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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백수식당 육회비빔밥의 깊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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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예천 백수식당 육회비빔밥의 깊은 맛

9월 음식문화학교



맛 속의 문화, 문화 속의 맛을 찾는 음식문화학교(교장 김학민, 음식칼럼니스트)가 가을을 맞아 다시 답사문을 엽니다. 제36강이 9월 20일(토요일) 열립니다. 경상북도 예천의 조선시대 마지막 주막 ‘삼강주막집’에 들린 후 내성천의 절경 회룡포를 걷고, 예천 백수식당에서 육회비빔밥의 깊은 맛을 감상하는 일정입니다.

제36강 답사여행의 요점은 이렇게 정리됩니다(수업 일정은 현지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 스쿨버스 안에서 김필영 교감선생님의 예천의 역사와 문화 강의
* 조선시대의 마지막 주막 ‘삼강주막’ 탐방
* 장안사 뒷산 비룡산 전망대에서 회룡포 비경 내려다보기
* 회룡포 가로질러 걷기
* 백수식당에서 육회비빔밥으로 점심식사 겸 뒷풀이(못 드시는 분은 불고기백반)
* 백두대간 숲길 느릿느릿 걷기(1시간 정도)
* 백두대간 ‘두메산장’에서 양고기 꼬치구이 개강 파티

▲회룡포 비경 ⓒ예천군

예천으로 가기 위한 스쿨버스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9월 20일(토) 아침 7시 30분 서울에서 출발합니다. 7시 20분까지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음식문화학교> 버스에 탑승 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날씨에 맞게 가벼운 트레킹 차림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삼강주막]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의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수려한 경관의 세물머리에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이 남아 있다. 1900년 전후 세 물길이 만나는 삼강리 나루터에 세워져 소금과 쌀, 소소한 생활필수품 등을 이고지고 오가던 보부상, 장돌뱅이는 물론 근교의 시인묵객, 서울로 향하는 나그네들의 허기와 갈증을 풀어주던 곳이다. 100년이 넘게 명맥을 유지해 오던 삼강주막은 제2대 주모이자 ‘낙동강의 마지막 주모’로 불렸던 유옥연 할머니가 2005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발길이 끊겼다가, 2008년 1월 예천군에 의해 수리, 복원되어 현재 삼강마을 부녀회가 운영하고 있다.

[장안사(長安寺)] 학이 춤을 추듯 뭇봉우리들이 힘차게 굽이치고, 구름을 담아놓은 듯 비룡이 꿈틀거린다는 비룡산(飛龍山) 정상 가까이에 장안사가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금강산 장안사, 양산 장안사와 함께 국토의 중간인 예천 용궁면 비룡산 장안사가 그 하나이다. 13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고찰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장안사는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진 쇠락한 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두타(頭咤) 스님이 젊은 나이로 전국을 행각하던 중 이곳 장안사의 빼어난 산세를 보고 들어와 혼자 괭이로 산길을 내고 우마차로 들보를 옮기며 새롭게 가람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기와를 머리에 이고 흙을 지고 나르는 스님의 모습에 마을주민들도 감복해서 스님을 도와 불사를 거들어 모두의 간절한 원력으로 마침내 장안사가 옛 모습을 보이고 다시 신도들이 찾아들자 스님은 말없이 절을 떠났다고 한다. 올 때의 모습 그대로 걸망 하나만 메고 조용히 떠난 스님은 출가 때 세운 서원을 이루기 위해 지금 태백산 어디선가 공부만 하고 계신다고 전한다.

[회룡포(回龍浦)]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태극무늬 모양으로 휘감아 돌아 모래사장을 만들고, 거기에 마을이 들어서 있는 곳이 회룡포이다. 유유히 흐르던 강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상류로 거슬러 흘러가는 기이한 풍경 속에 회룡포 마을과 내성천이 들어 있다. 내성천으로 둘러싸인 땅의 모양은 항아리 같이 생겼다. 내성천 넓은 백사장 가에는 나무가 둥근 곡선을 따라 심어져 있고, 논밭이 반듯반듯 정리되어 있다. 그 중앙에 회룡포마을이 있고 오른편 곳곳에는 숲이 울창하다. 회룡포마을에는 7, 8년 전만 해도 20여 남짓 가구가 살았으나, 모두 도회지로 떠나고 지금은 9가구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은 논밭까지 합쳐 5만 평 정도이다. 마을을 한 바퀴 도는데 1시간도 채 안 걸린다.

▲삼강주막 ⓒ예천군

백수식당의 육회비빔밥은 전라도 사람들도 먹으러 올 정도로 맛이 있습니다. 다른 집과는 달리 이 집의 육회비빔밥은 간장으로 비벼 먹습니다. 육회비빔밥은 숟갈이 아니라 젓갈로 비벼야 합니다. 숟갈로 비비면 밥알이 으깨져 육회와 덩어리지기 때문에 산뜻한 맛이 나지 않습니다. 육회를 못 드시는 분들은 불고기를 드시면 됩니다.

[육회비빔밥] “밥은 정미된 흰 쌀밥을 싫어하지 않으시고, 회(膾)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 밥이 쉬어서 냄새가 나거나 맛이 변한 것과, 또한 생선이 상해 냄새가 나고 뭉그러진 것은 먹지 않으셨다. 알맞게 익지 않은 것도 먹지 않으시며, 때가 아니면 먹지 않으셨다. 바르게 잘라지지 않았으면 먹지 않으셨고, 간이 맞지 않는 것도 먹지 않으셨다. 고기가 많아도 주식보다 많이 먹지 않으셨다. 술은 양을 제한하지 않았으나 취해서 난잡하게 되는 일이 없으셨다. 시중에서 산 술이나 육포는 먹지 않으셨다.…나라의 제사를 도와주고 제물로 받아온 고기는 밤을 넘기지 않으셨다. 자기 집 제사에 썼던 고기는 사흘을 넘기지 않으셨고, 사흘이 넘은 것은 먹지 않으셨다….”

<논어> ‘향당’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마땅히 인간이 지켜야 할 삶의 방식과 생각에 대해 엄격하고 철저하게 규범과 격식을 정하여 제시한 글이 <논어>이니, 이 구절은 곧 음식에 대한 공자님의 생각과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공자님이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는 회는 오늘날 우리가 즐겨먹는 생선회가 아니다. 일본과는 달리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생선회가 보편적이지 않았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회는 고기육(肉=月)변이 들어간 회(膾)이니, 이는 쇠고기회 곧 육회다.

<예기> ‘내칙’에도 “고기의 날것을 잘게 썬 것을 회라고 한다”라고 했으니, 회는 육회이며 그 조리법은 고기를 가늘게 채 써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에는 옛날부터 회라는 음식이 있었고, 이를 즐겨 먹었음이 확실한데, 지금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동물이나 생선의 날것을 먹는 일이 거의 없다. 중국의 역사소설가 진순신은, 11세기 송나라 시대 대시인 매요신의 시 <회를 차려놓고 좌객을 대접한다>에 ‘회’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이때까지는 회라는 음식이 중국에 건재하였으나 그 즈음에 창궐했던 역병으로 말미암아 곧 사라진 것으로 추정한다.

회는 중국과의 교류가 빈번해진 삼국시대 초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국시대 중기부터 고려말까지 불교가 흥성한 시기에는 살생을 꺼렸으므로 전반적인 육식의 퇴조와 함께 사라졌다가 고려말 육식을 되찾았을 때부터 다시 먹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숭유 사조에 따라 공자님이 회를 좋아하였으므로 아무 저항감 없이 육류와 어패류 회를 먹었다.

<어우야담>에 “임진왜란 때 중국 군사 10만 명이 오랫동안 우리나라에 주둔하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회를 잘 먹는 것을 보고 중국 군사들이 더럽다고 모두 침을 뱉었다. 그것을 보고 우리나라 한 선비가 말하기를 ‘<논어>에 보면, 회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고 하면서, 그 중에도 짐승과 물고기의 날것을 썰어 회를 만들었다. 일찍이 공자께서도 좋아한 것인데 어찌 그대들의 말이 그렇게 지나친가’라고 논박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처럼 회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되 중국에서는 사라져버렸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이후 생선회를 먹게 되면서 쇠고기회는 특화되어 육회로 불리게 되고, 이제는 생선회가 회를 대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육회·생선회 외에 강회·두릅회·송이회 등 회를 만드는 식재료도 다양하게 확장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그들의 입맛에 맞게 육회는 받아들이지 않고 ‘사시미’라는 이름으로 생선회를 크게 꽃피워 이제는 세계적 음식으로 발전시켰으니, 동양 삼국에서 회의 발전형태가 흥미롭다.

육회는 싱싱하고 기름기 없는 연한 쇠고기의 살을 얇게 저며 물에 담가 핏기를 빼고 가늘게 채 썬 다음, 파·마늘을 다져 후춧가루·깨소금·기름 등으로 잘 주물러서 잣과 채 썬 배를 섞어 만든다. 육회용 쇠고기를 생선회처럼 떠서 참기름양념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하는데, 이를 전라도 지방에서는 ‘생고기’ 또는 ‘육사시미’라 하고, 경상도 지방에서는 ‘뭉테기육회’라고 부른다. 요즘 한우가 유명한 지방에는 꼭 잘하는 육회 전문점들이 있다. 광주의 한국관, 함평 목포식당, 예천 백수식당, 서울 광장시장 육회골목 등이 유명하다.

▲예천 백수식당의 육회비빔밥 ⓒ백수식당

점심을 먹고는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소백산 끝자락에 있는 두메산장으로 향합니다. 이 산장에는 음식문화학교의 김필영 교감선생님이 요양 휴식 차 1년간 머무르고 계십니다. 김 교감선생님이 오랜만에 답사길에 나선 우리 학교 학생들을 위해 양고기 샤슬릭(꼬치구이)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드셨던 단양의 대강막걸리를 준비해 주시겠답니다.

샤슬릭을 준비하는 동안 백두대간 숲길을 걷습니다. 중턱에 난 평탄하고 호젓한 산길로, 가도가도 끝은 없는데 사람 하나 만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좀 걸어야 점심 때 든든하게 먹은 육회비빔밥을 소화시키고 맛있게 양고기 샤슬릭을 맛 볼 수 있습니다.

오후 5시, 예천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친 음식문화학교는 서울로 향합니다.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는다면 저녁 8시 전에는 서울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음식문화학교 예천 답사로 ⓒ음식문화학교

음식문화학교 9월 답사 참가비는 11만원입니다(교통비, 강의비, 점심식사 겸 뒤풀이, 간식비,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 드립니다. 참가 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 전화 050-5609-5609 /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세요(회원 아니신 분은 회원 가입을 먼저 해주십시오. ☞회원가입 바로가기). 음식문화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참가신청 바로가기

김학민 교장선생님은 유명한 음식칼럼니스트로, <한겨레21>에 '김학민의 음식이야기'를 수년간 연재했으며, 최근에는 같은 주간지에 '김학민의 주류인생'이라는 술 칼럼을 연재한 바 있습니다. 음식 칼럼집으로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와 술 칼럼집 <태초에 술이 있었다>가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음식문화학교를 열며> 다음과 같이 얘기했습니다.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

최초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 그대로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불의 발견을 계기로,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슬기를 발휘하여 서서히, 또한 독특하게 식생활 체계를 세웠으니, 이것이 음식문화입니다. 이로써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로 진화되어, 각기 살고 있는 곳의 기후와 풍토에 따라 제각각의 음식문화권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음식문화의 자연스런 분화와 발전이 있었으므로,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규범을 흐트러트리지 않는 한, 한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먹든 그것은 그의 자유입니다. 또 특정한 먹을거리를 특별하게 먹게 된 것도 그 공동체 고유의 살아온 환경과 문화, 역사의 소산이므로 자기만의 잣대를 들이밀어 왈가왈부할 일도 아닙니다.

흔히 "모두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원초적 과제들을 의·식·주로 나누어 그럴 듯하게 분화하였지만, 그건 어느 정도 문명화된 시기의 이야기이고, 사실은 식(食)의 문제, 곧 먹을거리 문제가 인간 실존의 근원입니다.

먹을거리 문제는 질서와 규범 속에서 평화롭게 조절돼 가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매일 매일의 사회면 기사의 행간을 뜯어보면 그 이면에는 모두 먹는 문제가 개재되어 있고, 국가 사이의 전쟁, 민족 사이의 분쟁도 땅과 자원의 문제가 대부분을 차지하니, 그 끝을 파보면 결국 먹는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맛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먹을거리 문제의 극단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그러나 먹을거리의 질과 독점을 둘러싸고는 계속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거대 식품산업이나 외식사업 등에서 양산되는 각종 인스턴트 식품들이 우리 식탁에 도전해 오고 있고, 세계 각국의 먹을거리들도 그 나라의 문화요소들과 함께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먹을거리의 홍수 속에서 음식문화학교는 우리 전통 먹을거리를 낳게 한 사회문화적 배경, 그리고 특정 먹을거리와 그를 갈무리하는 맛깔스런 음식점, 그리고 그 주인과 공동체에 얽힌 이야기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곧 '먹을거리 이야기'를 넘어 '이야기가 있는 먹을거리'를 찾는 여정이 음식문화학교가 가고자 하는 방향입니다. 문화유산 답사의 개척자 유홍준 교수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유 교수의 어법을 빌려 말한다면, 음식도 아는 만큼 맛있습니다.

음식문화학교는

음식문화학교는 요리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음식문화학교는 문화 속의 음식, 음식 속의 문화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음식문화학교는 음식의 현장을 찾아가 문화를 즐기거나, 문화의 현장을 찾아가 음식을 즐기는 기행의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곧 '금강산과 식후경의 조화'가 저희 음식문화학교의 교훈입니다.

앞으로 김치, 젓갈, 된장, 두부, 등심, 갈비, 불고기, 육회, 토종닭, 홍어, 비빔밥, 산나물, 막걸리 등 숱한 우리 전통 먹을거리의 명품, 명소를 찾는 기행이 쭉 이어집니다. 전문가 또는 교장의 음식문화 강의 후 맛있는 음식을 즐기게 되며, 재래시장 장보기, 산나물 뜯기, 쭈꾸미 잡기, 콩 털기 등의 체험행사도 함께 하며 유명 음식축제 여행으로 변화를 꾀하기도 하겠습니다.

음식문화학교는 월 1회, 셋째 토요일에 여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정(명절, 연휴, 장날, 음식축제 등)에 따라 날짜를 옮길 수도 있으며, 당분간은 당일 코스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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