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값 싼 정치인들에게 <정도전>을 권한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값 싼 정치인들에게 <정도전>을 권한다!

[복지국가SOCIETY] 1392년의 조선, 누군가에겐 인생 건 투쟁의 결과

'새 나라'라는 말은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말이지만, 실제로 '새로운 나라'란 막상 그렇게 새롭지 않은 경우가 많다. 새 정권은 대부분 권력 투쟁 와중에서 우발적으로 만들어진다. 태어나서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해놓고 태어나는 아이가 없듯이 국가발전의 청사진에 해당하는 '그림'을 다 그려놓고 만든 국가는 거의 없다.

불판을 아예 바꾸어버린 '새로운 나라'

그러나 조선(朝鮮)의 개국은 조금 달랐다. 조선은 애초부터 '성리학적 이상 국가'라는 국가발전 전략으로서의 청사진을 그려놓고 만든 나라였다. 사람으로 치면 '무엇을 할 것인지?' 목적을 정리해놓고 태어난 아이였다. 심지어는 궁궐과 도성 같은 건축물에도 성리학의 색깔을 입혔을 정도로 조선은 성리학적 이상 국가를 추구하는 소수의 정치 세력이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추진한 국가였다.

조선 개국의 과정에서 '사상'이 갖는 의미는 절대적이었다. 당시의 성리학은 외부에서 수입된 최신의 혁명 사상이었다. 외국의 신사상에 먼저 눈을 뜬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중심으로 최초의 사상적 공감대가 발생했다. 이념적 매력이 확산하면서 조직이 탄생했고, 조직이 투쟁을 발생시키면서 새로운 나라는 본격화되었다.

고려가 조선으로 넘어간 사건을 흔히 역성혁명이라고 한다. 왕족의 성씨가 왕 씨에서 이 씨로 바뀌었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조선의 개국에서 성씨가 바뀐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보다는 '불교'에서 '성리학'으로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교체되었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것이 어떤 내용으로의 교체였는지 논하기 이전에 교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그런 사상의 교체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1000년 동안 집집이 불상을 들여놓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조선이 건국 후 단기간에 붕괴하지 않고 이후 500년 동안이나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리학이라는 단단한 이념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단순히 이성계라는 한 호걸이 권력적 탐욕만으로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탈취한 나라가 아니라, 사상적 힘의 교체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였다. 말 그대로 왕의 성씨만 바뀐 것이 아니라 사회의 기본적인 틀, 즉 불판을 아예 바꾸어버린 '새로운 나라'였다.

▲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조재현 분)이 공민왕의 교지를 받는 장면. ⓒKBS

정도전은 '사상의 교체'와 '국가의 교체'를 연결한 유일한 인물

얼마 전 드라마를 통해 큰 인기를 끌었고, 요즘 혁명적 정치인으로 크게 유행하고 있는 정도전은 이러한 '사상의 교체'와 '국가의 교체'를 연결한 핵심 인물이었다. 혹자는 정도전(鄭道傳)을 두고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위대한 경세가(經世家)이자 사상가였다고 평가한다. 민본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던 불세출의 지략가이자 요동정벌을 구상한 민족의 횃불이라고도 한다. 그는 가히 이런 평가를 받을 만큼 큰일을 해낸 인물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평가들이 너무 '뻔한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 시대에 정도전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그냥 나쁜 놈들이거나 멍청한 인간들이었을까? 내가 볼 때, 정도전 역시 그 시대의 평범한 정치인이었고 정치 논리에 충실했던 인물이었을 뿐이다. 사실 정도전은 전체 정치 인생의 절반 정도를 백수로 살았던 고려 말의 평범한 정치인이었다.

정도전은 '공민왕의 죽음을 명나라에 알릴 것인가? 원나라에 알릴 것인가?'라는 외교전략 상의 논쟁 과정에서 조정으로부터 쫓겨났다. 정도전과 함께 성리학을 공부했던 그의 동지들은 대부분 2~3년 사이에 다시 머리를 숙이고 정계에 복귀했지만, 유독 정도전만은 혼자 사과하지 않고 정계에 복귀하지 않았다.

소신인지 고집인지를 꺾지 않은 덕택에 그는 무려 10년 넘게 현실 정치에 대한 참여 기회를 봉쇄당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힘들고 어렵게 살던 정도전은 나이 40세에 진지하게 자신을 향해 되묻는다. 그리곤 현실에 고개를 숙이고 높은 사람들을 찾아가 줄을 댄다. 그때 만난 사람이 이성계였다.

정도전 역시 현대를 사는 우리처럼 늘 자신이 처한 현실과 스스로 추구하는 이상 사이에서 번뇌하던 평범한 인간이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며 시간을 까먹는 현재의 우리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단지 그에게 우리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가 자신의 삶에 큰 감명을 주었던 '이념체계'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던졌다는 점이다.

정도전의 위대함은 그가 유독 백성을 사랑했다거나 중국에 맞서 민족의 자존심을 세웠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내용도 모호한 무슨 대업을 추구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위대한 장점은 자신이 마음속에 품은 이론적 이상을 끊임없이 부닥치는 현실의 '정치적 일상'과 계속해서 타협해가면서 끊임없이 추구했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정도전은 자신이 머릿속에 그렸던 '국가발전의 그림'을 실제로 눈앞에 구현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아마도 정도전은 '국가의 교체' 이전에 '이념의 교체'를 실현한 유일한 인물일 것이다. 정도전 외에 이렇게 정리된 국가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현실로 만들어 본 '이념 작가'가 있었을까? 이방원의 기습에 속절없이 죽어갔지만, 이런 측면에서 정도전이야말로 어쩌면 행복한 인간일 것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직후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새정치민주연합

구태 정치를 청산하는 '복지국가 정치'의 길

지금 '정도전 다시 보기'가 유행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너무나 '값싼 정치'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구태 정치'가 그것이다. 우리 시대의 많은 정치인은 작은 기득권에 얽매이는 정치, 자신의 생계를 위한 소위 '생계형 정치'에 목을 매달고 있다. 그들이 20대에 경쟁적으로 추구했던 고상한 가치 비슷한 것들은 벌써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국회의원 자리에 연연하는 실리 위주의 '낡은 정치'만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렇게 한 나라의 정치적 욕망 수준이 떨어지면 결국 그 후과는 국민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금 우리 사회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정치가 가장 후진적이다. 구태 정치가 현재의 사회 양극화와 민생 불안을 초래한 데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이외에는 양극화와 민생 불안 등의 경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다른 어떠한 해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정치의 우선성'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우리는 더 아름다운 국가를 끊임없이 소망해야 한다. 더 진지하게 더 완성된 국가 모델을 추구하며 언제나 정치에 대해 더 고매한 욕망을 요구해야 한다. 정치를 '좋은 자리' 하나 얻는 정도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생겨나지 못하도록 공적 책임과 개인의 희생을 더 많이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구태 정치를 청산하는 복지국가 정치의 길이다. 1392년에 만든 '새로운 나라', 조선! 그것은 어느 인생의 고독한 투쟁이었다. 2014년 현재, 그러한 투쟁이 다시 요구되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