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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야만의 시절로 기억되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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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야만의 시절로 기억되게 할 것인가

[창비주간논평] 세월호 특별법 부정, 권력기반 무너뜨릴 것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넘었다. 참사의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아니 대다수 국민에게 이 사건은 100일이 넘은 과거에 벌어진 것이 아니다. 100일 동안 이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참사이다.

세월호참사가 현재에서 벗어나 과거의 사건이 되는 데는 단순히 시간이 경과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제대로 된 사실과 원인의 규명, 그리고 이에 터 잡은 책임추궁과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이 사건을 역사의 한장으로 넘길 준비를 할 수 있다.

특별법 반대는 세월호참사의 특수성을 부정하는 일

하지만 지금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과정 없이 세월호참사를 과거의 일로 돌리자고 한다. 최근 재보선에서의 승리 이후 이러한 흐름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수사권을 보장하여 진상규명권한을 분명히 한 특별법의 제정을 사실상 반대하고 있으며, 유가족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중심으로 사건을 마무리하자고 한다. 더불어 사건에 대한 폄하와 유가족 등에 대한 모욕이 넘쳐나고 있다.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는 사건이 특수하고 기존의 법체계만으로는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동의를 전제로 한다. 지금의 수사체계로는 진실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기존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의 기반이 무너진 상태이므로 수사 과정과 결과를 신뢰받을 수 있는 특별한 기구가 필요하다, 원인이 난마처럼 중첩된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형사범죄만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직간접적인 원인을 종합하기 위한 사회적 조사와 원인규명 과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의 권력기관 역시 그 조사대상이 되어야 하므로 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독립적·비판적 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등의 평가와 판단들이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합의에 내재적으로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한 내용이 제거된 특별법이라면 이미 특별한 법이 아니다.

알려진 바로 여당은 특별법에 따라 설치되는 특별위원회에 기소권은 물론 수사권조차 주는 것에 반대하고 있으며, 특위의 구성방안과 활동기한에 있어 지극히 소극적이다. 또한 특위에 직접 수사권을 주는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특검도입에 있어서도 그 추천에 있어 유족의 의사가 반영되는 것을 보장하려 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렇듯 정부와 여당이 특별위원회에 수사권이나 기소권을 부여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그 구성에 있어 자신들에게 비판적일 수 있는 인사가 다수 추천되는 것을 수용할 수 없으며, 특검이 도입되더라도 임명권을 놓칠 수 없다는 것은 특별법의 필요성 뿐 아니라 세월호참사의 특수성조차 부인한다는 뜻과 다름이 없다.

국민과 유가족이 정부·여당의 태도를 당장 바꾸어낼 힘은 부족할지 모른다. 유가족이 단식을 이어가고 시민들의 항의가 지속되더라도, 또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듯 국민의 다수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독립적인 특위구성에 찬성한다 하더라도 제도권력이 이를 묵살한다면 이를 바꾸도록 강제할 방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야당에게 이를 역전시킬 능력과 실력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은 이미 나와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이러한 행태가 표면적으로 정국의 흐름을 장악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것은 정부·여당의 승리가 아니라 권력의 실패를 스스로 확인하는 것일 뿐이다. 필연적으로 촉발될 국민적 반발뿐 아니라, 민주정부의 기본인 권력작용에 대한 국민적 동의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로 인해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었을지언정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한계를 가질 것이다. 나아가 세월호참사를 사회적 교훈으로 남기지 못하고, 완결되지 못한 참사로 후세에 부담을 떠넘겼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의 수용은 정부·여당의 패배나 힘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정부·여당이 같이 승리하는 유일한 길이다. 특별법의 불발은 세월호 이후에도 세월호사건을 야기한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문제점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또 다른 참사의 증거가 될 뿐이다.

우리 사회는 매우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세월호참사와 유사한 수많은 사건을 겪어왔고, 그 결과를 또한 직접 목격해왔다. 타국이나 적대세력에 의해서 뿐 아니라 때로는 국가권력에 의해 국민이 생명을 잃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한 예가 적지 않았다. 국가와 권력이 주체가 된 사건은 대부분 사건 직후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도 못하고, 그 피해를 제대로 구제하기는커녕 피해자를 죄인으로 만들고 입을 막았다. 그리고 흘러간 과거의 일로 치부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묻어두지 않았고 과거사 청산 작업은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난 시기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국가의 이름으로 침해한 비정상의 시대, 야만의 시절로 기록하고 기억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현재를 야만의 시대로 둔 채 부담을 미래세대에 전가할 것인지, 아니면 그래도 비정상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던 시대로 기억되게 할 것인지 가늠할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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