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지난해, 남한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북한 주민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북한 정권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이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은 27일 발표한 '2014 북한 사회와 주민의식 변화'를 통해 2013년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온 탈북자 149명을 대상으로 한 면접조사 결과에서 '북한에 있을 때 남한이 협력 대상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한 비율이 55.7%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2012년 북한을 떠난 탈북자들 중 63.9%가 남한을 협력 대상으로 생각했다고 응답한 것에 비해 8.2% 하락한 수치다.
반면 '남한이 적대 대상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한 비율은 20.1%로 조사돼, 전년도 조사 결과인 12.8%보다 7.3%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남한의 무력 도발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고 답한 비율도 45.9%에서 63.7%로 대폭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2012년에 비해 2013년 남한에 적대적인 북한 주민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남북은 3차 핵실험에 이어 초유의 개성공단 잠정 폐쇄 사태를 겪으며 사사건건 대립해왔다. 양측이 하루가 멀다 하고 비난을 주고받으면서 주민들의 감정 역시 적대적으로 변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남한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는 통일 이후 어디서 거주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통일 이후 남한에서 살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40.1%로 전년도 46.6%에 비해 6.5%나 하락했다. 북한에서 살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30.6%로 전년도 27.8%보다 소폭 늘어났다.
이에 대해 송영훈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탈북민들이 통일 후에 살고 싶어 하는 곳이 반드시 남한 지역이라고 가정할 수 없다"면서 "머무르고 싶어하는 인간의 속성과 고향의 중요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북한 주민들 마음 사려면···접촉면 넓혀야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드레스덴 연설을 통해 "지금 이 시각에도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이 있다"며 김정은 정권의 비인도적인 측면을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동시에 박 대통령은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민생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2013년 북한 주민들의 대남 적대의식은 2012년보다 높았다. 이는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면 북한 주민들의 대남 적개심 역시 커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민들을 상대로 한 대북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마음을 사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 교류를 활성화하고 북한 주민들과 접촉면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한에서 외부와 접촉할 기회가 있는 주민들이 그렇지 않은 주민보다 남한에 대한 친숙도가 높다는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연구원은 '장사나 부업 등을 통한 월평균 가구수입에 따른 인식 격차' 통계자료를 통해 경제적으로 상위 25%에 속하는 주민과 하위 20%에 해당하는 주민들의 인식에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조사대상 탈북자 중 경제적으로 상위에 속하는 인원들은 주로 국경지대에서 외부와 접촉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던 사람들이다. 반대로 하위에 속하는 인원들은 대체로 북한 내부에서 경제 생활을 영위했던 사람들이다.
연구원은 경제적으로 상위에 속하는, 즉 외부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남한 문화를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경제적 상위계층 응답자의 95.2%가 남한 문화에 친숙하다고 답했지만, 하위계층은 이보다 10.3% 낮은 84.9%만이 친숙하다고 응답했다.
남한 문화를 자주 경험하느냐는 질문에 상위계층은 65.9%가 그렇다고 답했으나 하위계층은 여기에 절반도 못 미치는 31.7%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또 남한의 대북지원을 인지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상위계층의 79.5%가 알고 있다고 답했으나 하위계층은 59.6%만이 알고 있다고 답했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에 대한 지지도에서도 차이가 났다. 김 제1비서를 지지하는 상위계층은 56.3%로 집계됐으나 하위계층은 이보다 13.9% 높은 70.2%가 김 제1비서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미국에 대한 반감도 상위 계층이 59.5%, 하위 계층이 75%로 15.5% 차이를 보였다.
장용석 선임연구원은 이에 대해 "장사나 부업을 통해 수입을 벌어들이면서 북한 사회가 양극화되고 있는데 이것이 주민들의 의식 변화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외부와 접촉하는 일이 많을수록 남한에 우호적인 주민 여론을 참고해, 되도록 남북 간 접촉면을 넓혀야 주민들의 마음을 살 수 있고, 그래야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드레스덴 선언도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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