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정세현 "드레스덴 선언 이행? 북한부터 설득해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정세현 "드레스덴 선언 이행? 북한부터 설득해라"

[정세현의 정세토크] 통일준비위, 통일정책 아닌 대북정책 펼쳐야

지난 7일 박근혜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통일준비위원회가 첫 회의를 가졌다.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천명한 이른바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구체적 이행 계획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비판의 날을 거두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후속 조치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은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북한의 경계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 역시 초기에 북한의 의심을 많이 받았다고 소개했다.

정 전 장관은 "1998년 4월 남북 비료회담이 열릴 때 북측 수석대표가 햇볕정책의 본심이 뭐냐고 진지하게 묻더라"라며 "그래서 우리가 북측을 먼저 돕고 그 과정에서 북측이 우리를 신뢰하면 북측에서도 우리한테 잘해주면 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햇볕정책이 자신들을 "녹여 먹으려는" 정책이라는 의심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회담 이후 당시 김대중 정부는, 정부가 나서서 햇볕정책의 진정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북한에 먹혀들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 전 장관은 "그래서 민간 차원의 교류 협력을 활성화시켜서 북한으로 하여금 '남측이 진짜 우리(북측)한테 잘해주려고 하는구나'라고 느끼게 해주자고 결론내렸다"며 "박근혜 정부도 시간을 두고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정부에서 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북한이 드레스덴 선언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통준위의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 전 장관은 "남한에서 우리끼리만 통일에 대한 청사진을 다 만들어 놓고 북한보고 받으라고 하면 그게 잘 되겠느냐"며 "통준위가 드레스덴 선언의 후속조치를 연구할 것이 아니라 남북교류 활성화를 위한 선행조치를 연구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대담에 함께한 황재옥 (사)평화협력원 부원장 역시 "통일정책은 남북관계가 상당히 좋아진 이후에 쓸 수 있는 정책"이라면서 "통일 청사진이나 드레스덴 선언 이전에 이에 대한 선행조치로서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가 19일로 제안한 남북 고위급 접촉이 성사된다면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가 논의될 수 있지만, 전향적인 조치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정 전 장관은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풀겠다고 공식적으로 말하는 협상 대표가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 문제는 오히려 협상 전에 하나의 카드로 남겨두는 것이 전술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담은 지난 13일 서울 동교동에 위치한 김대중 도서관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 7일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준비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통준위가 통일의 청사진을 만들고, 통일과정의 내비게이션이 되어 주고, 통일논의의 용광로가 되어 달라는 것과 함께 드레스덴 선언의 구체적 이행계획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드레스덴 선언 직후부터 이에 반발해왔고 급기야는 지난 10일(현지시각) 미얀마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도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또 지난 12일 <로동신문>에서도 드레스덴 선언을 '제도통일', '흡수통일'용 이라며 거부했는데요. 도대체 드레스덴 선언의 어떤 점이 북한의 이런 반발을 불러온 것일까요?

황재옥 : 저는 드레스덴 선언의 몇 군데 표현들이 북한의 자존심을 심하게 건드렸기 때문에 북한이 선언을 처음부터 반대하고 나왔다고 봅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포함한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 공동 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및 경제협력 강화 △남북 동질성 회복을 위한 교류 활성화 등을 제안했습니다. 이런 정도로만 방향성 제안을 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이런 내용을 말하기 전에 북한의 경제난 속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거리에 방치돼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했고, 지금 이 시각에도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자리에서 이런 문제를 거론한 것을 북한이 굉장히 불편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드레스덴 선언을 했던 장소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드레스덴은 동서독 통일과정에서 흡수통일의 상징적인 도시입니다. 그런 곳에서 박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발표한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하려는 생각이 있다는 의구심을 들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서론과 장소문제도 있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요. 박 대통령은 당시 선언에서 북한 농업은 부진하고 산림은 황폐화 되어 있다고 지적한 다음 북한 지역의 농업, 축산, 산림을 남북이 함께 개발하는 '복합농촌단지'를 조성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북한 입장에서는 북한의 농촌 개발과 산림녹화를 남한이 주도하겠다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좀 더 나가보자면, 김일성의 주체 농법을 버리고 박정희 식의 새마을 운동을 받아들이라는 의미로 북한이 해석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정세현 :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 당시 서독의 콜 총리는 드레스덴에서 앞으로 동독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지 발표했습니다. 이것이 내용상으로는 흡수통일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습니다. 동독이 붕괴된 상황하에 콜 총리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북한에 제안한 내용이 북한에는 흡수통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갈등관계를 개선했던 성공 사례를 보면, 미리 상대방에게 귀띔을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 대통령이 그런 정도의 중요한 내용을 발표할 것 같았으면 사전에 판문점 연락관이나 북한의 해외공관 등의 통로를 통해 미리 북한에 알려주는 조치가 필요했었습니다. 그랬으면 북한이 우리 쪽의 진정성을 인정하게 되었을 겁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이를 계속 고집하는 것도 문제 아닌가요? 박 대통령이 통준위에서 드레스덴 선언의 구체적 이행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하던데, 일의 순서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 황재옥 (사)평화협력원 부원장 ⓒ프레시안(최형락)
황재옥 :
그렇죠. 통일준비의 선행조치로서 남북 간 대화나 소통이 된 다음에 드레스덴 선언의 이행 방안이 나와야 하는데 순서가 좀 잘못됐다고 봅니다. 저는 드레스덴 선언이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린 대목을 제외하고 나면 내용 면에서는 남북 간 교착된 상황을 풀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하는 과정이라든가 통일준비위원회 첫 회의에서부터 야당 정책위원장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정부 측에서는 5.24조치 완화,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이렇게 되면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저의 기대가 현실화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드레스덴 선언 이행 방안보다 드레스덴 선언을 북한에 이해시키기 위한 선행조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대통령이 후속조치를 말할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 선행조치로서 박근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정세현 : 일단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북한의 경계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998년 햇볕정책을 추진했을 당시 상황을 좀 되돌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북한은 햇볕정책을 '뒤집어놓은 흡수통일 전략'이라고 비난하면서 반발했습니다.

실제 1998년 4월 11일부터 18일까지 베이징에서 남북 비료회담이 열릴 때 북측 수석대표가 저한테 진지하게 묻더군요. "햇볕정책의 본심이 뭐요?" 라면서. 그래서 제가 우리가 북측을 먼저 돕고 그 과정에서 북측이 우리를 신뢰하면 북측에서도 우리한테 잘해주면 된다고 답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산가족 상봉입니다. 저는 북측대표에게 가을에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약속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비료 보내줄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북측 관계자가 "어떻게 남측이 먼저 우리한테 잘해줄 수 있느냐"면서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 관계자는 "우리를 녹여먹으려는 정책이겠지"라고 말하더군요. 햇볕정책을 흡수통일 전략으로 의심했던 것입니다.

비료 회담이 끝난 이후 당시 정부는, 정부가 먼저 나서서 햇볕정책의 진정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북한에 먹혀들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민간 차원의 교류 협력을 활성화시켜서 북한으로 하여금 '남측이 진짜 우리(북측)한테 잘해주려고 하는구나'라고 느끼게 해주자고 결론내렸습니다.

정부는 당시 민간인 방북 승인 조건을 대폭 완화시키고 민간기업의 대북 투자 상한선을 풀었습니다. 또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웠습니다. '선민후관'(先民後官), 민간이 먼저 들어가고 정부는 나중에 들어간다, 민간을 통해 우리의 진정성을 이해시키자. '선경후정'(先經後政), 경제적인 혜택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하고 그 다음에 정치 이야기 하자. '선공후득'(先供後得), 먼저 북한에 주고 나중에 받아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2년 후에 정상회담이 성사됐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정상회담 자리에서 햇볕정책의 진정성을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설명듣고 나서 남쪽의 페이스대로 따라와 줬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드레스덴 선언이 정말 북한에 도움이 되는데 북한이 오해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만 말하지 말고, 시간을 좀 두고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부에서 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드레스덴 선언이 정말 남북 간 잘해보자는 것이고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도와주려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한 그 시점부터 드레스덴 선언의 후속조치를 이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정부는 너무 성급합니다. 마치 애는 생기지도 않았는데 돌잔치 준비하고 중학교 교복까지 사놓는 셈입니다.

프레시안 : 그럼 지금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드레스덴 선언의 진정성을 설명하는 것인가요?

정세현 : 북한이 햇볕정책을 의심할 때 북한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북관계를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으로 발전시키려고 하는데, 국민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햇볕과 나그네 사례를 가지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입니다.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 것, 특히 반북 정서를 가진 사람들을 이해시킬 필요 때문에 그런 비유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에도 북한에 이정도 메시지는 미리 전해주고 움직였더라면 드레스덴 선언이 초장부터 거부당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드레스덴 선언 이후 통준위, 순서가 잘못됐다

프레시안 :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이후 6.15 정상회담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남한 정부가 통일문제를 일방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북한이 남한 정부의 진짜 의도를 알게 한 다음에 통준위를 비롯한 후속 조치로 나갔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세현 : 너무 일찍 통준위 깃발을 들었습니다. 통준위는 대북정책을 잘해서 남북관계가 상당한 수준으로 진전된 이후에 남북이 같이 만들어야 하는 기구입니다. 순서가 완전히 잘못된 겁니다. 남한에서 우리끼리만 통일에 대한 청사진을 다 만들어 놓고 북한보고 받으라고 하면 그게 잘 되겠습니까?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그럼에도 통준위가 역할을 하려면 남북관계부터 개선하는데 역할을 해야 합니다. 통준위가 드레스덴 선언의 후속조치를 연구할 것이 아니라 남북교류 활성화를 위한 선행조치를 연구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대북지원 민간단체들과 함께 움직이면서 그 사람들과 함께 북한에 드레스덴 선언을 이해시켜 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통준위를 보면서 71년에 만들어진 통일고문회의가 생각납니다. 당시 이 회의체에 야당인사 정부비판적인 종교지도자들이 포함됐습니다. 또 박정희 정부의 대북정책 등 여러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사설 쓰던 언론인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이 기구를 만든 이유는 여기서 이야기하고 밖에서는 이야기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회의의 역할을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만들었습니다.

황재옥 : 통일고문회의 말씀 듣고 보니 생각나는 점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준위가 통일 논의에 대한 용광로 역할을 해달라고 했는데, 이 부분이 정부가 하는 일에 딴소리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유신 시대 때 '국론통일'이라는 것과 비슷한 얘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통준위를 이러한 의도로 만들었다면 이는 큰 문제입니다.

프레시안 : 통준위는 통준위 대로 로드맵을 만든다고 해도 남북관계 차원에서 통일부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야하지 않을까요? 일상적인 남북 교류 부분에서는 통일부가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요.

황재옥 : 통일정책은 남북관계가 상당히 좋아진 이후에 쓸 수 있는 정책입니다. 바꿔 말하면 통일 청사진이나 드레스덴 선언 이전에 이에 대한 선행조치로서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통준위가 통일 청사진을 만들고 하기보다는 통일부 중심으로 대북정책을 잘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대북정책은 없고 통일정책만 있는 상황입니다. 현 정부는 북핵문제와 남북문제를 연계시켜 놓고 있는데요. 북핵문제는 6자회담을 통해 해결하고 남북 간 교류는 통일부든 민간단체든 지속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세현 : 북핵 문제는 6자회담 방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남북관계는 남북 간 양자 문제죠. 두 가지가 전혀 무관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북핵문제가 풀릴 때까지 남북관계는 그대로 정지시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병행해야 합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병행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북대화는 남북대화대로 하고 6자회담은 6자회담대로 진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남북관계가 잘되니까 6자회담에서 우리가 북한의 태도변화를 끌어낼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이명박 정부 이후에 '선(先)북핵문제 해결, 후(後)남북관계 개선'이 굳어져 버렸습니다. 드레스덴 선언에서도 박 대통령은 여러 제안을 했지만, 핵 문제가 해결되면 더 많이 해줄 수 있다는 식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북핵과 남북관계가 연계 정도가 아니라 선후 관계가 돼버린 겁니다. 이러한 기본 정책과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남북관계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습니다.

고위급 접촉 제안, 북한의 선택은?

프레시안 : 11일 정부는 북한에 오는 19일 2차 고위급 접촉을 갖자고 제안했습니다. 좋게 보면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도 있는데요. 일각에서는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가 논의되는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분석을 하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염두에 두고 교황이 오기 전에 미리 제안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고, 19일이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시작 다음날이라 북한이 과연 응할 것이냐는 회의론도 있습니다. 이번 정부 제안의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또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요?

정세현 : 교황방문을 의식해서 박 대통령이 15일 경축사에 내놓을 이야기를 미리 했다는 것은 일리 있는 관측이라고 봅니다. 교황이 분명히 한국을 방문하면 남북 간 화해협력에 대해 이야기할 텐데,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제안을 하고 교황한테 "우리가 이렇게 제안했다"고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담 날짜가 UFG 훈련 시작 다음날인 19일인데, 이 날짜를 북한이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우리 정부가 북한이 받지 않을 것을 알면서 일부러 그 날짜로 제안했다, 진정성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 때문에 진정성을 그렇게 문제 삼을 것은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당시 제안에 북한이 날짜를 수정 제안해도 좋다는 단서를 붙여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남북 간 회담과 관련해 제안을 주고받은 선례를 보면, 우리가 제안하면 저쪽에서 수정 제의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도 북쪽은 훈련이 끝난 이후에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고위급접촉을 제안한 것이 11일인데, 북한 <로동신문>이 12일 드레스덴 선언을 강하게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19일로 제안한 고위급 접촉이 드레스덴 선언 이야기만 하는 자리는 아니겠지만,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북한의 저런 입장은 우리 제안을 그대로 받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하지만 이번 접촉이 성사된다면 남북관계가 호전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정부의 표현이 많이 완화됐다는 것도 이런 관측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정부는 북측이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경청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완전히 풀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남기긴 했죠.

완전히 풀겠다고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정적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던데,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풀겠다고 공식적으로 말하는 협상 대표가 어디 있습니까? 그걸 풀어주려면 우리도 북한으로부터 뭔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협상 전에 이 문제는 하나의 카드로 남겨두는 것이 전술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입니다. 북측이 문제를 제기하면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은, 일정 부분 북측의 태도 변화가 있다면 협의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회담장에서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약속, 또는 올해가 가기 전에 2~3번의 상봉 등을 약속 해준다면 5.24조치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발언은 협상 테이블에서 북측 대표와 나눠야 할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북한이 이번 제안을 완전히 뭉개지는 못할 것입니다. 북한이 연초부터 계속 남북대화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한편으로는 미사일, 방사포 쏘고 험한 말도 했지만, 이것은 대규모 한미 합동 군사 훈련에 대한 반발에 불과합니다. 남북관계를 망치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북관계는 남북관계대로 가고 군사문제 대응은 별개로 하겠다는 일종의 병행전략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프레시안 : 정부가 먼저 고위급 접촉을 제의한 것은 진전된 자세로 볼 수 있습니까? 만약에 이번 접촉이 성사되면 이산가족 상봉과 5.24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이 논의된다고 봐야 하나요?

정세현 : 그런 의제들을 이야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때도 그렇고 지금 박근혜 정부도 북한과 대화에서 이산가족 상봉만 챙기고 끝났습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를 북한에 주지 않은 것입니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적 차원의 문제기 때문에 거래할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것은 공허한 이야기입니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순수하게 인도적인 문제라면, 북한의 식량 문제 역시 중요한 인도적인 문제 아닙니까?

5.24조치가 풀리면 민간 차원의 인도적 대북지원과 대규모 지원도 승인이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으로서는 5.24조치 해제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역시 5.24조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물론 금강산 관광 중단은 5.24조치보다 앞서서 발생한 일이지만, 관광을 재개하려면 5.24조치 해제와 연계해서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박근혜 정부가 남북접촉하자고 해놓고 인도주의문제라는 명분하에 이산가족 상봉만 받아내려 하고 5.24와 금강산 관광문제는 경청했다고만 나와서는 남북 간 현안이 풀리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을 준비하는 데 별로 어려움이 없습니다만 북한은 다릅니다. 북한의 행정력과 교통편을 생각했을 때 이산가족 상봉은 북한에 부담스러운 사안입니다. 또 상봉에 나가는 사람들 옷과 체류 비용 등도 당국에서 다 지원해야 합니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사안이라는 겁니다.

프레시안 : 남북 고위급접촉의 성사 여부를 알 수 있는 시금석이 북한의 선수단과 응원단의 아시안게임 참가 여부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부가 접촉을 성사시키려면 아시안게임과 관련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황재옥 : 이번 19일 고위급 접촉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와 관련한 정부 입장이 전달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북한 문제에 대한 당국자들의 발언 내용을 보면 과거보다 우리 정부 입장이 많이 완화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남북접촉이 성사되면 아시안게임에 대해 적극적인 정부의 입장이 전달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도 최근에 스포츠가 남북관계 개선과 불신을 해소하는데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고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까? 박근혜 정부가 이번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아시안게임 참석에 통 큰 협상을 한다면 이번 기회에 남북관계 관리 능력도 보여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 대통령이 내놓은 드레스덴 선언을 이행해 나가려면 상당히 많은 재원이 들어갑니다. 거기에 쓰일 재원에 몇 백분의 일, 몇 천분의 일도 되지 않는 금액이면 북한 응원단의 남한방문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세계가 지켜보는 데, 이정도 금액을 가지고 남북 간 줄다리기를 한다면 그건 우리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국제관례니 뭐나 하는 것이 낯간지러운 얘기지요.

▲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 관련 남북 대표단은 지난 7월 1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실무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접촉을 가졌으나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통일부

정세현 : 아시안게임은 별도로 체육회담이 필요하긴 합니다. 우리 쪽은 19일 날 고위급 접촉에서 아시안게임 응원단 문제를 얘기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회담 자체가 9월 초에나 성사되면 시간이 촉박합니다. 그런 점에서 체육실무회담을 북측에서 먼저 제의해 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일정이 촉박하기 때문에 고위급 접촉과 별개로 최소한 언제까지 만나자는 이야기를 북측이 먼저 이야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남한 측에서 먼저 만나자고 제안할 가능성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국제행사에 응원단 지원문제를 가지고 선수단까지 못 오게 만들었다고 하면, 우리나라 꼴이 뭐가 될까요?

프레시안 : 결국 남북관계가 진전 될지는 이번 고위급회담 성사 여부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그렇습니다. 그래서 남한이 제안한 접촉 날짜를 핑계 삼아 북한이 우리 정부 제안을 걷어차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물론 과거에는 훈련 기간 중에 남북대화를 진행하기도 했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그 이전에 남북대화가 숱하게 열리면서 교류 협력이 활성화되던 분위기라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북 간 대화도 별로 열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양측 사이도 별로 좋지 않고 북한이 접촉에 나온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전망도 희미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쉽사리 접촉에 응해온다고 할까요?

남측에서 대규모 훈련을 하면 북측에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방비상태로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모든 병력과 물자를 동원해서 대응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까 괜찮은데 북한 입장에서는 이런 훈련에 대응하는 훈련을 한 번 치르고 나면 군대 물자가 많이 축납니다. 그래서 이번 UFG 훈련을 포함해서 한미합동훈령에 대해 더 강하게 반발하고 경고성 엄포도 놓고 그러는 겁니다.

황재옥 : 이러한 제반 상황에서 19일 접촉을 예정대로 진행하고 여기서 성과를 내고 싶다면, 며칠 전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프레시안 칼럼에서 지적했듯이(☞관련기사 : 통일준비위원회, '고장난 내비게이션' 될라), 이번 훈련에 동원되는 무기의 급이라든지 무기 수준 등을 좀 더 낮출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 로우키(low-key)로 조용히 훈련을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대대적으로 알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마 북한도 접촉을 걷어찰 명분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이나 남북 간 현안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리라고 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