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가 심상치 않다. 장기 휴전에 합의할 것 같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는 다시 교전에 돌입했고 이라크 내전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이라크 반군 IS가 급기야 미국인 기자를 잔인하게 살해하면서 ‘제한적 공습’만 해오던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중동의 해묵은 갈등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천명했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는 사실상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북핵문제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문제가 미국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미국을 다녀온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는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둘 여력이 전혀 없어" 보였다고 전했다. 그나마 한반도 문제에 신경을 쓸 수 있는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는 사실상 공석인 상태로 방치돼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 동력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이 교수는 우리가 직접 나서서 미국을 설득하고 6자회담 재개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통일대박론', '드레스덴 선언' 등 화려하지만 실체는 없는 선언들만 내놓고 있다.
이 교수는 언제까지 북핵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북한과 우리를 포함해 6자회담 참가국들이 이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들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에는 예전에도 북한이 실행한 적 있었던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유예를, 우리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조용히 치르는 방안 등 서로에게 어렵지 않은 협상안으로 북한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북핵 문제와 더불어 꽉 막혀 있는 한일 관계에도 박근혜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과거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완화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그 입장을 유지하더라도 양국 정상회담은 해야 한다. 그래야 장관급, 차관급 대화 등이 의미 있게 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일 관계에서 과거사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지만, 양국 간에는 과거사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깊은 관계가 있다"면서 "과거 정권은 일본과 과거사 문제에 대한 갈등이 없어서 대화했겠나"라고 반문했다. 문제가 있더라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인터뷰는 지난 21일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 연구실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프레시안 : 최근 미국이 이라크 반군에 대한 공습을 실시하면서 미국의 외교 축이 아시아에서 다시 중동으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이 아시아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수훈 : 얼마 전 미국에 다녀왔는데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존 케리 국무장관, 척 헤이글 국방부 장관 등 정책 결정자들은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둘 여력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라크 내전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사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시리아 내전, 이란 핵문제 등 여러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다 보니 매순간 결정을 내리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더군다나 올해 11월 미국 상·하원 의원을 선출하는 '중간선거'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내치에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공화당이 다수인 의회는 오바마 정부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고 폭스뉴스 등 미국 보수 언론은 하루 종일 오바마의 외교가 잘못됐다, 중동을 다 망쳤다는 식으로 비판적인 내용만 내보내고 있다. 여러모로 정신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프레시안 :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그런 상황이라면 미국이 먼저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 아닌가?
이수훈 :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그나마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은 실무선에서 뛰고 있는 인사들인데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중 정상이 지난 7월 만나 "양측이 6자회담 참가국들이 공동인식을 모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견해를 같이 하였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6자회담의 수석대표들이 움직여야하는데 별다른 동향이 없다.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가 사실상 공석이기 때문이다.
글린 데이비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다른 직책을 부임 받은 지 꽤 됐다. 그런데 청문회가 열리지 않아 임명되지 못하고 있고 후임자도 없는 상황이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미국 국무부에 데이비스와 같은 '특별대표'가 많은데 이런 특수한 직책이 늘어나면 정규조직 구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도 기존의 '특별대표'가 아닌 차관보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향후 이 업무는 주한미대사였던 성김이 맡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성김은 대니얼 러셀 차관보 아래에서 근무하는 부차관보로 가게 되는데, 문제는 성김의 후임인 마크 리퍼트 주한미대사 내정자도 아직 청문회를 거치지 못해서 성김이 완전히 대사 자리를 털어 버리고 부차관보의 임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실 부차관보의 직위는 차관급인 한국, 중국과 러시아의 다른 6자회담 수석대표와 격이 맞지 않는다. 6자회담 수석대표 진용이 갖춰지면 6명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하고 그런 가운데서 일이 성사가 되는건데 지금은 만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다.
프레시안 : 미국에서 청문회가 이렇게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수훈 : 의회가 인준을 하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청문회가 오래 걸리는 측면도 있고. 미국 청문회는 3~6개월 정도 기다리는 건 흔한 일이고, 어떤 경우는 1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이렇듯 현재로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재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6자회담 재개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지만 미국은 북한의 선(先)조치가 있어야 회담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차이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1년 반이 넘는 지금까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방법은 우리가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미국에 가서 우리가 해결해볼테니 잘 따라와 달라고 설득해서 주도권을 쥐는 것밖에 별다른 방안이 없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가 먼저 나설만한 의지가 있나?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인데, 정부가 지난 11일 대북고위급접촉을 제안했지만 이 역시 교황 방문 전에 '우리는 북한과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풀어보려는 진정성이나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이수훈 : 동의한다. 고위급 접촉 제안의 경우에도 여러 정황으로 보면 북한이 받아들이기 힘들다. 북한이 우리와 미국에 제일 문제 삼는 것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인데 이 때 고위급접촉을 하자고 하니 북한으로서는 받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올해 을지프리덤가디언(UFG)훈련에 대해 굉장히 강하게 비난했다. 북한은 군, 외무성 성명 등 여러 방식을 통해 훈련을 중지하라고 이야기했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개성에 온 박지원 의원 일행에게 이런 이야기도 수차례 했고.
북한이 올해 유독 지나칠정도로 이 훈련에 반대하는 이유는 훈련 내용에 '맞춤형 억지전략'이라는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새로 나온 개념인데 북한을 겨냥한 군사적 억지전략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은 이 전략을 핵전쟁연습이자 엄중한 도발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훈련이 진행되는 와중에 고위급 접촉을 하자고 하니,이 제안을 받을 리가 있나. 결국 진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진정성 문제가 이번에만 불거진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박 대통령이 발표한 드레스덴 선언이나 8.15경축사 때 박 대통령이 북한에 제안한 것 보면 북한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역지사지의 정신이 없다.
북한은 박 대통령의 제안을 두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실질적 해결책이 하나도 없다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이 북한과 함께할 수 없는 일들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현실 불가한 목표를 내놓고 근사한 말들만 하고 있는데, 일종의 위장전술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통일준비위원회 발족도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말로만 통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지난해 취임부터 1년 반 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등 말은 얼마나 근사했나. 하지만 그 실체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동력도 현 정부에 없다는 것이다. 국회의장이 남북 간 국회 회담을 열겠다고 하고 민화협에서는 교류협력 엉망된 것 아니냐, MB 때보다 더 심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 남북 간 뭔가 해보겠다는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는 '통일 대박론'이라는 '말'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프레시안 : 우리가 먼저 진정성을 갖고 나서야 할 것 같은데 내세울 만한 해결 방안을 쥐고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이수훈 : 그렇다. 북한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만 해서는 북핵문제 해결되지 않는다. 북미간 제네바 합의, 경수로, 6자회담 등 북핵문제 해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말만 가지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북핵문제는 협상이다.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아야 한다.
북한이 과거에 했던 것, 예를 들이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정지한다는(모라토리움) 것을 북한의 선조치로 생각하고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과거에 한 번 해봤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안이 아니다. 외교부에서도 이정도의 안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 북한이 요구하는 한미연합군사훈련과 관련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미국과 동맹국이라서 훈련을 안 할 수는 없지만, 대대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조용히 하겠다는 입장으로 북한과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이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아베, 방북 가능성 있지만 북·일 수교는 글쎄
프레시안 : 6자회담과 남북관계 개선의 동력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동북아에서 유일한 유의미한 접촉은 북·일 간 접촉이다. 양국의 접촉이 향후 6자회담과 남북관계에 어느정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이수훈 : 일본이 대북 제재를 완화했는데, 이것이 우리나 미국에 자극이 돼서 6자회담과 비핵화 문제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북한과 일본 사이에는 제재해제가 큰 사건인데, 이것이 모멘텀으로 작용해서 6자회담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납치문제 해결 의지가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결되면서 양국 관계가 정상화로 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2002년 아베가 관방장관에 재임했을 당시 납치문제가 북·일 간 해결하기 힘든 문제로 비화됐다. 이후 아베는 납치문제만은 반드시 풀어보겠다는 의지가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양국 접촉만 해도 상당히 체계적으로 준비했다는 것이 확인된다. 일본이 북한에 특사 보내고, 비밀스럽게 접촉하는 등 여러 경로의 만남을 통해 협상이 완성되고 이후에 이를 공식화한 것 아닌가? 아베 총리가 집단적자위권을 밀어붙이듯이 이 문제에도 강하게 밀고 나갈 것으로 본다.
다만 북·일 수교까지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납치자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고 9월 말에 보고서가 나오고 이를 일본에서 평가하는 절차가 남아있는데, 수교까지 가려면 배상 문제도 있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다만 아베 총리의 방북이나 양국 정상회담까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저변부터 흔들리고 있는 한일관계, 복구 서둘러야
프레시안 : 북핵문제와 더불어 한일관계도 잘 안 풀리고 있다. 북한과는 핵문제로, 일본과는 과거사 문제로 거의 남북, 한일 관계가 단절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지 1년 반이 넘었지만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다. 양국에 과거사 문제가 있긴 한데, 과거사 문제는 그대로 놔두더라도 이제는 한일 간 대화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수훈 : 한일관계를 이렇게 가져가면 대단히 곤란하다. 과거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완화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그 입장을 유지하더라도 양국 정상회담은 해야 한다. 그래야 장관급, 차관급 대화 등이 의미 있게 열릴 수 있다.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데 장관, 차관, 국장급에서 일본과 만난다고 한들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나.
한일 관계에서 과거사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지만, 양국 간에는 과거사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깊은 관계가 있다. 이런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과거 정권은 일본과 과거사 문제에 대한 갈등이 없어서 대화했겠나? 그 때도 문제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따질 것은 따지면서 만나고 이야기했다.
프레시안 :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외교 정책 점수가 후한데, 막상 실행하는 내용을 보면 꽉 막힌 남북관계나 한일관계를 뚫으려는 의지나 행동이 없는 것 같다.
이수훈 : 단호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는 잘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실천은 어떻게 됐는지, 내용은 어떻게 됐는지 곰곰이 따져보면 잘한 부분이 없다. 잘했으면 지금 이렇게 진전되는 일들이 하나도 없었겠나.
프레시안 : 대북·외교 정책을 집행하는 측근이나 참모의 문제도 있지 않을까? 외교정책이 군 출신 인사들에게 맡겨져 있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
이수훈 : 최근에 바뀐 인사들이 꽉 막힌 박근혜 정부 외교를 뚫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이병기 국정원장은 외교관 출신이고 일본에서 대사도 했으니 대통령에 조언해서 한일관계 푸는데 나서야 한다.
한일관계가 나빠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국민한테 온다. 지금 일본에서 혐한 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한류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혹은 일본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지금 한일 간 갈등이 양국 관계의 저변까지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양국의 정권 차원에서 갈등이 있는 것은 정권을 바꾸고 인사를 바꾸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해결책이 비교적 단순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양국이 정부차원이 아니라 국민차원에서 서로를 미워하게 되면 양국관계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 돌이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까지 한일관계를 방치시켜 놓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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