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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되거나 방조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병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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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방치되거나 방조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병폐들

[민교협의 정치시평] 기득권 이익에 복무하는 국가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유독 도드라지게 발생하는 독특한 사회현상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부동산 불평등, 조기 영어 교육, 과외와 학원 등 각종 사교육, 골프장, 기러기 아빠, 야근 문화, 성접대 문화, 학벌, 학력 문제, 고시와 학원 열풍, 과잉 상태의 자영업 등등... 

대충 생각나는 것만 나열해도 매우 특이한 사회 현상의 종류가 꽤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회현상들 외에도 한국에서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학교와 군대에서의 폭력이나 왕따, OECD 최고 수준인 노인, 청소년, 여성의 자살률 등과 같은 최근에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문제들 역시 한국의 경제 수준에 반해 뿌리깊이 고질화되어 있는 사회 현상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얼핏 보면 크게 연관성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기한 사회현상이나 사회문제들은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원인과 해결책에 있어서 공유하고 있는 지점들이 많다고 생각된다. 즉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이 모든 문제들의 원인은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복지 사회 건설을 방해하고 거부하고 있는 특권적 사회기득권 집단들과 그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국가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는 그 동안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경제 수준에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으로 복지 제도를 유지한 채, 국민들로 하여금 무한경쟁 상태 속으로 빠져들게 해 왔고, 그러한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들에게만 모든 것을 누리고 지배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해 왔다. 그 범위는 사회에 상대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재벌이나 고위 관료 등의 집단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소수 기득권 집단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지속, 확대시키기 위해 국가를 포획해 정글 상태에서의 경쟁이 낳는 이익들을 독점적으로 취해 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생존권적인 위협을 느끼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자신과 가족들을 지키고, 나락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온갖 편법적 수단들을 강구해 왔다. 부동산은 갑작스런 가계의 붕괴를 대비하는 모종의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고시를 통한 고위공무원으로의 길은 출세를 통한 가장 안전한 생계 수단으로 인식되었다. 지연과 학맥에 의한 폐쇄적 위계질서와 배타적인 기득권 네트워크로 특징지어지는 한국 사회 구조에서 각종 사교육과 조기 영어 교육은 출세와 성공, 그리고 그것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러한 경쟁 구도는 한국식 학벌 위계 사회에서 그 보다 더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엘리트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로 조기에 자식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는 풍토까지 낳았다. 무한경쟁, 약육강식의 시장원리가 관철되는 사회에서 야간노동은 너무나 당연하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국가와 사회가 제공해 주는 복지 대신 성접대 문화 속에서 보상받으려 한다. 사업의 성공은 이러한 공간에서의 부패와 성적 쾌락이 좌지우지하게 된다. 저임금과 조기해고의 위협에 시달리는 노동 대중들은 국가가 보장을 포기한 영세한 자영업으로 뛰어 들어 서로를 속이고, 서로 갉아 먹다가 극소수의 성공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결국 심지어 성산업, 사채업, 보도방 등등 반불법적인 비공식 경제로도 기꺼이 뛰어든다. 
   
이러한 삶 속에서 고통 받고 그로인해 감정을 참지 못 하는 부모들 밑에서 자라는 학생들 역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의 부모들의 삶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여러 학원에 다닐 수 있는 학생이나 다닐 수 없는 학생이나 모두 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 하는 상태로 살아간다. 학교의 양극화 속에 아예 학교가 슬럼화된 학생들에게는 최소한의 희망도 없다. 이렇게 학교를 다녀서 졸업해 봐야 그 어떤 꿈도 꿀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억지로 몰아넣는 학교에서 폭력이 만연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일부는 자살로, 다른 일부는 폭력배로 스스로의 인생을 파괴하지만, 이들 외 다수의 학생들도 국가는 아무 것도 안 해주는 정글과 같은 사회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편법과 불법에 더 익숙하게 됨으로써 스스로를 파괴한다. 이러한 현상의 연장선상에서 군대는 그러한 편법과 폭력을 더욱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공간이 되고 만다. 윤 일병 사건과 같은 일들은 이러한 사회전체적 맥락에서 볼 때,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상기한 사회 현상들은 빈곤 계층의 급박한 생존 문제 때문이 아니라, 실은 그 보다 더 안정적인 계층과 집단들에서 더 높은 명예나 더 출세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보이는 집단이나 계층조차 불안정한 지위로 인해 불안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총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기득권 집단들은 이러한 구조를 유지하려고 하며, 정당의 교체와 같은 ‘정치’는 실질적 지배 구조를 은폐하는 도구가 되고 만다.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민중들로 하여금 남을 밟아야만 내가 생존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살도록 강제한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이들은 쉽게 밟고 올라갈 수 있는 희생자들을 양산해 낸다. 비정규직이나 영세자영업자들 외에도 장애인, 여성, 이주자들은 가장 쉽게 희생되는 집단이다. 물론 세상은 이렇게 끔찍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사회 곳곳에서 썩어 들어가고 방치되어 있는 부분이 넘쳐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자유주의의 공격이 이러한 현상들을 악화시키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와 별도로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해 온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지하게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모든 문제들의 원인은 상당부분 공통적인 데에 있기 때문에 대안은 의외로 무척 간단하다. 즉 대한민국의 경제적 지위에 걸맞는 사회복지제도가 현실화되어 교육과 의료의 무상 혜택, 토지와 주택 등의 공공성이 확보되고, 사회적 일자리가 유럽 평균 수준으로 크게 확대되며, 연금과 실업급여 등 각종 급여제도가 실질적인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게 되면 굳이 정글에서 극단적 경쟁을 할 필요도 없으며, 그러한 경쟁에서 낙오되어 스스로 반범죄적 영역이라는 나락으로 빠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문제는 국가의 의지이다. 그러나 그런 의지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세월호 사건으로 많은 부조리와 부패 고리들이 폭로되었지만, 그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이미 오래 전에 조세회피처에 국민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금액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폭로되었지만 별다른 조치도 없었다. 재벌 자체의 개혁은커녕 중소기업 압박, 골목상권의 파괴가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고, 하청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의 갑질 횡포에 시달리고 있지만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세 모녀 사건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빈곤과 불평등의 고통 속에서 죽어나가지만 정치인들은 이제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그나마 ‘전관예우’ 문제로 축소된 채 처음으로 ‘관피아’ 문제가 오르내렸지만, 그 와중에도 전관예우를 즐기는 등 관피아들은 활개를 치고 있다. 
  
제대로 파악조차 안 되는 우리 사회의 고소득 기득권층의 탈세는 천문학적 수준이지만, 그냥 방치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종교 마피아들로 인해 종교인 과세 문제는 아무런 진전이 없으며, 상지대가 상징하듯 사학 마피아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세상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부패 집단에서 걸러냈다는 장관 후보자들의 각종 위법 행위들은 과거의 문제가 아님을 증명한다. 세월호 정국은 집권당과 관료와 재벌과 마피아들의 과두지배동맹세력들은 의료 민영화와 개발과 관련한 각종 규제 철폐 등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적기에 불과했다.    

국가가 이러한 집단에 의해 장악되어 있고 그들의 이익을 위한 도구가 되어 있는 한, 사회의 병폐들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에 강력히 맞설 수 있는 진보좌파 정당이나 노동조합, 시민사회 단체들의 힘이 너무나 허약하고 파편화되어 있는 현재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정치적 투쟁 외에도, 다양한 점진적 노력들도 중단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고질적인 사회문제의 근본적 원인과 그 해결책은 수렴되는 부분이 있기에 여러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과 방식들에 대해서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거나 사회를 당장 변혁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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