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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괴뢰? 국가 정통성 제대로 따져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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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괴뢰? 국가 정통성 제대로 따져봐야

[이재봉의 법정증언] 북한, 남한 못지않은 국가 정통성 있다

법정에서 증언할 때마다 변호사로부터 가장 많이 또는 먼저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북한이라는 나라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북한이 '단체'인지 '국가'인지.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국가'가 아닌 '단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도 남한 못지않은 정통성을 지닌 국가"라는 게 내 답변이다. 더 솔직하게 표현해, 국가 정통성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 것이냐에 따라, "북한은 남한보다 더 큰 정통성을 가진 국가"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1991년 개정된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다.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라는 것이다. 여기엔 북한이 국제 사회에서 정부나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주제에 분에 넘치게 스스로를 정부나 국가로 부른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북한은 남한이라는 '국가'를 뒤집어엎으려는 목적을 가진 불순한 '단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참고로, '변란'이란 "큰 재앙이나 사고로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일"이란 뜻이기에, "국가를 변란할"이라는 문구가 어색하다. 명사를 동사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이미 폐지되었어야 할 악법이라고 생각해온 터에, 일부 문구가 어법에 어긋난다고 시비 거는 짓이 오히려 그 악법을 인정하는 셈이지만.

앞에서 "북한도 남한 못지않은 정통성을 지닌 국가" 또는 "북한은 남한보다 더 큰 정통성을 가진 국가"라고 했는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몹시 민감하고 정말 위험한 표현이다. 내 답변 자체가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지 모른다. 북한을 "찬양·고무·선전"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을 테니까. 따라서 국가의 정통성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TV가 지난 2005년 5월31일 시리즈 다큐멘터리 '조국광복을 위하여'를 방영했다. 사진은 다큐멘터리 중 해방직후 만경대 고향집으로 돌아온 김일성(가운데)의 청년시절 모습. ⓒ조선중앙TV=연합뉴스

'국가의 정통성'이란 국민 또는 인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국가 권력의 정당성과 합법성이다. 이를 구성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이 대략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 국가를 세운 지도자들의 자질과 경력, (2) 국가가 지향하거나 추구하려는 사상이나 체제, (3) 이전 국가와의 연속성, (4) 정부 수립 과정, (5) 국제 사회의 승인. 차례대로 한 가지씩 짚어본다.

첫째, 북한 건국 지도자들이 이전에 무슨 일을 했던 사람들인가? 대부분 공산주의자들로 1920~30년대 나라 안팎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이끌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크게 네 계파로 나뉜다. 첫째, 지금의 서울인 경성에서 조선공산당을 이끌며 항일 운동을 펼친 '경성파' 또는 '남노당파'로 대표적 인물은 박헌영이다. 둘째, 만주 지역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이던 '만주파' 또는 '빨치산파'로 김일성이 주도적 인물이다. 셋째, 중국공산당의 본거지였던 옌안 (延安) 지역에서 항일 운동을 벌이던 '옌안파'로 대표적 인물은 한글학자 김두봉이다. 넷째, 연해주 지역에 거주하며 소련공산당에서 활동하던 '소련파'로 허가이가 주도적 인물이다.

이들 대부분은 1920~30년대부터 국내외에서 일제의 악랄한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민족해방 투쟁을 전개했으며, 1945년 해방을 맞아 이러한 활동과 경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국가 건설에 정당하게 뛰어들었다. 남쪽에서는 미군정이 공산주의 활동을 불법화하고 탄압했기 때문에 북쪽에 소련의 지원을 받아 나라를 세웠다. 북한의 건국 지도자들은 대부분 항일 독립운동을 이끌던 사람들이란 뜻이다.

둘째, 북한이 지향하거나 추구하려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1948년 9월 정부 수립 당시 인민의 신뢰와 지지를 얼마나 받았을까?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남한에서는 1950년 '6·25동란'을 거치면서 '빨갱이'들의 잔인한 폭력을 직접 겪거나 보고 느꼈다며 '공산당'에 몸서리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한국전쟁 이후 '반공'을 '국시(國是)' 즉 국가 정책의 기본 방침으로 정하면서, 전후 세대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거나 알지도 못한 채 공산주의에 치를 떨게 되었다.

그러나 6·25전쟁 이전엔, 특히 1948년 남북한 정부 수립 전후로, 한반도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인민들 대부분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길 원했다. 1910년 8월 나라를 잃고 1945년 8월 해방될 때까지 35년간 가혹한 일본 식민통치를 겪으면서 제국주의에 맞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호감을 갖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친일파나 지주 또는 자본가들을 빼고는. 노동자와 농민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데 반대하는 민중은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일제 하에서 조선 사람들은 대부분 공장 노동자 또는 소작농들이었으니까.

그러기에 '조선공산당'이 1925년 서울에 세워지고,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1935년 폐쇄되지만, 당시 글줄이나 읽으면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빠지지 않으면 지식인이 아니라는 말이 나돌았던 것이다. 심지어 해방 이후 1946-47년 남쪽에서 공산주의를 탄압하며 자본주의를 앞세운 미 군정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조차 인민들의 70~80%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길 원했다.

1980년대 말부터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체제 경쟁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남한이 미국으로부터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게 '축복'이라는 말도 들린다. 물론 이 글을 쓰는 2014년 현재를 기준으로 하면, 자본주의를 지향하며 세계 15위 안팎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남한과 사회주의를 지향하며 '빌어먹고 굶어 죽을' 정도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 사이에 정통성을 따지는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1948년 8~9월 남북한 정부가 세워질 때, 국가 이념이나 정부 체제와 관련해서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지본주의보다 인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훨씬 더 많이 받았다는 점을 거듭 밝힌다.

셋째, 북한이 이전 국가인 조선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가? 조선을 계승하지 않았기에 이전 국가와의 연속성이 없다.

남북한이 수립된 1948년 이전의 국가로는 1897년 세워진 대한제국을 들 수 있는데, 이는 1392년 들어선 조선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조선이든 대한제국이든 1905년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기고 1910년 주권을 빼앗기는 등 망해버렸기에 이 국가들은 바로 계승될 수 없었다. 참고로, 남한은 헌법 전문에 1919년 3·1운동 이후 건립된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혀 비록 '망명' 정부지만 이전 국가와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북한은 헌법 서문에 김일성이 북한의 '창건자'이자 '시조'라고 명시함으로써 이전 국가와의 연속성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넷째, 북한 정부가 인민의 지지를 받으며 민주적으로 세워졌는가? 인민들의 선거로 남한의 국회에 해당되는 최고인민회의를 구성해, 여기서 헌법을 채택하고 정부 정책을 결정했다.

남쪽에서 1948년 5월 총선거가 실시되고 8월 정부를 수립하자, 북쪽에서는 8월 총선거를 실시했다. 선거 방식은 비밀 투표가 아닌 이른바 '흑백 찬반 투표'였다. 많은 인민들이 글을 읽을 줄 몰라 흑백 투표함을 이용했다고 하지만, 민주적 선거의 기본인 비밀 투표에 분명히 어긋난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에 해당되는 대의원 572명 가운데 절반이 훨씬 넘는 314명이 노동자와 농민이었다니 최고인민회의가 인민의 대표성은 제대로 지녔던 셈이다.

다섯째, 주변 국가들을 포함한 국제 사회가 북한을 지지하거나 승인했는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지지하고 승인했다.

북한이 1948년 9월 수립되자, 한 달 뒤 소련이 가장 먼저 승인하고, 11월엔 몽골,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등이 승인했다. 이에 북한은 "공화국 정부의 합법성에 대한 국제적 승인이며 공화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담보"라고 주장하며 국제 사회에 등장했다. 그리고 1949년엔 알바니아, 중국, 동독 등과 국교를 맺었다.

위와 같은 국가 정통성의 요인들 가운데, 북한은 건국 지도자들의 자질과 경력을 가장 중시한다. 그들 대부분 해방 이전에 항일 독립운동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남한 건국 지도자들 가운데는 식민 통치 아래서 독립운동은커녕 일제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과 비교하기 위한 속셈일 것이다. 한편, 남한은 국가 정통성으로 국제 사회의 승인을 가장 강조한다. 앞에서 얘기했듯, 북한은 1948년 11월까지 기껏해야 7개 사회주의 국가들의 승인을 받았지만, 남한은 1948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미국을 비롯한 48개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러한 국가 정통성 요인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북한도 남한 못지않은 정통성을 지녔거나 오히려 남한보다 더 큰 정통성을 가진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정부를 참칭해온 단체가 전혀 아니라는 뜻이다.

한편, 남한에서는 오랫동안 북한을 국가로서의 정통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주성도 없는 단체로 간주해왔다. '북한 괴뢰' 또는 '북괴'라고 불러온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한은 남한을 '남조선 괴뢰'라고 불러왔다. 남한은 북한이 대한민국의 북쪽 지역을 불법으로 점령하여 소련의 지령을 받아 활동하는 꼭두각시라 비난하고, 북한은 남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쪽을 불법으로 차지하여 미국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앞잡이라고 헐뜯은 것이다.

그런데 남한이 북한을 어떻게 비하하거나 비난하더라도 자주성을 깎아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 군정에 의존해 수립된 남한 정부가 미국에 대해 지녀온 자주성과 소련군부의 도움으로 세워진 북한 정부가 소련에 대해 지켜온 자주성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남한은 일본과 아울러 "미국의 51번째 주"와 다름없다는 국제 사회의 비웃음도 나오는 터다.

북한과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대치하고 있기에 '주적'으로 삼고 '적국'으로 부를 수 있다. 북한이 빌어먹고 굶어죽으면서도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으니 '거지 국가'나 '깡패 국가'로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군사 외교적으로 미국에 종속적이다시피 의존적인 남한이 군사적으로든 외교적으로든 자주성만큼은 어느 나라보다 강한 북한을 '괴뢰'라고 욕하는 것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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