 강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익위 권고가 내려온 만큼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전면 시정은 어려워도 무인 경비 시스템을 증설해 노동 시간을 축소하거나 휴게 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평화뉴스=프레시안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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