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우리 인간이 편견의 동물이기 때문에 생기는 우화다.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미국 국방부(펜타곤)에는 군인이 없다는 말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해 본 것이다.
최근 윤 일병 사건 이후 봇물처럼 터져 나온 일련의 정부 대책들이 변죽만 울리고 본질을 외면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문제의 핵심은 국방문민화(문민통제)인데 이를 계속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의 대안들은 한 마디로 하드웨어는 그대로 놔두고 소프트웨어만 바꿔보겠다는 구상에 가깝다. 예컨대, 국방인권협의회 설치나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 발족 등의 대증요법으로는 근절되기 어려운 보다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가 국방지휘부(군 수뇌부)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이미 10여 년 전인 2005년 28사단 김동민 일병의 GP 총기 난사사건 이후 국방부는 병영문화개선위원회를 설치, 논의결과를 정리해서 대통령에게 "가고 싶은 군대, 보내고 싶은 군대"라는 그럴듯한 제목으로 보고서를 올렸었다. 이밖에 군내 인권상담관제의 도입, 관심병사들의 순화교육을 위한 비전캠프, 그린캠프 운영 등 일견, 겉으로 보기에도 병영문화 개선노력을 부단히 지속해 왔다.
그러나 위원회나 협의회 설치, 또는 각종 프로그램의 운영으로 군부대 내의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퇴치될 수 있었다면 진작에 없어졌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30년 전의 병영문화보다 더 악화된 상황이란 말이 왜 나오는가. 이는 '윤 일병 해법'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 일병 사건 이후 새로 출범한 민·관·군 합동 병영문화혁신위원회의 심대평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인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맞는 말이다. 인성은 나와 남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즉, 인간사회의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요컨대, 사병이나 초급간부(장교·부사관)의 인성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지휘하고 관리하는 장관급 장교의 품성이나 인성이 더욱 중요한데 이에 대한 보완책은 외면당하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 군과 국방부의 고위급간부 충원은 구미 선진국에 비해 제도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방 수뇌부의 인성과 인력구조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국방문민화를 통한 문민통제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유럽이나 중남미의 여러 나라가 - 예컨대, 독일,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 등은 물론 다수의 중남미 국가들 - 현재 여성 국방장관이 직무를 수행하고 있고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2007년 아베 신조(安倍晋三)내각의 방위상을 여성(고이케 유리코, 小池百合子)이 역임했다.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국방장관보직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아직까지 여성 국방장관은 없지만 1947년 국가안보법 제정 이후 초대 국방장관 '제임스 포레스털'에서 24대 현 국방장관 척 헤이글에 이르기까지 직업군인(장성) 출신 국방장관은 한국전 당시 국방장관을 역임한 '조지 마셜'(3대 장관)이 유일한 예외이다. 역대 장관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정치인, 변호사, 기업체 임원(CEO), 교수(학자) 등으로 군 관련 인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 연방법과 국가안보법 등에 함께 규정된 미국의 '문민통제' 전통은 그 뿌리가 깊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문민통제를 확실히 하기 위해 이중, 삼중의 장치를 상정하고 있다. 국방부 장관을 포함해 국·실장급 간부 직위는 군 현역에서 전역한 후 7∼10년이 경과하지 않으면 임용될 수 없다(국가안보법 제202조).
그렇다면 한국에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민간인이 국방장관이 되면 어떤 실익이 있을까. 우선 '육방부'로 불리는 군 수뇌부의 폐쇄적 인사구조가 허물어질 수 있다. 국방부와 합참 요직 인선이 보다 유연성을 갖게 되면서 1980년대 말 노태우 정부 이래로 우리 군이 추구해 왔던 3군 균형발전과 작전의 효율성 강화를 위한 3군의 합동성(jointness) 강화를 실현하기 위한 지름길이 된다.
현재와 같이 육군참모총장, 국방장관, 국가안보실장에 국회 국방위원장까지 모두 육사 출신이 도맡아서는 3군 균형발전이나 합동성 강화는 요원할 뿐이다. 게다가 군의 폐쇄성으로 인한 매너리즘(무사안일주의), 끼리끼리 문화가 조장·만연되어 결국은 그 폐해가 초급간부에까지 미치고 말단 부대 관리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재의 장관급 장교(장군)의 다수가 과거 지휘계선상의 예하부대 부대원의 사건·사고 발생시 '초동단계의 사건축소·은폐, 허위·지연보고' 등의 관행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경험에서 후임들의 어려운 상황을 눈감아 줄 수밖에 없는 정황이 있다. 단적인 예가 군 수뇌부가 윤 일병 사건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시민단체(군인권센터)가 윤 일병 사건을 폭로할 때까지 3개월 동안이나 은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밖에 과거 김영삼 정부 하에서 하나회 척결 등으로 육사 출신 장군진급 비율이 60%대까지 떨어졌다가 현재는 80% 수준까지 올라옴으로써 군 수뇌부의 폐쇄성과 '순혈주의'가 지속되면서 사실상의 군벌이 형성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실제로 2004년 한 언론사 보도에 따르면 장성급 인사를 앞두고 육군이 장성인사의 80%를 육사 출신으로 하라는 인사지침을 마련해 진급 대상자들에게 열람시켰다는 사례도 있다. 전체 장교의 90% 이상이 비육사출신(3사 및 학군출신 포함)인데 이런 상황에서 이들 초급·중간 간부의 사기가 진작될 수 있겠는가.
우리 군의 인성강화와 다양성 배양은 미국처럼 비육사 출신(ROTC 포함)의 장군진급 비율이 60%까지는 아니더라도 50%만 되어도 초급·중간 간부의 모병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현재 육사 출신으로 위주로 편중된 장군진급 추천·선발위원회의 위원들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장군진급은 말 그대로 무한경쟁을 통해서 진정으로 인품과 능력을 겸비한 인재가 등용되어야 말단 부대의 윤 일병사건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군 수뇌부의 또 다른, 어찌 보면 가장 원초적인 문제점이 있다. 국방주권의 문제다. 창군 64주년이 되도록 아직도 이 나라의 군 사주권을 남의 나라(미국)에 맡기고 주인의식 없이 무사안일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이양 문제만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 때 미국에 한 차례 요청해 종전의 2012년 4월에서 2015년 12월로 연기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또다시 2020년 전후로 재연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자 칼 레빈(Carl Levin) 미 상원 군사위원장은 한미연합사령관인 스카파로티 대장의 의회 인준 청문회장에서 아래 같이 말했다. 우리 군과 정부에게는 모욕적인 언사로 들릴 수 있지만, 우리는 뼈아프게 기억해야 한다.
"한국은 주권국가다. 주권국가가 전쟁 시 자기 나라를 방어할 책임은 그 나라에 있다. 우리는 전쟁발발 시 한국이 자국을 주도적으로 방어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주지시켜야 한다."(워싱턴포스트, 2013.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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