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검사를 받다가 숨진 고(故) 전예강(8) 양의 유족들이 진상 규명과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행법상 의료분쟁조정제도는 병원 측이 거부하면 조정이 성립되지 않는데, 이를 '자동 조정 제도'로 바꾸자는 것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전예강 양의 어머니 최윤주 씨 등 유족들은 21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NO 의료사고, Change 의료분쟁조정법, Make 안전한 응급실을 슬로건으로 하는 대국민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들은 코피를 흘리던 예강이가 지난 1월 23일 적혈구와 혈소판 수치가 정상 수치의 3분의 1인 채로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으나, 병원 측이 수혈을 3시간 30분 지체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요추천자 시술'을 강행하다가 5회 실패한 끝에 쇼크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 "코피 흘리던 아이, 병원서 검사 중 죽었어요")
유족들은 예강이 사망 관련 자료를 요구했으나, 병원 측으로부터 "의료진은 잘못한 것이 없으며 더 알고 싶으면 법대로 하라"는 답을 들었다. 소송을 원치 않았던 유족들은 사망 원인을 알기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했지만, 병원의 거부로 조정이 각하됐다.
환자단체연합회는 "2011년 제정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조정법)'에는 조정신청을 해도 병원 측에서 중재를 거부하거나 14일 동안 무응답하면 각하되는 독소 조항이 있다"고 비판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분쟁조정을 신청했을 때, 병원의 거부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동으로 중재 신청이 접수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피신청인의 동의 없이 조정이 성립되는 한국소비자원이나 언론중재위의 조정 제도와도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료분쟁조정 실패 끝에 예강이의 민사 소송을 맡은 이인제 변호사는 "병원 측은 예강이가 응급 상황이었는데도 적혈구 수혈을 3시간 30분 지연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면서 "또 당시 예강이는 골수검사가 의심되는 환자였는데, 왜 요추천자 검사를 했는지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예강이 엄마 최윤주 씨는 "감기 한 번 제대로 걸린 적 없는 예강이는 우리 가족에게 웃음보따리였다. 지옥의 아픔이 있다면 이런 아픔 아닐까 싶다"며 "비록 예강이는 어른들의 실수로 떠났지만, 또 다른 예강이 사례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의료 사고 논란과 관련해 세브란스 병원 관계자는 "수혈 과정에서 환자가 4시간 방치됐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고, 염증성 질환에 의한 출혈 가능성(뇌수막염)을 의심해서 요추천자를 시행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요추천자 검사 자체로 사람이 사망하지는 않는다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라며 "쇼크사라는 말은 모호한 정의여서 정확한 사인을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의료분쟁조정 신청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중재 제도는 의료진의 과실을 전제하고 의사와 가족의 합의를 중재하는 것"이라며 "의료 과실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원을 통해서 (중재)하자는 입장이었으나 유족이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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