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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조 생기자 2달 만에 '폐업'한 요양원, 속내는?

"휴식시간에 쉬고 싶어 노조 가입했는데"…요양원 "적자 때문"

경기 고양시의 한 민간 요양원이 요양보호사 노동조합이 생기자 두 달여 만에 돌연 폐업해, '노조 무력화를 위한 위장폐업' 논란이 일고 있다.

사업권을 넘겨받은 새 사업주마저 신규채용 원칙을 내세우며 노조의 고용승계 요구를 거부해, 요양보호사 23명이 일시에 집단해고된 상황이다.

해고된 요양보호사들은 "계속 일하게 해달라"며 6일부터 요양원 내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그간 요양보호사들이 열악한 노동 조건을 이유로 기자회견이나 소규모 집회를 한 일은 더러 있었으나, 요양원 내에서 직접 농성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말엔 보호자가 오니 쉬지 말아라"

일산 수(秀)요양원에 노조가 생긴 건 지난 4월. 1년마다 근로계약을 갱신하며 한 달 130만 원가량을 받고 있던 이곳 요양보호사들은 "요양원이 최저임금법을 위반하고 휴식시간 미보장하고 있다"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에 집단 가입했다.

정원자 해고 요양보호사는 "근로계약서엔 '24시간 교대제에 하루 8시간 휴식시간'이 적혀 있었지만, 제대로 쉬게 해준 적은 없었다"며 "월례회의 때엔 '주말엔 보호자들이 오니 쉬지 말고 일하라'는 얘기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노조는 설립 직후 지금까지 요양원 측에 6차례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을 요청했다. 그러나 양측이 공식적으로 교섭을 진행한 것은 단 한 차례다.

▲ 6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일산수요양원은 정문에 '새 개원'을 알리며 관계자 외 인원이 '무단 출입시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공고했다. ⓒ프레시안(최하얀)

한 달여 만에 '제2 노조' 설립되고 폐업 공고

요양원 측이 번번이 '일정상 불가' 등을 내세우며 교섭 연기와 회피를 반복하는 사이, 요양원에는 관리자급 직원들을 중심으로 제2 노조 설립 움직임이 일었다.

요양원 측은 이에 대해 "우리가 만든 노조는 아니"라고 하지만, 해고 요양보호사들은 "당시 원장의 부인과 복지사, 팀장 등이 제2 노조 가입을 종용하고 다녔다"고 맞서고 있다.

제2 노조가 설립된 후 약 일주일 뒤인 5월 23일, 수요양원은 돌연 폐업을 공고했다. 이날은 노조가 요양원을 최저임금 위반 등으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하고 이틀 뒤다.

류한승 돌봄지부 조직부장은 "전화와 공문으로 요양원 방문을 수차례 예고했는데도, 요양원 측은 노조 교섭위원이 건물에 들어서자 갑자기 우리가 범죄자인 듯 경찰에 신고를 했다"며 "출동한 경찰도 신고를 의아해하며 그냥 돌아갔고, 이 직후 요양원 측이 직원 휴게실과 식당 등에 폐업 공고를 부착했다"고 말했다.

새 대표는 고용승계 거부…"노조 탈퇴하고 싹싹 빈 이는 재고용"

이후 요양원은 폐업 날짜를 '7월 5일'이라고 공고하며 "새로운 대표가 공개 채용으로 직원을 모집할 것"이고 "직원 승계는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이렇게 시작된 신규직원 채용을 위한 입사 지원서에도 노조 가입 여부를 적는 자리와 '허위 사실 기재 시 채용 취소'라는 글귀가 있었다.

현재 수요양원의 새 사업주 김 모 씨는 기존 사업주 조 모 씨가 고용하고 있던 요양보호사 40명 중 17명을 재고용하고, 20명을 신규로 채용한 상태다.

노조에 가입한 요양보호사 17명은 폐업 공고 때부터 '승계'를 주장하며 공개 채용에 응하지 않았다.

정원자 씨는 "계속 일하고 싶은 마음에 노조를 탈퇴하고 울고불고 싹싹 빌어 재고용이 된 사람도 있고, 사무실(요양원 관리 사무실)에서 '이 사람은 노조 안 하는 사람이다'고 보증을 서서 계속 일하게 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노조 혐오증이 부른 위장 폐업"

노조는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노조 혐오증이 부른 위장 폐업'이라고 보고 있다.

류 조직부장은 "노조 설립 한 달 만에 교섭에 나온 사측 (당시) 대표가 '내가 돈을 기부할 테니 노조를 없애달라'고 말해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며 "요양원 측의 노조 혐오증"을 비판했다.

그는 "지난 3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 있었던 조정 때에도 사측 새 대표 김 모 씨가 '내가 노조를 없애달라고 했다', '내가 인수해서 경영하는데 왜 이런 간섭을 받아야하나', '못 배우고 빽(배경)도 없는 요양보호사들이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느냐. 그냥 두 달 치 월급 받고 포기하는 게 어떠냐'는 막말을 해 조정위원들까지 놀란 일이 있었다"며 "조정위원들과 근로감독관들의 '고용 승계 의무가 있다'는 지적마저 요양원은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업주가 바뀌었음에도 요양원 측에 '고용 승계' 의무가 있다고 보는 이유는, 사업주 변경 과정이 완전 폐업보다는 '영업 양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업의 목적(요양원 운영)도 바뀌지 않았고, 그 인적, 물적 조직(요양원 건물과 설비, 이름, 입소 환자) 등도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되므로, 요양보호사만 교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단 얘기다.

실제로 이 사건을 검토한 공공노조 법률원 소속 고관홍 공인노무사도 "2002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영업 양도의 경우, 양도인과 근로자 사이의 근로관계는 양수인에게도 포괄적으로 승계된다"며 "(고용승계 거부는)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해고 사유가 없다면 부당 해고에 속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 6일 자로 일자리를 잃은 일산수요양원의 요양보호사들. 이날 해고 요양보호사들은 집에 있던 상복을 챙겨 입고 나왔다. ⓒ프레시안(최하얀)

"어르신들이 걱정…보호자들도 고용 승계 희망해"

노조는 이곳에 부모를 모신 보호자 19명의 '해고 요양보호사들에 대한 고용 승계 희망' 의견서도 요양원 측에 전달했다.

노조가 공개한 의견서를 보면, 보호자들은 "한두 명도 아니고 절반 이상의 요양보호사를 새로 근무하게 하면 돌봄 업무의 질도 떨어지고 사고 위험도 높아진다"며 "지금까지 보살펴주던 요양보호사들이 계속 일해주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해고 요양보호사 김 모 씨도 "말씀을 제대로 못 하시는 치매 어르신들은 오랫동안 보살펴드린 요양보호사들과만 통하는 눈빛, 손짓 발짓으로 필요한 걸 말씀하신다"며 "이렇게 우리는 밖에 나와 있는데, 어떻게들 지내시는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수요양원 "신규채용은 원칙…농성한다고 받아줄 수 없다"

한편, 수요양원의 새 사업주는 '신규채용'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새 사업주 김 씨는 "이미 필요한 요양보호사를 신규채용으로 다 선발한 상황"이라며 "모두가 똑같이 이력서를 새로 쓰고 절차를 거쳐 들어왔는데, 농성을 한다고 무조건 다 받아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전 사업주 측은 '위장폐업이 아니라 경영상 어려움에 따른 폐업'이라고 주장했다.

이 모 전 사무국장은 "매달 1000만 원 가까이 적자가 나는 등 경영상의 어려움이 컸다"며 "근무 제도를 유연하게 해서 적자 폭을 줄이려 해도 노조에 가입한 요양보호사들이 요양원 쪽의 사정을 헤아려주지 않아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말했다.

다만 "경영이 어려워 대표님이 고심하던 중 상급단체가 있는 노조마저 생겨 갈등이 커지니 그렇게 결정(폐업)하신 것"이라며 폐업 이유에 노조 설립 또한 있었음을 일부 인정했다.

해고 요양보호사들은 수요양원 로비에서 무기한 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류 조직부장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지 6년이나 됐지만 기관 운영의 97%를 민간에만 맡겨둔 탓에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이윤추구 논리에 따르는 민간 기관들이 서비스의 공공성은 떨어뜨림과 동시에 이윤 추구 논리에 빠져 인건비는 130만 원대 저임금에 묶어두고 막상 권리 찾기에 나서면 집단해고를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 ['다섯 살' 노인요양보험, 어디로 가나] 앞선 기획 보기

<프레시안>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된 지 만 4년이 되던 재작년,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을 짚어 보는 기획 기사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급격한 고령화에 따라 마련된 이 복지 제도가 정작 일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습니다. 요양복지사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은 그간 이 외에도 수차례 다양한 경로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앞선 기획 기사를 다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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