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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사람 때리는 곳인가"…고개 숙인 선임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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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사람 때리는 곳인가"…고개 숙인 선임병들

[현장] 28사단 찾은 시민들 "사람 탈 쓰고 어떻게"

"내 아들이라고 이런 일 당하지 말란 법이 없잖아요. 군대가 사람 때리는 곳인가요?"

재판이 끝나자, 방청객들이 참았던 분노를 터뜨렸다. 앳된 얼굴의 피고인들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5일 오전 경기 양주시 육군 28사단 군사법원. 지난 4월 선임병들의 집단 구타로 사망한 윤모(20) 일병 사건에 대한 4차 공판이 열린 가운데, 군 당국의 은폐로 자칫 세상에 묻힐 뻔한 그의 죽음에 분노한 시민들이 법정을 찾았다.

▲5일 오전 육군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윤 일병 사망 사건 가해자들이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 검찰, 주범 이모 병장에 '강제추행죄' 추가…살인죄는 검토

이날 오전 10시 시작된 공판에서 군 검찰은 주범 이모(25) 병장의 혐의에 강제 추행죄를 추가하고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군 검찰관은 "사건 발생 당일인 4월6일 폭행으로 멍이 든 윤 일병의 가슴 부위 등에 안티푸라민을 바르다가 윤 일병 본인으로 하여금 강압적으로 안티푸라민을 성기에도 바르도록 한 행위를 강제 추행으로 판단했다"며 공소장 변경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군 검찰의 신청을 받아들여 공소장 변경을 허가했으며, 변호인단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큰 쟁점인 살인죄 적용 여부는 이날 심리에서 따로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이날 재판에선 관할 법원 이전 신청이 받아들여져, 상급 법원인 3군 사령부에서 열릴 다음 공판에서 살인죄 적용 여부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시민 질타에 고개 숙인 선임병들

개정 20분 만에 재판이 마무리되자, 방청석을 가득 채운 시민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이날 재판은 윤 일병 사망 사건을 폭로한 군인권센터 회원들과 '법정 시민감시단' 등 80여 명의 시민이 방청했다. 재판부가 "방청객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복도 쪽에 자리잡은 방청객들의 퇴장을 요구하며 5분간 휴정하자, 시민들은 "재판부가 폐쇄적"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일부 시민들은 이 병장 등 피의자들에게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럴 수 있나", "얼굴에 반성하는 빛이 없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퇴정해야 하니 통제에 응해 달라"는 법정 관계자들의 요구에도 분노한 시민들 일부는 "이 병장이 누구냐. 얼굴 좀 보자"며 오히려 법정 앞으로 나오기도 했다. 주범으로 지목된 이모 병장은 피고인석에서 내내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고, 다른 피의자 다섯 명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피해자 윤 일병의 유족은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시민감시단' 버스에 올라 재판을 방청한 김민경(26) 씨는 "외부로부터 폐쇄된 군대에서 윤 일병이 몇 달 동안 얼마나 지옥같은 생활을 견뎌야 했겠느냐"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사그라들지 않아야 앞으로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역시 시민감시단에 참여한 김유(28) 씨는 "21살 남동생이 곧 군대에 가야하는데, 이런 군대라면 보낼 수 있겠나"라고 분노했다.

▲28사단 정문에 시민들이 붙인 추모 쪽지들. ⓒ프레시안(선명수)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재판이 끝난 뒤 "유족들이 요구한 살인 혐의에 대한 공소 변경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3군 사령부에서 재판이 진행될 때 공소 변경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석 달 넘게 사건을 은폐한 군 당국을 향해선 "추가적 의혹에 대해 국방부 검찰단이 지금이라도 한 점 의혹없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은폐한다면 특검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방부 검찰단이 윤 일병 사망 사건에 대한 추가 수사에 착수함에 따라 가해 선임병들에게 살인죄 적용이 가능할지가 남은 재판의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이 사건을 수사한 28사단 군 검찰은 가해 선임병 4명에게 상해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했지만, 윤 일병이 쓰러지자 이들이 심폐소생술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살인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권동선 28사단 정훈공보참모는 "살인죄 부분은 국방부 검찰단에서 추가 수사를 할 예정이고 기록 검토 후 최종 결론을 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28사단 부사단장이 재판관? 폐쇄적 '군사법' 도마에
선임병들의 집단 폭행으로 숨진 윤모 일병 사건을 석 달 넘게 은폐한 군 당국을 둘러싸고 폐쇄적인 군사법 제도 역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군대 담장을 사이로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되고, 사건을 책임져야 할 지휘관에게 '감경권'까지 주는 현행 군사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윤모 일병을 숨지게 한 가해자들의 재판은 현재까지 28사단 보통군사법원이 맡아왔다. 가해자들에게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것도 다름 아닌 28사단 소속 군 검찰이며, 28사단 부사단장(대령)인 심판관과 군 판사(대위) 2명이 현재까지 재판을 진행해 왔다.

이번 사건의 책임선상에 있는 28사단 지휘부가 군 검찰의 수사와 기소는 물론, 선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사단급 이상 부대 지휘관이 군 검찰과 군 판사를 모두 감독할 수 있게 한 군사법 탓이다. 결국 군사재판의 해묵은 문제로 지적되는 폐쇄성과 비민주성, 독립성 부재 등이 '원님 재판'을 가능케 하는 군사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군사법원법은 군사법원이 설치된 사단장급 이상 군 지휘관에게 '형이 과중하다고 인정될 때' 형을 깎아줄 수 있는 감경권까지 주고 있다.

결국 군대의 특성상 병사들의 잘못이 간부들의 책임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사건이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지휘관들이 얼마든지 은폐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사단장이 사실상 재판의 정점에 있는 상황에서, 사단장의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구조다.

이에 대해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사단장이 임명하는 비법조인 군인이 심판관으로 사실상 재판장 역할을 하는 것은 군사법원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군사법원도 일반법원으로 흡수되어야 하며, 군사범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가혹 행위와 성추행 등의 문제는 민간 법원에서 재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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