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했잖아요. 우리 얘기 들어주겠다고, 그런 특별법 만들겠다고, 온 국민 앞에서 말했잖아요. 그래서 의원님들이 단식까지 하셨잖아요. 그 의원들, 다 어디로 갔나요? 휴가라도 가셨나요?"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농성을 벌이던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이번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당사에 짐을 풀었다. "끝까지 유족들과 함께하겠다"던, 제1야당 당사에서의 노숙 농성이다. 유족들 스스로도 "새누리당도 아닌 새정치연합 당사에서 잠을 청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관련 기사: 불 꺼진 새정치 당사…"이렇게 다 우리를 버리는군요")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 10여 명이 9일 서울 여의도 새정치민주연합 당사에서 항의 농성을 시작했다. "유족들과는 합의한 적 없는", 여야 양당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지금이라도 철회시키기 위해서다.
경찰 차벽으로 둘러싸인 당사 10층 사무실 복도에서 농성을 시작한 유족들을 만났다. 유족들은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국회 앞에서의 한 달여에 걸친 단식 농성도 모자라, 이번엔 제1야당의 당사 복도에서 잠을 청하게 된 부모들이다.
"불 꺼진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실…이렇게 다 우리를 버리는군요"
유족들은 '합의'가 아니라 '야합'이라고 못 박았다. 제1야당 당사에 대한 '불법 점거'가 아니라, "왜 그랬는지, 대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 왔다고 했다.
하지만 유족들을 맞은 것은 그 '합의'의 주체인 박영선 원내대표도, 새정치민주연합 당직자들도 아니었다. 당사 진입을 막는 경찰들과 몇 차례 실랑이를 벌인 끝에 도착한 10층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에 내렸더니, 온통 깜깜하더군요. 출근한 사람 하나 없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당사에서 바삐 움질일 줄 알았는데, 다들 어디 갔는지…. 전 대통령 동상 두 개만 있더군요.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두 대통령의 피눈물이 느껴졌습니다."
단원고 2학년 10반 고(故) 이경주 학생의 어머니 유병화 씨의 얘기다.
유족들은 "선거에만 유가족을 이용한 여야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날 오후 3시께 당사에 진입했지만, "박영선 원내대표는 물론 의원 한 명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유 씨는 "이렇게 다 우리를 버리는 것 같다"고 했다.
단원고 2학년4반 최성호 학생의 어머니 정혜숙 씨는 '얼굴도 비추지 않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을 향해 "단식까지 거짓으로 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불과 보름 전, 유족들과 안산에서부터 광화문까지 1박2일 도보행진을 함께 했던 박영선 원내대표에 대한 실망감도 드러냈다.
재보궐 선거철과는 달리 유족들 곁엔 국회의원 한 명 나타나지 않았지만, 주말 밤 적막한 여의도엔 촛불을 밝힌 시민들이 함께했다.
이날 저녁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추모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 500여 명은 늦은 시각에도 여의도로 달려와 유족들을 응원했다. 유족들 역시 불 꺼진 당사 10층에서 휴대전화 불빛을 흔들며 화답했다.
유족들은 11일로 예정된 새정치민주연합의 의원총회를 1차 시한으로 잡고 당사에서의 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고 최성호 학생의 아버지 최경덕 씨는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약속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농성을 풀 것"이라고 했다.
최성호 학생의 어머니 정 씨는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수를 뒤집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며 "이제 그 용기를 보여 달라"고 새정치민주연합에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117일째. 유족들은 불 꺼진 제1야당 당사에서 그렇게 새벽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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