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지난달 12일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무연고 시신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맞다고 25일 밝혔다. DNA 및 치아 감식 결과, "(시신이 유 전 회장이라는 점을) 과학적으로 부정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유 전 회장이 비명횡사했는지는 국과수도 오리무중. 문제는 국과수의 '확인'에도, '유병언 음모론'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음모론은 '불신'을 토양으로 자란다. '유병언 음모론'은 그래서, '대한민국=불신사회'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사회·신뢰사회'가 화두인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 찍힌 '불신사회'는 두고두고 화근이 될 듯하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과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종훈 스포츠평론가는 지난 24일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 녹음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유병언 사망'과 관련한 각종 음모론에 빠져 있다며, 이는 정부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경우라고 비판했다. 이철희 소장은 특히 <삼국지> 제갈공명과 사마의에 빗대 "죽은 유 전 회장이 대한민국을 희롱했다"고 말했다.(☞ 팟캐스트 바로 듣기)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유병언 검거'를 여러 차례 강조하며 "이렇게 못 잡고 있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질타한 바 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수사인력이 배치됐다는 '유병언 검거' 작전에 국민들도 "이렇게 못 잡고 있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혀를 끌끌 차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갤럽 7월 넷째 주 정례조사 결과, 박 대통령 국정수행 능력에 대한 부정평가는 50%로 나타났다. 지난주보다 3%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취임 이후, 가장 높게 조사됐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박근혜가 나서라"
세월호 참사 100일을 인고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4.16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박근혜가 책임져라'를 외치고 있다. 수사권을 둘러싼 여야의 기 싸움으로, 이미 '죽음의 굿판'이 된 현 상황을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해 박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서한을 지난 24일 밤 청와대에 전달했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세월호 특별법 통과 없이는 국회에서 그 어떤 법도 우선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이종훈 평론가는 "새누리당은 VIP(박 대통령)에게 악재가 되지 않게 (세월호와 관련된 일을) 차단하는 게 1순위였다"며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도 "청와대나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자세로 임했다고 설명했다. 자충수를 둬 스스로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비판이다.
김윤철 교수는 "세월호 참사 100일이 되도록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사태를 '유병언 검거'로만 몰고 가더니, 이제는 '그것마저도 못하는구나'라는 것을 보여줬다"며 "박근혜 정권에 악재"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렇게 큰 사안의 경우) 희생자 가족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바른 정치'"라며 정치 본연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치는 약자의 편에서 갈등을 법제화·공공화해야 한다는 것." 현재 약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다.
이철희 소장은 "유 전 회장이 생포됐을 때와 달리, (정세가) 많이 꼬인 측면이 있다"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집권여당이 국가기관을 수사하고 나서겠다는 요구를 불편하게 생각한 나머지, 근시적이고 수세적인 입장으로 세월호 참사를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별법은 박 대통령이 대통령다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라며 대통령이 나서야 세월호 특별법 문제가 해결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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