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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사상 최악의 판결, '송씨 일가 간첩 조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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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사법사상 최악의 판결, '송씨 일가 간첩 조작 사건'

[단비칼럼] 민주주의 위기시대, 법원의 역할을 묻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법원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정치처럼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도 없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무기도 없다. 새로운 상상을 하기에는 법률에 의한 제약이 너무 강하다. 법치주의는 급진적이지도 근본적이지도 않다. 미래에 대한 상상은 역시 정치와 시민운동의 몫이다.

법원은 세상을 바꿀 무기도 없다. 대중적 지지는 필요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법원은 다른 분야에서 먼저 시작한 사건을 판결을 통해 처리할 뿐이다. 법원이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법률과 양심, 그리고 논리다.
 
법원은 그래서 과거 기록의 창고이다. 그런데 이 과거의 기록이 미래의 방향을 결정한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하여 미래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대법원의 호주제 폐지 판결과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위헌판결의 영향은 법원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법원의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판결 속에 우리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역사다. 비록 자랑할 만한 역사보다는 부끄러운 판결이 더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우리는 기억을 통한 정의를 세울 수 있다.

‘인혁당’ 버금가는 부끄러운 판결…안기부・검찰 조작하고 법원 뒤집고

근대사법이 도입된 이후 우리는 일본제국주의, 군부독재, 권위주의 체제를 거쳐 왔다. 법원 역시 이러한 시대를 살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판결이 법의 이름으로 내려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자유를 잃었다. 부끄러운 판결들이 너무 많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그럼 가장 부끄러운 판결은 과연 무엇일까?

법관들이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판결은 잘 알려진 1974년 긴급조치 위반의 인민혁명당 사건 판결이다. 이 판결은 사법살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시도 계엄도 아닌 상태에서 군법회의를 거쳐 대법원에서 사형판결을 받았다. 사형판결 후 불과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 사건은 재심을 통하여 무죄판결을 받았다. 

어두운 시대는 인혁당 판결에 못지않은 부끄러운 판결을 양산했다. 그 중 인혁당 사건에 필적할 만한 사건이 ‘송씨 일가 간첩조작 사건’이다. 무려 7번의 유죄와 무죄가 오간 재판이다. 지방법원(유죄) → 고등법원(유죄) → 대법원(무죄취지 파기환송) → 고등법원(유죄) → 대법원(무죄취지 파기환송) → 고등법원(유죄) → 대법원(유죄인정 상고기각). 불법구금과 고문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죄판결 선고. 27년 만에 재심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 대법원에서 유죄를 받아내기 위하여 국가안전기획부, 검찰, 대법원 등이 합작한 사건.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이 조작되었다. 국가공권력이 개인을 희생시킨 대표적인 사건이다.

검찰・안기부 대책회의 열어 또 조작…27년만에 재심서 결국 ‘무죄’

송기복씨 등 송씨 일가는 1982년 국가보안법상 간첩죄로 기소되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발표에 따르면 “전 북괴 노동당 연락부 부부장 송창섭 외 동인의 처 한경희(사망)에게 포섭되어 일가친척으로 점조직식의 간첩단 조직, 서울과 충북을 거점으로 1957년 5월부터 1982년 3월까지 암약해 온 고정간첩사건”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조작된 것이었다. 대법원도 판결문에서 불법구금과 고문 사실을 인정했다. 대법원도 “피고인들이 임의동행의 형식으로 영장 없이 연행되어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채 적게는 75일, 많게는 116일의 장기 불법구속”을 당했고 “불법 구속되고 있는 동안 인간으로서는 감내할 수 없는 신체상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런 이유로 대법원은 이들의 자백을 적은 검찰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보았다. 고등법원의 유죄 판결을 무죄취지로 파기해 버렸다.

이 사건에서 결정적인 증거는 피고인들의 자백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자백이 고문에 의한 것이라는 이유로 무죄취지로 판결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이 정도면 고등법원에서도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마땅하고 검찰과 국가안전기획부도 포기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시대가 항상 문제였다. 시대는 전두환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정권의 정당성은 의심받았고 철권통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조작을 하더라도 간첩사건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다. 

이렇게 되자 검찰과 국가안전기획부는 유죄판결을 받기 위하여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그 대책 중의 하나는 파기판결의 주심인 이일규 대법관에 대한 내사와 미행,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통한 압력, 판사접촉을 통한 ‘협조’ 요청, 변호인에 대한 내사와 비위사실 수집 등이었다. 국가기관인 국정원 과거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대법원 두 번 밝힌 입장 바꿔 ‘자백 임의성 있다’ 판결하기도

대법원의 대책은 기가 막히다. 대법원은 “항소심 재공판시 당시의 담당수사관, 공소제기한 담당검사 등을 증인으로 신청, 이를 담당 재판부가 받아들이게 하여 사실관계를 명백히 진술토록 하여 검찰작성 신문조서가 임의성 있다고 판결후 재상고하면 사건을 특별배당 기각 판결토론 함”이라는 대책을 마련했다. 

이후 재판은 대법원의 방침대로 진행되었다. 고등법원은 새로운 증인을 불러 자백에 임의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유죄판결을 했다. 상고를 받은 대법원은 즉시 심리를 열고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를 확정지었다. 

대법원은 두 번이나 밝힌 자신의 입장을 바꾸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팔아먹었다. 이유는 불법구금과 고문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백은 고문과 관계없이 믿을 만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자백과 고문이 관계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나온 증인은 경찰들이었다. 세상에 어떤 경찰이 고문을 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하겠는가? 이런 사정은 모두 무시되었다. 

검찰, ‘고문’ 수사커녕 피의자 자백 번복 막으며 간첩 조작 가담

사건 당시 검사의 행태는 가관이다. 검사는 고문 및 가혹행위, 불법구금을 수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안전기획부에서의 자백을 번복하지 말라고 협박했다.

구체적으로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서 정리한 내용에 따르면 수사를 받은 송기준은 검사가 구치소로 조사왔을 때 입북사실을 부인했다. 그러자 3일 후에 구치소에 안기부에서 수사했던 4명 중 3명이 와 “너 왜 검사 앞에서 부인하느냐. 자백하면 기소유예나 집유로 내보내주려고 상사들과 다 합의가 돼 있는데 왜 엉뚱한 소리 하느냐. 다시 가서 조사를 받아야겠다”고 했다.

송기준이 수사관에게 안기부에서 했던 대로 자백하겠다고 하자 검사가 들어왔고 송기준은 수사관과 검사 앞에서 역시 그대로 자백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옆방으로 옮겨 검사가 다시 질문했을 때 송기준은 다시 부인했는데 그러자 검사가 수사관 계장을 다시 불러서 “이 사람 또 부인한다. 이야기 좀 잘해주지”라고 했다. 

또한 송기복은 상고이유서에서 “검사 수사 도중에 두 번씩이나 수사관이 방문하였고 이러한 심리적인 공포 속에서 안기부의 진술서를 그대로 읽어나가는 조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검사는 이 모든 것은 운명이고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라고 종용했다. “분단된 조국이 당신의 잘못만은 아니요. 우리 모두가 책임이 있는데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사건이니 시인하라”, “당신만 혼자 아니라고 부정해도 당신의 친척 동생들이 전부 시인했는데 어떻게 당신은 홍수 속에서 떠내려가는 무리 중에 혼자만 떠내려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겠는가? 또 혼자만 독야청청할 수 있겠는가”라고 역설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검사가 아니라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인간이라고도 보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위기시대, 법원도 성찰 통해 자기 역할 찾아야

이 사건은 2009년 유죄판결 이후 무려 27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얻은 자백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이유이다.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 확립된 지금 이 결론은 당연하게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형사소송법 교재들은 고문이나 불법구금으로 자백을 해야만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인과관계 필요설이 판례의 입장이라고 설명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둔감한 서글픈 현실이다. 

이러한 역사 위에 대법원과 대한민국이 서있다. 지극히 위태롭고 불안한 민주주의다. 더구나 지금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위기시대이다. 무고한 자가 간첩으로 조작되고 진보당이 해산위기에 처해 있다. 전교조는 법외노조로 내몰리고 있고 국정원의 정치개입, 선거개입은 여전하다. 국가공권력의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위기에 처할수록 법원은 중요해진다.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씨 일가 판결에서 보듯이 법원은 정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떤 경우에는 알아서 복종한다. 법원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위기 시대에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자만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위기 시대에 법원도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자신의 역할을 찾기바란다. 역사의 과오는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청산될 수 있다. 결코 그냥 사라지는 법은 없다.

김인회 교수의 <단비칼럼>을 매주 연재합니다. ‘단비칼럼’은 ‘단숨에 읽는 비평 칼럼’의 줄임말입니다. 필자인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참여정부 시민사회비서관,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낸 김인회 교수는 <단비칼럼>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와 사법제도의 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올곧은 해법을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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