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단일 노동자 후보'란 이름으로 7.30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득표율 5.63%(3382표)를 얻으며 30일 선거 레이스를 완주했다.
기대를 모았던 두자릿수 득표율 돌파가 실패로 끝났으나, 출마와 완주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적지 않다. '진보 정치의 실종'이라고도 표현되는 거대 양당 구도에서, 노동 중심의 진보 정치의 필요성과 작금의 한계를 재점검할 수 있는 계기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후보는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정리해고된 노동자로, 이번 선거 기간 내내 "무능한 양당정치 넘어 노동자 직접 정치"란 구호를 강조했다.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호소하며 복직 투쟁을 이어 온 지난 5년의 세월에서 새누리당은 물론, 새정치민주연합에도 느꼈던 김 후보의 실망과 한계가 그대로 투영된 구호다.
이번 경기 평택을 선거 양상 자체도 김 후보 측이 제기한 '무능한 양당 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신인 정치인'을 내세운 유의동(43) 새누리당 후보와 '3선 터줏대감' 정장선(56)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앞다투어 '개발'과 '성장' 만을 강조하는 공약을 줄 세웠다.
그마저도 삼성·LG전자 첨단산업단지 조성, 평택항 국제여객부두 개발, 특수목적고등학교 설립 지원 및 유치 등은 지난 6.4 지방선거 당시 남경필 후보와 공재광 평택시장의 공약과 똑같아 김 후보 측으로부터 "이번 선거는 평택시장 선거가 아닙니다"(7월 23일 김득중 선거대책본부 현안 논평)라는 공격을 받았다.
더욱이 두 후보의 선거 공보물 어디에서도, '세월호 특별법'은 물론, 지역 주요 현안인 '쌍용차 정상화'와 '쌀 시장 개방'마저 언급되지 않았다. "여당에 읍소하고 야당에 기대며 죽어가는 동료 장례만 치러야 하겠는가"라는 김 후보의 출마 이유가 선거 과정에서도 꾸준히 그 정당성을 입증받은 셈이다.
두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초접전 양상을 보이며, 야권연대의 압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거일인 30일이 가까워 오며 상당수 언론이 김득중 후보의 득표율을 "캐스팅보트"에 빗대곤 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는 30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무언의 야권연대 압박이 느껴져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라며 "언론 또한 양당 후보를 우선 주목하게 만드는 불공정한 보도에 익숙하다"고 지적했다.
"진보정치 재편 계기 되길…노동계 결집력 한계도 보여"
김 후보는 '진보정치 실종'이라는 현실에서 진보 진영, 그중에서도 제도 정치에 개입할만한 통로가 사실상 배제된 노동계의 현실과 한계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진보 정당들은 구심점 없이 이합집산해 온 것이 사실인 데다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간 관계 설정에도 여전히 물음표가 그려져 있다.
그런 가운데 '무소속 노동자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김 후보는 4개 진보 정당 모두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진보 단일후보'란 타이틀을 달았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이와 관련, "이번 선거가 진보진영 전면적 개편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엘리트가 주도하는 진보정당 운동이 아닌 현장의 노동자 중심으로 진보정당 운동이 재편돼야 한다"고 평했다. 그것 만이 "보수 양당 구조에 맞서는 강력한 진보 정치의 밑거름"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5.63%에 그친 득표율은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운동의 현주소 또한 여실히 드러냈단 평가도 나온다. 평택을 지역에선 쌍용차 공장과 기아차 화성 공장 등이 속한 공단이 있는 노동자 밀집 지역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방송공사(KBS), 평택시민신문, 경인일보 등이 한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에 대한 40대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평균 8% 수준에 그쳤다. 꾸준히 두 자리 숫자의 지지율을 보여준 20~30대보다 생산직 노동자들이 많은 40대에서 지지율이 한참 낮았던 것이다.
김 후보 선거대책본부에 함께해 온 오민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20만 명 유권자 중 6000명가량이 민주노총 조합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1만 명이 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따르면, 조직 노동자 중 절반 이상이 김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를 택했단 얘기다.
오 정책위원은 "민주노동당 시절 보여줬던 노동자 정치의 가능성과 위력을 지난 10년 동안 다 갉아먹은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하게 된다"며 "현장 노동자가 직접 정치에 나서거나 동참하게끔 하는 그런 '근육'이 상당히 굳어버린 것 같다"고 평가했다.
6년 만에 공장 순회…공장 안팎 소통 높이는 계기
정리해고와 복직이라는 '생존' 문제를 6년째 안고 있는 쌍용차지부로선 이번 선거 공간을 통해 공장 안팎의 노동자들이 갈등을 해소하고 소통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계기를 만들어냈다는 성과를 얻었다.
김 후보는 지난 23일, 기업노조인 쌍용자동차노동조합의 협조 속에서 공장 전 라인을 순회하며 동료 노동자들을 만났다. 김 후보는 이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 선거 운동 일정들 중 하나였다"며 "과거 우리도 매일 썼던 기름 장갑을 끼고 있는 동료들과 악수를 나누고, '인제 와서 일해야 한다'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눈물이 많이 났고, 힘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앞서 쌍용차노조는 지난 11일 자체 간행물인 '노조 소식'을 통해 "낡은 정치권을 심판하는 (김 후보의) 아름다운 도전에 지지와 성원을 보낸다"며 조합원들에게 "적극적 연대를 호소"하기도 했다.
선거 종료와 함께 김 후보는 다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의 이름 뒤에 '후보'란 수식어가 붙든 '지부장'이란 수식어가 붙든, 그가 '해고 노동자'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다. 김 후보는 이날 "해고자로서 내가 겪은 아픔을 바탕으로 지역 유권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경청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싶었다"며 "충분치 않았던 거 같아 아쉽지만 선거 기간 들은 시민들의 하소연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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