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일간 십자가를 메고 전국을 순례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이호진 씨가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았다.
단원고등학교 고(故)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 씨는 이날 오전 7시 서울 교황청대사관에서 이 씨의 딸 아름 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세례를 받았다. 이 씨는 이날 교황과 같은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공식 기록상으로는 한국 신자가 교황에게 세례를 받은 것은 지난 1989년 이후 25년 만이다.
지난 14일 도보 순례를 마친 이 씨가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례를 부탁했고, 교황이 흔쾌히 수락하면서 이날 세례성사가 이뤄졌다.
이 씨는 세례가 끝난 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바티칸에서도 우리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길"
이날 세례성사에 동석한 이 씨의 딸 아름 씨는 세례가 끝난 뒤 "바티칸에서도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길 간절히 바라는 아빠의 마음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아름 씨는 이 씨의 페이스북 계정에 '2014년 8월 17일. 아빠가 교황님께 세례받은 것에 대해서…'라고 시작하는 글을 올리고, 이 씨가 세례를 받은 이유를 설명했다.
아름 씨는 "아빠가 교황님께 세례를 받은 건 아빠의 개인적인 욕심도 아니고 쉽게 세례를 받으려는 것도 아니"라며 "아빠가 하는 모든 건 아이들을 하루라도 더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교황님께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우리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하지만 교황님께 세례를 받아서라도 아빠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은 그 마음을 조금만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교황님께서 아빠를 기억해 주신다면 언젠가는 바티칸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기억해주는 날이 올 것"이라며 "바티칸에서도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길 간절히 바라는 아빠의 마음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알아달라"고 간청했다.
다음은 고(故) 이승현 군 누나 이아름 씨가 아버지 이호진 씨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 전문.
2014년 8월 17일아빠가 교황님께 세례 받은 것에 대해서여러가지 다른 이유들로 좋지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께는 사실 드릴 말씀은 없어요.단지 우리 아빠는 지금까지 아이들과 남은 실종자들을 위해서 걸어오셨고 어찌하다보니 지금은 교황님께 세례를 받으셨어요.하지만 교황님께 세례를 받아서라도 아빠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은 그 마음을 조금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교황님께서 아빠를 기억해 주신다면 바티칸에 돌아가셔도 이 얘기를 해주실거고, 아이들 얘기도 해주실거고, 언젠가는 바티칸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기억해주는 날이 올거라고 생각해요.교황님께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우리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아요.그럼에도 아빠가 교황님께 세례를 받은 건 아빠의 개인적인 욕심도 아니고 쉽게 세례를 받으려는 것도 아니에요.아빠가 하는 모든 건 아이들을 하루라도 더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에요.설사 아빠가 세례를 받으려고 걸으셨다고 한들 쉽게 세례를 받은게 아니라 사실 누구보다 어렵게 받은거겠죠.저는 아빠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교황님이 아니라 어떤 누가 되더라도 아빠가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응원하고 싶어요.모든 분들이 아빠를 응원해주시길 바라지않아요.하지만 누구보다 캄캄한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아빠라는 걸 조금만 알아주셨음 좋겠어요.그리고 그 희망이 교황님께서 되주신 거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바티칸에서도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길 간절히 바라는 아빠의 마음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알아주세요.저는 우리 아빠가, 우리 아버지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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