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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정계은퇴를 보며 생각한다

[기고] 국민후보로 정치권 심판하자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가 애송하는 시, 이형기의 <낙화> 첫 련이다. 지난 7월 31일, 손학규가 정계은퇴를 선언했을 때 나에게는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1993년,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DJ가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영국으로 떠날 때도 나는 이 시를 떠올렸다. 우리들 앞에나 옆에 함께 있었던 사람이 뒷모습을 보이며 쓸쓸히 떠날 때 우리는 진한 아쉬움과 함께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떠나는 손학규의 뒷모습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저녁이 있는 삶

나는 손학규가 지난번 제1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나왔을 때 ‘저녁이 있는 삶’을 내세우는 것을 보고, 그것이 수사(修辭)로는 매우 그럴듯해 보이지만, 도전하는 야권후보의 캐치프레이즈로는 너무 문학적이고 애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자칫 시참(詩讖)이 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과연 그는 자신이 먼저 ‘저녁이 있는 삶’ 속으로 잠적해 버린 셈이 되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는 지난 7.30재보선에서 자신이 원하거나, 의원직을 내놓은 사람이 그에게 권한 선거구가 아니라 새정치연합의 지도부가 정략적으로 떠맡긴 선거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것이 독배인 줄 알면서도 마실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시베리아같은 민주당으로 올 때부터 그는 환영받지 못했고, 2008년과 2010년, 두 번에 걸쳐 맡았던 대표직도 할 수 없이 떠맡은 독배에 다름 아니었다.

그의 은퇴선언 소식을 들으면서, 솔직히 나는 그만한 정치인을 이 나라 정치판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정치행각이 그때마다 모두 옳았다거나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가 그 동안 제시하거나 관철한 저녁이 있는 삶, 제3의 길, 연합정부론, 협동조합기본법, 중도개혁세력의 통합론 같은 경륜과 담론을 더는 들을 수 없게 된 것이 못내 허전하고 아쉽다.

국민후보로 정치권을 심판하자

지금 이 나라 이 공동체는 밖으로 남북문제와 미•일•중•러와의 관계 등 동서남북에서 밀려오고 있는 천하대란의 한가운데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안으로는 세월호와 윤 일병 사태 등을 지켜보면서 “과연 이게 나라냐?”는 울분과 한탄이 국민의 입에서 저절로 쏟아져 나오게 하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이 나라 정치권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고, 주어진 문제들에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과연 있을까.

더 나아가 우리는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자신의 비전과 경륜을 자신의 언어로 국민 앞에 제시하고 설득할 수 있는 정치인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러한 경륜은 고사하고, 그러한 문제들을 끌어안고 밤새워 고뇌하거나 토론해 본 사람이나 있는지 알고 싶다. 대선주자로 거명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래도 저 사람이라면…” 할 만한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확연히 드러나는 사람이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의 정치와 정치인의 수준과 질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노무현 탄핵 이후 급조된 탄돌이 국회 이래 이명박 정권이 양산한 양아치 정치인, 박근혜 정부에 뛰어든 아첨배 정치인으로 이 나라 정치권은 그 전체가 저질과 무능의 총체적 부실 집단이 되어가고 있다. 김영란법이나 세월호특별법 하나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정치력과 도덕성의 수준을 말해주고 있다. 정치권 자체가 우리 공동체의 진운과 국민통합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로 되어있다. 그런 정치권에 더 이상 내일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이 참에 차라리 국민이 직접 대통령 후보를 내는 국민운동을 제창하고 싶다. 여•야 정치권이 내놓는 후보를 놓고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현행의 선거제도는 수요자 중심이 아니라 공급자 중심인데다 찍고 싶은 사람이 없는데도 차악(次惡)을 찍을 수밖에 없게 하는, 국민에게 너무도 잔인한 고문인 것이다. 나의 국민후보론은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고 중요한 국가의제에 대해 자신의 언어로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복수의 인물로 국민후보군을 만들어, 이들이 전국을 순회하며 공개토론을 통해 국민적 공감과 지지를 확보해 나가고, 최종적으로는(그 과정에서 합의한 절차에 따라) 국민경선을 통해 정치권 후보에 맞서는 국민후보를 내세우자는 것이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나왔던 안철수 현상을 국민후보론으로 수렴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은 긴 방황과 시행착오 끝에 길을 잃어버리고 실종되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고황까지 썩고 병든 정치권 후보대신 국민이 직접 후보를 내는 국민운동이 일어났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꺼져가는 안철수 현상도 되살려 낼 수 있을 것이며 은퇴한 손학규도 다시 불러내 국민후보에 합류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패거리가 없어서 정치권 진입이 어려운 정운찬도 훌륭한 국민후보감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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