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병사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집단 폭행 사망 사건으로 병영 폭력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그간 '자살'로 처리된 군 의문사 사건들의 명예 회복 길이 열릴지 주목된다.
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2010년 사망한 민모 이병의 유족이 고인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라며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민 씨는 군 입대 후 선임병들의 암기 강요나 욕설, 질책 등의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중 우울증 증세가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민 씨의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간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입대 당시 만 20살이었던 민 이병은 2010년 3월 육군에 입대해 자대 배치를 받은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영내 창고 뒷편 야산에서 목을 매 숨졌다.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로 인한 우울증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민 이병 사망 후 헌병대 조사 결과 그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던 선임병 3명은 영창 15일, 휴가제한 5일 등의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민 이병을 방치한 간부들도 근신, 견책, 감봉 등 가벼운 징계를 받는데 그쳤다.
특히 자대에서 실시한 인성 검사에서 민 이병의 정서적 불안 상태가 포착됐지만, 전입 당시 형식적으로 진행한 면담 한 차례가 전부일 뿐 간부들로부터 아무런 배려를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유족은 관할 보훈청이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거부하자 소송을 냈으며, 1·2심은 "고인이 선임병들 탓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우울증이 생겼고 간부들의 관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증세가 더욱 악화해 자살했다"며 유족 손을 들어줬다.
그간 군 복무 중 사망한 장병들에 대해선 국가유공자법에 따라 '순직 군경'으로 처리됐지만, 자살인 경우 같은법 3조5항의 예외 사유 중 "자해 행위로 인한 경우"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등록이 거부돼 왔다. 이후 2011년 9월 국가유공자법 개정에 따라 예외 사유 중 "자해 행위로 인한 경우"가 삭제돼 국가유공자 지정의 길이 열렸지만, 여전히 많은 의문사 장병 가족들이 군의 일방적인 설명으로 자식의 죽음의 경위를 알지 못한 채 속을 끓이고 있다. (☞관련 기사 : "잔인한 얘기지만…차라리 윤 일병이 부럽다")
고(故) 유현석 인권변호사의 공익소송기금으로 이번 소송을 함께 진행한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가가 민관 합동의 독립적인 상설 조사기구를 설치해 군대 내 의문의 죽음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맡도록 해야 한다"면서 "유족들이 법원에서 국가를 상대로 길고 긴 싸움을 홀로 감당하지 않도록 사망 사건 조사와 국가유공자 심의 과정을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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