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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희 교육감 "교복 색깔로 차별 받는 아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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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병희 교육감 "교복 색깔로 차별 받는 아이 없도록…"

[인터뷰] '찻잔 정리 직접 하는'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강원도 교육감을 만난 자리. 잘 닦여져 있는 탁자를 가운데에 놓고 둘러앉았다. 여느 기관장 인터뷰와 다를 게 없는 듯 했다. 살짝 놀란 건 그 다음부터다. 교육감이 직접 찻잔을 내오고 커피를 따라줬다. 옆에 교육청 대변인이 앉아 있었다. 윗사람이 귀찮은 일을 직접 하면, 아랫사람은 죄지은 사람마냥 쭈뼛대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변인은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교육감이 내온 커피를 느긋하게 홀짝였다. 빈 찻잔 정리도 교육감이 직접 한다고 했다.

평교사, 전교조 활동가 출신 교육감이 불러온 변화다. 과거엔 커피 내오는 일이 말단 여직원의 몫이었다. 그들에게 지난 6.4 지방선거는 다시 커피를 타느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장이었다. 교육감은 재선에 성공했다. 그가 무사히 임기를 마칠 때쯤이면, 회의를 주재하거나 손님을 맞는 이가 차를 내오는 건 당연한 일이 돼 있을 게다. 그 다음엔 누가 교육감이 되건, 다시 말단 여직원이 커피를 타지는 않을 게다.

민병희 교육감이 일궈낸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는 이밖에도 많다. 강원도에선 고등학교 사이의 서열이 엄격했다. 입고 다니는 교복은 아이들의 외모보다 내면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른바 명문고 교복을 입은 아이와 그렇지 않은 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는 마음 속 풍경까지 달랐다. 당연했다.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길이 달랐으니까. 민 교육감이 이걸 바꿨다. 이제 강원도에서 고교 간 서열은 없다. 서울 등 고교 평준화가 유지되던 지역에서도 사실상 평준화가 허물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평준화 지역이었던 강원도에서 고교 평준화를 약속하고, 결국 이뤄낸 민 교육감의 사례는 더욱 돋보인다.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지난 9일 인터뷰에서 그는 지난 4년간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새로운 임기 4년의 계획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프레시안(최형락)

"‘앵그리 맘’과 ‘스칸디 맘’, 진보 교육감 뽑은 표심"
프레시안 :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13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뽑혔다. 적어도 교육청 단위에선 진보가 주류인 셈이다. 중앙정부 역시 긴장한 기색이다. 교육부 장관 인선에서도 드러난다. 진보 교육감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이들이 장관으로 꼽힌다. 교육부와 지역 교육청 사이에 갈등이 예고되는데,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가?

민병희 : 누가 교육부 장관이 되건,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요구와 민심을 수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장관이 반대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지역은 지역대로 올바른 방향으로 가면 된다.

대학 입시, 대학 서열화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대학 입시에 초중등 교육이 종속돼 있고, 따라서 대학 문제를 풀지 않으면 교육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그간 지배적이었다. 교육청 단위에서 대학 입시와 서열화 문제를 풀기는 어려우니까, 결국 초중등 교육은 지금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다. 몇몇 교육청에서 혁신학교를 운영했다. 강원도에선 ‘행복더하기학교’라고 부른다. 이런 학교에서 입시에 종속되지 않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지도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더 즐겁게 공부했고, 결과적으로 대학 진학 성적도 더 좋아졌다. 교육부에서 뭐라고 하든, 교육청이 올바른 길로 가면 되는 것이다. 지금 구조에서도 교육청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그게 계속 성과를 낸다면 대학도 바뀌지 않을 수 없고, 중앙정부도 바뀔 것이다.

2010년 첫 임기를 시작할 때 냈던 정책 가운데 상당 부분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 방향과 겹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다만 현 정부는 자신들이 천명한 원칙에 따라 교육이 이뤄지게끔 하는 하위 정책이 없는 것이다. 어차피 장관 임기가 영원한 것도 아니고, 박근혜 정부 역시 영원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원칙대로 갈 것이다.
프레시안 : 중앙정부가 뭐라고 하건, 실질적인 초중등교육행정을 담당하는 교육청은 원칙대로 움직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도민들의 지지가 있어야만, 힘 있는 행정이 가능할 게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로, 진보적 교육 정책 방향에 대해 도민과 국민의 지지가 확인된 셈이다. 국민들이 진보 교육에 거는 기대가 뭐라고 보나?

민병희 : 용어부터 정확히 했으면 좋겠는데, 진보-보수는 정확치 않은 용어다. 진보의 반대말은 퇴보다. ‘진보 교육감’이라고 지칭하면 다른 분들은 ‘퇴보 교육감’이 된다는 얘긴데, 말이 안 된다. ‘보수 교육감’이라는 용어를 쓰려면 반대말로 ‘혁신 교육감’이란 말을 써야 한다. 그래서 ‘진보-보수’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

교육에는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 모두 필요하다. 변화시켜야 할 것과 보존할 것이 함께 있다. 어느 하나를 내치는 것은 잘못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 나타난 표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본다. 그 중 하나는 ‘앵그리 맘’의 마음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나왔던 말,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로 상징되는 교육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피동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자기 주도적 사유, 자기 주도적인 학습, 자기 주도적 삶을 향해 진로를 개척해나가는 교육으로 바꾸라는 요구다.
다른 하나는 ‘스칸디 맘’ 방식 교육에 대한 바람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크게 잘못됐다는 건 대부분이 인정하지 않나. 우리 교육이 북유럽의 교육 선진국 모델을 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즉 경쟁이 아니라 협력, 공부가 지겨운 게 아니라 즐거운 게 되는 교육, 그리고 부모의 경제적 차이가 아이들에게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열망이다.

‘앵그리 맘’과 ‘스칸디 맘’. 이 두 가지 마음이 합쳐져서 이번 교육감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고 본다.

지방선거 전체의 결과를 보면, 도지사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고, 교육감인 나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나머지 대다수 시군 의원들의 분포를 보면, 새누리당의 압승이다.

왜 유독 교육감 선거에선 진보가 이겼을까. '교육만큼은 변해야 한다'는 열망이 전국적으로 나타났고, 정치에서 희망을 보지 못했던 유권자들이 교육 분야에서 한 번 희망을 걸어보자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이런 분들이 앞으로도 교육감들을 상당히 주시할 것이다.

'20년 비평준화'에서 '평준화'로…"교복 색깔로 차별 받는 아이 없도록 하겠다"

프레시안 : 지난 1기 임기에서 강원도 내 고교 평준화를 추진했다.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프레시안(최형락)
민병희 :
그것 때문에 당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춘천과 원주는 각각 11년, 10년 동안 과거 평준화를 했었는데, 누군가가 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교육감을 선정하면서 기득권을 가진 분들은 ‘평준화를 깰 사람’을 찾았다고 한다.

이후 교육감 한 분이 3선을 했다. 12년 동안 교육감을 맡았고, 또 다른 한 분이 8년을 지냈다. 두 분 모두 평준화에 반대했다. 그렇게 20년 동안 강원도가 비평준화 지역이었다. 그 시기, 도민들의 염원은 ‘교복 색깔로 차별받게 하지 말자’는 거였다. 제가 4년 전 선거에서 ‘고교 평준화 공약을’ 내걸었을 때 다른 후보들도 꼭 평준화를 이루겠다고 따라 했는데, 도민들이 ‘짝퉁’을 잘 가려내셔서 결국 내가 당선이 됐다.

고교 평준화는 이제 잘 안착된 상태다. 선호, 비선호 학교의 구분이 완전히는 아니어도 80% 정도는 해소됐다. 오히려 ‘비선호 학교’로 불리던 곳에 입학한 아이들의 만족도가 더 높다. 이유는 하나다. 비선호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을 선생님들이 존중해주고 사랑해줬다. “내가 이 학교에 와서 대우받고 인정받네”라는 생각을 아이들이 하게 됐다. 처음엔 섭섭했던 아이들도 만족도가 높아졌다. 반면 선호 학교는 선생님들이 예전엔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오다가, 이제는 말썽 피우는 아이들도 들어오니까 오히려 아이들을 까칠하게 대하는 문제도 있었다.

이제 문제점으로 대두된 것은 선호, 비선호 문제가 아니라 원거리 배정이다. 선호, 비선호 학교 때문에 무작위 추천 방식을 썼다. 그러니까 집에서 먼 학교에 배정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크다. 올해부터는 너무 먼 지역은 배제하는 식으로 배정하려 한다. 선호, 비선호 구분이 완전히 해소되면 선지원 후추첨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

프레시안 : 선호, 비선호 학교의 구분이 80%정도 해소됐다고 했다. 그렇다면 문제가 아직 조금은 남아 있다는 건데….

민병희 : 비선호 학교에 배정을 받은 어떤 학생의 경우, 본인은 상관이 없는데 교복 입고 지나가면 옆집 아저씨가 이상하게 본다고 한다. 아직도 선입견이 남아 있는 것이다. 교복을 아예 같은 것을 입게 하면 되지 않겠나. 그래서 학부모들과 의논 중이다. 아니면 여름 같은 경우엔, 간편복을 입고 다니게 하는 등을 검토 중이다. 그런 것도 학교 문화를 바꾸는 일이 될 것이다.

여직원들이 날린 종이 비행기, 직접 찻잔 내오고 정리하는 교육감

프레시안 : 교육청 문화도 인상적이다. 교육감이 차를 직접 내오는 모습은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들다.

민병희 : 취임 이후, 세계 여성의 날 행사를 꾸준히 했다. 행사 때마다 여직원들에게 장미꽃을 주고 다과도 하고 대화 마당을 했다. 처음에는 얘기하자고 하니까 직원들이 말을 안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종이비행기 날리기였다. 종이에 불만을 적어 날리는 행사를 했는데, 전부 다 적어서 날렸다. 봇물 터지듯이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내용이 차 문화를 바꿔 달라는 것이었다. 과별로 말단 여직원에게 차 대접을 시킨다. 업무 분장에 있는 것도 아닌데, 차나 커피를 내오다 보면 자기 일도 못하고 불만도 쌓인다. 그걸 해소해 달라는 얘긴데, 내가 하지 말라고 해서 없어지는 문화가 아니다. 그래서 고민하다 내가 직접 차를 내오기로 했다.

결재하러 온 직원들, 손님들과 회의하면서 내가 차를 내온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안절부절 못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 마신다. 손님들이 가시면 내가 직접 치운다. 국장, 과장들도 부서에 가서 직접 실천한다.

교육감실에서 차를 마시기도 하지만, 교육청 1층 북 카페도 종종 간다. 장애인 바리스타 교육을 하면서 낸 북 카페가 있는데, 가격도 저렴하다. 이런 게 소문이 나면서 다른 곳에도 장애인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가 생겼다고 한다.
▲교육감 집무실 벽에 걸린 아이들 사진. 민병희 교육감이 강원도 내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사진을 직접 찍었다고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감님' 이 아니라 '교육감 선생님'

프레시안 : 전교조 강원지부장을 오래 했고, 현장 교사에 활동가 출신이다. 권위적인 행정을 깨는 게 이런 이력이 무관치 않은 것 같다. 현장 교사, 전교조 활동가 출신이 교육행정을 맡을 때 어떤 강점이 있다고 보나. 이런 점이 알려지면, 국민의 전교조에 대한 거부감을 씻는데도 도움이 될 듯하다.

민병희 : 전교조 활동할 때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웃음) 그 당시 활동가들 중에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몇 분 있었는데, 나도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그렇다보니 전교조 결성 당시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다. 강원지부장은 2, 3, 6대 이렇게 세 번을 했다. 그런데 지부장 임기가 끝났다고 활동의 끝이 아니다. 분회, 지회에서 활동한다. 또 사진 찍는 ‘찍사’로도 활동했다. 지부장 했던 사람이 그 아래 있는 분회에서 일하는 것. 그게 전교조의 문화였다. 역할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지, 어떤 계급이 있는 게 아니다.

교육위원 할 때도 그랬다. 의석에선 엄격하게 질타했지만 사석에선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랬더니 입장 차이가 컸던 분들이 나를 지지해준 경우가 많이 생겼다.

교육감이 된 이후 학생들이 붙여준 이름이 하나 있다. 학생들이 편지 같은 걸 통해 나를 ‘교육감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처음엔 어색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교장, 교감 선생님이란 말은 행정의 책임자면서도 선생님의 입장에서 행정을 하라는 뜻이다. 나도 강원도 내 교육 총수로 행정 책임을 지지만, 선생님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선생님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감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좋다.

반대로 없어진 이름도 있다. 어느 교육청에서나 교육감을 가리켜 '감님'이라고 부른다. 과거 '영감님'이란 표현을 썼던 것처럼 권위적인 사고에 젖어서 그런 것이다. 처음 교육감이 됐을 때, 자꾸 '감님'이라길래 내가 웃으면서 그랬다. "어디 교감 선생님 오셨어?"

‘감님’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해도, 잘 없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교육청 문화를 바꾸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호칭이 사라졌다. 이제는 그 말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특강을 할 때도 나 자신을 '교육감 선생님'이라고 표현한다. 어떻게 보면 공기가 바뀐 것이고,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도 자연히 진화하게 된 것이다.

“정부와 전교조,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

프레시안 : 강원도에선 작은 학교의 폐교 문제가 심각했는데, '작은 학교 희망 만들기' 사업 통해서 잘 살려냈다.

민병희 : 사실 교육감이 되고 나서 한 해 동안은 '작은 학교 희망 만들기' 사업을 못했다. 제목만 걸어놨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폐교 조건에 대한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초등학교의 경우 60명 이하, 중학교의 경우 90명 이하라고 규정을 바꾸어 놓았다. 따져보니 도내 학교 가운데 54%가 폐교 대상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학부모부터 교사, 도지사, 도의원, 시민사회단체, 운영위원까지 모두 힘을 모아 반대하고 싸웠고, 그래서 결국 막아냈다.

또 교육부가 은폐한 게 있다. 작은 학교를 폐교했을 때 경제적 효과가 얼마나 발생하는지에 대한 연구 과제를 줬는데, 통폐합 시켜도 1% 정도 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 결과가 나왔다. 거의 절감되는 비용이 없는 것이다. 이걸 숨겼다. 허약해지는 환자에게 항생제만 투여할 것이 아니라 영양제를 줘야하지 않나. 자생력 있게 학교가 살아날 수 있도록 하자. 그래서 '작은 학교 희망 만들기' 사업을 했다. 작은 학교를 지원할 수 있는 조례도 제정하고 ‘행복 더하기 학교’와 연결을 했다. 작은 학교지만 특성화시켜서 여러 이점을 만들었고,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점점 찾아오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땅값이 올라가는 지역도 생겼다. (웃음)

프레시안 : 요즘 민감한 현안 중 하나가 전교조와 정부의 갈등이다. 대부분의 교육청이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민병희 :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내가 노동조합 할 때 그런 얘길 많이 했다. “우리는 이겨도 이기는 것이고 져도 이기는 것이다.” 투쟁 속에서 정체성도 확립하고 진취성이 생긴다. 그게 노동조합의 생리 아닌가. 난 이번에 정부가 잘못 건드렸다고 본다. 힘이 빠지고 있는 전교조에 오히려 동력을 불어넣어주는 법 해석을 해버렸다. 악수를 뒀다고 본다. 상식을 벗어나는 얘길 하지 않았나.

또 우리나라는 ‘시행령 공화국’이다. 실제로 중요한 문제는 헌법과 법률이 아니라 시행령으로 옭죈다. 헌법 정신에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인정하고 있는데, 시행령으로 못하게 만든 것이다. 헌법이 왜 필요한가. 힘이 약한, 그렇지만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게 헌법 아닌가. 법은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법이, 국가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도록 악용되곤 한다.

지역 언론에 “정부와 전교조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라는 내 발언이 기사화됐다. 그 말이 맞다. 교육감으로서 어느 편도 들면 안 된다. 정말 법과 상식, 올바른 교육 철학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권한으로 법 해석을 할 때, 약자들이 불이익 당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번 상근자 문제만 해도 그렇다. 노동조합에 파견을 나간 이들이 1년 동안은 노조에서 걷은 조합비로 임금을 받고, 파견 기간이 끝나면 복직 요청을 한다. 법은 복직 요청이 있을 때 임용권자가 즉시, 즉각 복직하도록 하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임금 문제 해결을 위해 파견이 끝나면 즉각 복직시켜 임금을 지급하도록 보호해 주는 법이지, 빨리 복직하라고 강제하기 위한 법이 아닌 것이다. 정부가 법 해석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프레시안(최형락)

"학교 비정규직, 오래 일하면 봉급 올라간다는 희망 가질 수 있어야"

프레시안 :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노동 문제로 이어진다. 강원도 교육청이 학교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었던 게 인상적이었다. 직접 고용 조례도 제정했는데, 설명을 듣고 싶다.

민병희 : 그 바람에 다른 지역에서 교육감 협의회를 할 때면 학교 비정규직 해결을 위해 시위하는 분들이 자꾸 나를 쳐다본다. 미안하긴 한데 속으로는 웃었다. 다른 지역도 따라하면 될 것 아닌가? (웃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 같은 능력을 갖고 있는데 왜 임금으로 차별하나. 당사자가 되면 얼마나 속상하겠나. 비정규직이란 걸 없애고 최대한 정규직화 해야 한다. 다만 그럴 권한은 아직 교육감에게 없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고용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좋은 밥을 먹이고 좋은 교육 환경을 마련하겠나.

일단 교육감 직권으로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고, 임금 면에서 조금이나마 처우 개선을 해보고자 했다. 오래 일하면 조금이라도 봉급이 올라간다는 희망을 갖게 하자. 그래서 조례를 만든 것이다. 아직은 만족스럽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위안과 희망을 가질 것이다. 이번에 <정도전> 드라마 마지막 회를 보니, 정도전이 말한 대사가 인상 깊었다. '조선의 하늘을 봐라. 저 하늘을 연 것은 백만 대군의 창검이 아니오, 바로 꿈이었다.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 된다는 희망이었다' 이러면서 대업을 이루자고 하지 않나. 희망을 갖게 하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다.

또 강원도교육청이 최초로 교무 행정사를 모든 학교에 배치했다. 비정규직이었던 분들, 여기저기 찢어져서 일하던 분들을 통합해서 일의 양을 늘려주고 무기계약으로 하고 임금도 높였다. 선생님들은 가르치는 일에만 매진하게 하고, 교무행정은 이분들이 한다. 꼭 필요한 직종이 됐다. 이게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이게 점차 꼭 필요한 직종으로 인정이 된다면 정부에서도 정규직화 하기 쉬울 것이다.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이 정책을 다 수용했다.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결국 예산 문제 아닌가.

민병희 : 그러니까 쓸데없는 사업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만 그 돈을 교육복지와 비정규직 문제 개선에 쓸 수 있다. 이번에도 강원 교육정책 배심원을 두기로 했다. 배심원들이 뭐하는 사람이냐 하면, 정책 만족도 하위 30% 사업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업은 없애야 한다. 교육청이 일을 만들면 만들수록 학교 현장은 힘들어진다. 교육청 사업은 줄이고 학교의 자율 역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져야 한다.

"일제고사 순위는 떨어졌는데, 대학 진학률 순위는 올랐다"

프레시안 : 이제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그만큼 교육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데, 어떻게 보나. 강원도는 지역 간 소득 차이도 크다고 들었다.

민병희 : 공부를 즐겁게, 스스로, 자기 목표를 잡아서 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고 본다. 이번 선거 때도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라고 하는, 소위 일제고사에서 강원도가 성적이 나쁘다고 상대 후보가 계속 저를 공격했다. 실제로는 어떤가. 일제고사 성적 나쁜 곳일수록, 오히려 대학 진학률은 높았다. 강원도의 대학 진학률이 상당히 높다.

예전엔 달랐다. 일제고사에서 강원도가 5년 연속 1위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는 대학 진학률이 낮았다. 그 시절엔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떨어졌다. 왜 그런 걸까. 일제고사는 저학년 때 치른다. 일제고사 성적을 높이려면, 암기식 교육과 문제풀이, 반복학습이 이 필요하다. 그걸 하니까 아이들이 저학년 때 공부에 흥미를 잃는다. 그래서 일제고사에선 1위를 하는데 대학 진학률은 떨어지는 것이다. 내가 교육감이 돼서 한 게 이런 구조를 뒤집는 거였다. 아이들이 즐겁게,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것이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진 건 그 결과다.

다른 성과도 있다. 강원도는 사교육비 감소 비율이 전국 1위다.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늘었다는 뜻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쓴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대학 입시 바꾸려고 너무 목매지 마라.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로 만들어라. 그럼 대학 진학 제도 자체가 바뀐다.’

학교 안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구조가 바뀐다. 인위적인 변화는 위험하다. 사교육 문제 같은 경우, (학원 관계자의) 생존권 문제도 걸려 있다. 학원연합회와 대화를 자주한다. 그 분들에게 학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선행학습 학원이 필요한 게 아니다. 다만 학업 성취도가 낮은 애들한테는 필요하다. 진도 나가다 보면 성취도 낮은 애들은 못 따라가고 흥미를 잃는다.

지금 우리가 하려는 큰 프로젝트가, 교실에서 교사의 진도에 맞추는 게 아니라 아이들 개인별 진도에 맞춰 수업을 하려는 것이다. 반에 학생 30명이 있으면 30개의 진도가 있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교사가 상당히 노력해야 한다. 시험 보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쳐 보면, 성취 수준이 낮은 애들이 어느 순간 비약적으로 앞서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장 성취 수준이 낮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이런 아이들이 쳐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 구조에선 그게 학원의 역할이 돼야 한다.

상당수 학원이 하고 있는 선행학습은 그래서 위험하다. 선행학습으로 앞서간 아이들은 결국에는 뒤쳐진다. 학부모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가 성취도 수준이 낮았다. 그런데 작은 학교로 전학을 보냈더니, 그렇게 행복해하더라는 게다. 그러면서 성취도 수준도 높아졌다고 한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 누구도 버리지 않는 교육. 그걸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작은 학교가 가진 장점이 더 크다. 큰 학교에선 아이들에 따라 다른 진도를 나가게끔 하는 게 불가능하다.

광고 한마디 하겠다. 강원도에 전입하면 여러 가지 혜택도 준다. 청정 강원도에 와서 귀농도 하고, 아이들 교육도 잘 시키고, 건강도 찾고, 행복한 생활 하라고 기사 좀 써 달라. (웃음)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프레시안(최형락)

"등수에 신경 안 쓰고 공부한 아이들이 학습능력도 좋다"

프레시안 : 사교육비 감소율이 전국 1위라고 했는데 이유가 뭐라고 보나.

민병희 : 사교육비 감소율이 5%로 전국 시도 중에서 가장 높았다. 변화를 아주 두려워하는 곳이 학교다. 뭐든지 관행대로만 하려고 한다. 무조건 내가 책임질 테니까 변화하라고 했다. '이렇게 하니까 되는구나' 이걸 점차 알기 됐다. 그러면서 학교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고, 사교육 의존이 줄어든 데는 그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학부모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서열이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한테 질까봐 불안해한다.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 안 보고 상시평가제를 하는데, 등수(석차)가 안 나오니까 학부모들이 무척 불안해한다. 그러지 마시라고, 그 아이가 행복한지, 실제로 학업 성취를 했는지 안했는지 그걸 보시라고 부모들에게 이야기한다. 몇 등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실제로 배운 걸 소화했는지가 중요하다. 그걸 설명하는 게 제일 힘들다. 그런데 등수에 신경 안 쓰고 즐겁게 공부한 아이들이 고등학생쯤 되면 학습능력이 훨씬 좋다. 이런 점이 알려지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민병희 : 우리 학부모와 교사들이,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걸 빙자해서 아이들을 너무 괴롭힌다. 요즘 텔레비전 광고 보니까 이런 게 있더라. '우리 엄마는 날 사랑해요. 기분 좋을 때만'. '우리 아빠는 날 좋아해요. 말 잘들을 때만'. 그걸 보면서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항상 존중하고 사랑해줘야 한다.

정말로 아이들이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그걸로 교육은 끝! 요즘 코미디에서 나오는 표현처럼, 아이들이 사랑받고 있다면 그걸로 끝! 이게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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