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었던 지난 6일 낮 1시, 충북 단양의 한 도로에서 25톤 화물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신호대기 중이던 1톤 화물차를 들이받고 중앙선을 넘어 승용차와 충돌했습니다. 승용차에 타고 있던 두 명의 여성이 숨졌고, 화물차 운전자 등 네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사고로 아무 잘못도 없는 영혼을 하늘로 떠나보낸 유가족들은 황망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배우 공효진 씨도 지난달 19일 4.5톤 화물차가 뒤에서 들이받아 팔과 무릎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자고 나면 화물차 사고 소식이 들려옵니다. 화물차와 충돌하면 대부분 승용차에 탄 사람들이 크게 다칩니다. 텔레비전은 날씨 소식 중계하듯 무심하게 사고 소식을 전합니다.
휴일 화물차 추돌사고 6명 사상
대형트레일러를 11년째 운전하고 있는 우한택(40) 씨는 단양의 화물차 추돌사고를 매일매일 아슬아슬하게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는 7일 새벽 2시에 일어나 평택항에서 자동차 부품을 컨테이너에 싣고 5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아침 8시 경주 외동에 있는 한 회사에 도착해 1시간 반가량 짐을 내리고 다시 화물을 실으려고 평택항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3시 평택항에 도착한 그는 다시 배차를 받아 자동차 부품을 싣고 화성까지 달렸습니다. 7일 하루 집을 나와 도로에서 보낸 시간이 무려 17시간입니다.
새벽 2시에 일어난 한택 씨는 아침 10시가 되어서야 첫 식사를 했습니다. 화물을 화주에게 제시간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8미터나 되는 큰 차가 주차할 식당을 찾기 어려워 밥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어야 합니다. 그는 평택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맛없고 비싼 밥을 먹기 싫어 라면에 공깃밥으로 점심을 때웠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지난달에 번 돈은 200만 원 남짓입니다. 실제 받은 돈은 더 많지만 기름값, 고속도로 통행료, 차 할부금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대형면허와 특수면허, 화물운송자격증까지 따고 2억 가까운 돈을 빌려 트레일러를 사서 시작한 화물운전 10년,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빚만 늘어가고 있습니다.
화물운전 10년, 남은 건 아픈 몸과 빚
화주에게 화물을 제때 전달하려면 쉬지 않고 달려야 합니다. 차가 막히거나 사고라도 나서 지연되면 이후에 물량을 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는 늘 과적의 유혹에 빠집니다. 화주가 과적을 안 하면 물량을 안 주겠다고 하는 일도 빈번합니다.
한택 씨는 가급적 야간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화물기사들은 야간운행을 자주 합니다. 야간에는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50% 할인해주기 때문입니다. 한밤중에 운전하다 보니까 졸음운전이 팽배해있습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과속, 과적에 야간 졸음운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택 씨는 세월호보다 더 위험한 게 화물차라고 말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큰 차 옆에 붙지 말고 멀찌감치 떨어져 가라고 얘기합니다. 화물의 무게 때문에 원하는 대로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습니다. 타이어가 터지면 그 압력에 사람이 죽을 수 있습니다.
“25톤 차에 60톤, 70톤씩 싣고 다니는 화물기사들이 있어요. 5톤 트럭인데 불법으로 구조를 변경해서 15톤씩 싣고 다닙니다. 브레이크가 조금이라도 파손되어 있으면 내리막길에 그 근방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는다고 봐야 합니다. 화물차는 위험천만한 무기입니다.”
과속, 과적에 통행료 아끼려고 야간 졸음운전까지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화물차 사고에 인한 사망자가 2010년 1266명, 2011년 1121명, 2012년 1231명이었습니다. 2007~2012년 연평균 1269명으로 하루 평균 3명이 넘습니다. 매년 차량 사고 사망자 5300여 명 중 24%에 이릅니다.
매년 도로 위에서 세월호 4척이 침몰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1년 화물연대 조합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당 평균 야간운행 시간이 14.1시간이었습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화물차의 심야 시간대 사망자가 주간에 비해 최소 2배, 최대 5배 많았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0년 전체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389명) 가운데 38%(148명)는 과적과 적재 불량 화물차 사고 때문이었습니다.
화물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1분기 조합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12.1시간이었습니다. 월평균 25일을 운행하고 있습니다. 초과근로수당이나 유급휴일 등 제조업 임금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임금이 법정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화물 노동자들은 일하다 아프거나 다쳐도, 심지어 목숨까지 잃어도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어 당사자와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습니다. 일제 잔재인 지입제로 인해 자신의 돈으로 구입한 차량의 소유권조차 보장받지 못해 차량과 번호판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통계로 확인되는 위험천만 화물차
자고 나면 화물차 사고 소식이 들리는데도 국회는 낮잠만 자고 있습니다. 19대 국회 개원 직후에 제출된 적재중량 또는 적재용량 단속 권한을 국토관리청에 부여하고, 고의 과적 3회 이상 시 면허를 취소하며 과적 화주에게 책임을 묻는 ‘도로법 일부개정법률안’ 법안 3개가 상임위에 계류 중입니다.
특히 과적을 근절하기 위해 고의 과적 3회 이상 화물운전자 면허 취소를 골자로 하는 ‘과적 3진 아웃제’는 2012년 입법 발의됐지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단 한 번도 안건으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화물차가 ‘도로 위의 세월호’라는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는 5월 29일 “화물차가 운행할 때 화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업주의 과적 요구와 고의 과적은 모른 체하고 짐만 꽁꽁 묶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얼어 죽겠다고 보일러를 틀어달라고 하니까 옷을 잘 여미라고 합니다.
위험천만한 심야의 졸음운전을 막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낮에도 통행료를 할인해주면 됩니다. 4, 5종 화물차만 할인해주면 1~3종 화물차가 과적을 하게 됩니다. 모든 영업용 화물차의 통행료를 할인해주면 됩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박근혜 씨도 모든 화물차에 주간 25% 할인을 약속했지만 다른 민생 공약처럼 무덤에 들어간 지 오래입니다.
박근혜 사기 공약과 낮잠 자는 국회
4.16 세월호 몰살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는커녕 자본을 위한 규제 완화만 부르짖고 있는 정부와 낮잠만 자고 있는 국회를 깨우는 위해 화물 노동자들이 나섰습니다. 7월 14일 화물노동자들이 운행을 멈추는 경고 파업을 벌입니다.
시민사회단체가 화물 노동자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화물 노동자들의 무권리 상태는 위험한 질주, 죽음의 운전으로 이어져 국민들을 위험으로 내몰기 때문입니다. 국회에 제출된 화물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법안들이 조속히 통과되어 화물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국민의 안전도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시민단체들은 1년에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1269명의 국민들이 더 이상 안타까운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국회에 촉구하고, 화물 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하는 1269인 선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한택 씨는 오는 14일 화물차 운전을 하루 멈추고 파업에 함께 참여합니다. 화물차 교통사고로 더 이상 안타까운 생명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평생 빚을 갚다가 골병들고, 차 안에서 자다 죽어가는 동료들이 더 이상 없기 위해서입니다.
화물연대가 출범한 지 12년, 사업주들은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운송료를 조금 올려줬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내리고, 정부는 파업할 때는 들어주는 척하다가 끝나면 모른 척했습니다. 하지만 우한택 씨는 화물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화주와 운송 회사의 횡포를 막고, 조금이나마 안전한 운전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호주의 운수노동자들이 20년 동안 싸워 특수고용 화물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받게 됐고, 2012년에 전국 차원의 ‘도로안전운임법’을 시행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화물노동자들이 앞장서고, 시민들이 응원한다면 호주처럼 한국에서 ‘표준운임제’가 시행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 관련 기사 보기 : 호주운수노조 사무부총장 "표준 운임제 도입, 자신감 가져라")
회사의 횡포와 정부의 탄압에 아직도 침묵하고 있는 화물노동자들이 많지만 한택 씨는 요즘 행복한 미소를 떠올립니다. 평택항의 화물 운전기사 동료들이 하나둘 화물연대에 손을 내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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