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어느날, 아버지는 북한으로 떠났다. 아버지는 한국이 보낸 공작원이었다.
6살 아이는 아버지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그래서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 군 부대로 향했다. 군 부대를 찾아온 6살 아이를 군인들은 집에 돌려보내지 않았다. 군 부대 안에 잡아두고 교육을 시켰다. 북파 공작원 교육. 아이는 1년 반 동안 사격훈련, 제식훈련, 수상훈련 등을 받았다.
휴전선을 넘었던 아버지는 북한군에게 체포됐다. 그곳에서 한국에 남겨둔 아들이 북파 공작원 교육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방법은 다시 공작원이 되는 것뿐. 북파 공작원은 남파 공작원이 됐다. 다시 말하면, 남파 간첩이다. 아버지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자수했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국군은 아버지를 믿지 않았다. 이중간첩이라고 봤다. 결국 아버지는 사형 당했다.
아이가 아버지의 사연을 알게 된 건, 나이 오십을 훌쩍 넘겨서였다. 그때가 2006년이다. 그리고 3년 뒤, 환갑이 된 아이는 아버지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아버지 심문규는 이중간첩이 아니었다. 다시 손해배상 소송이 이어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김연하 부장판사)는 이중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사형을 당한 심문규 씨 유족에게 국가가 3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13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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