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이 38일간의 대장정을 마친 14일, 순례단의 마지막 종착지 대전에서는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다. 세월호 희생자인 고(故)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 고(故) 김웅기 군의 아버지 김학일 씨가 2000리 넘는 도보 행진 가운데 만난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기 위해 작은 음악회를 마련한 것. 음악회 이름 또한 이런 의미를 담은 '세월호 작은 음악회-길 위에서'다.
순례 최종 목적지인 대전 월드컵경기장에 이날 오전 9시경 도착한 순례단은 간단한 기자회견을 연 뒤 음악회가 열리는 유성성당에서 다시 모였다.
음악회 사회는 이 씨가 직접 맡았다. 행진 때 모습 그대로 나타난 이 씨는 마지막 여정을 함께한 200여 청중 앞에 섰다. 길 위에서 보였던 침통한 표정이 아닌 평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 씨는 직접 마이크를 잡은 이유에 대해 "저희가 이천리 길을 걸어오면서 만난 분들에게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 드렸다. 못다한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 사회를 자처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숙한 점이 있어도 양해 부탁드린다"면서도 "그런데 아마 미숙한 점이 없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다음 곡에 대해 간간이 설명을 곁들이는가 하면, "연주가 맘에 든다 하면 앙코르를 외쳐달라. 그러나 앙코르는 없다"며 청중 호응을 이끌어내는 등 전문 진행자 못지않은 말솜씨를 뽐냈다.
이 씨의 소개를 받아 무대에 선 이들은 모두 두 아버지가 '길 위에서' 만난 이들이었다. 이 씨가 직접 청했다는 곡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오카리나로 연주한 정미영 씨는 눈물을 글썽였다. 정 씨는 "진도에 내려가서 걷다가 쉬는 시간에 오카리나를 연주했더니 아버님들이 다시 연주해달라고 하셔서 왔는데, 하다보니 아버님들이 눈에 들어와서 실수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사히 여기까지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심청가'를 부른 소리꾼 현미 씨도 두 아버지의 완주를 축하했다. 이어 "심 봉사가 눈 뜨는 대목을 보면, 심 봉사는 심청이를 만나 눈을 뜬다"며 "육신의 눈은 뜨고 있지만 영혼의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이 눈을 떠 진실을 보고 거짓과 탐욕을 버리기를 바란다"이고 밝혔다.
"순례 끝나면 뭐하냐고? 길 위의 인연, 책에 기록하겠다"
이 씨는 순례단에 거듭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지금까지 받은 질문 중에 '순례 끝나고 뭐 할거냐'는 질문이 많았다"며 "제 계획은 세월호로 만났던 많은 분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간직하기 위해 기록을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두 아버지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이름 하여 '유족이 유족을 인터뷰하는 코너'다. 이 씨는 김 씨를 무대 위로 불러내 의자에 앉히고 바로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그간 '유족'에게 기대할 수 없었던 여유와 웃음이 묻어나는 이야기가 오갔다.
이호진 : 십자가를 지고 걷자는 아이디어는 누구 아이디어였습니까.
김학일 : 승현이 아버님(이호진 씨)이 내주셨습니다.
이호진 : 초기에 십자가를 나눠서 지다가 이호진 씨 다리 부상으로 혼자 짊어지게 됐는데, 그때 기분이 괜찮으셨습니까.
김학일 : 다 끝났으니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화도 많이 나고. (좌중 폭소)
이호진 : 6킬로그램에 이르는 십자가를 저도 잠깐 멨지만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십자가를 쥐고 나서는 동안 영광과 찬사도 한몸에 받았습니다.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학일 : 다음에 또 십자가 지자는 제안을 하신다면 또 지겠습니다.
이호진 : 제가 양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김학일 : 맞습니다.
재치 넘치는 입담을 선보이던 김 씨는 "순례단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달라"는 이 씨의 질문에 웃음기를 걷어내고 말했다.
"저는 아들 이름을 두 번을 못 부르겠더라고요. 내일 미사만 끝나면 밤에 '웅기야,' '웅기야' 이렇게 두 번 세 번 불러보려고요. 울음을 멈추면 안 됩니다. 끝까지 함께 눈물 흘려주시고, 울음을 멈추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김 씨는 "웅기 군을 가장 사랑했던 순간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말에 다시금 얼굴이 굳었다.
"걸어오면서 내가 얼마나 웅기를 사랑했는지를 떠올려봤어요. 그런데 죄송하게도 지금까지도 생각이 나지 않아요. 웅기를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마지막 질문은 "순례길을 통해 마음이 좀 편해지셨다고 생각하나"였다. 김 씨는 "저는 정말 얻은 게 많다. 처음에는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십자가를 통해 영광을 느꼈다. 너무 많이 편안하고, 좋다"고 했다.
두 아버지는 "길 위에서 만난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겠다"고 다짐하며 "언제 어디서 또 뵐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가정 모두 안녕하시기를 바란다"며 큰 절을 올리며 38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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