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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아베 신조 총리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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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아베 신조 총리께 드리는 편지

일본, 미·중 화해의 G3가 되길

총리께서 마침내 일본을 '보통국가'로 정상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간 일본이 보통국가의 역할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일본 정부의 탓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지난날 일본 제국주의 정책으로 억울하게 고통당했던 일본의 이웃 나라들의 국민들이 총리의 결단을 결단코 반기지 않을 것임을 아시면서 총리께서 집단자위권을 각의에서 결정하셨습니다. 1933년 독일의 히틀러가 교묘한 헌법해석 변경으로 바이마르헌법을 무력화시켰던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 결정은 앞으로 일본 안팎에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듯합니다. 지난 20세기 전반, 일본 군국주의로 인해 부당하게 고통받았던 아시아 민족들과 역지사지(易地思之), 역지감지(易地感之) 못하는 총리의 그 결단에 저희들은 새삼 경악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총리께서는 2차대전 후 일본이 미국의 대소련 견제의 최대 보루로 부상되었기에 미국의 지원과 축복 하에 경제 대국이 되었음을 감사하게 여기실 줄 압니다. 허나 그 비대해진 경제력에 값하는 정치 군사력을 행사하지 못한 일본의 초라함과 무력함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보수적 일본 국민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총리께서는 항상 깊이 유념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7월 1일 일본의 다수 국민의 정서가 반대함에도 기어코 집단 자위권을 의결하였습니다.
아베 총리님,
잠시 우리 민족의 아픔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거침없이 제국주의 확장의 길로 치달았습니다. 그 희생자 중에 하나가 우리 민족이었습니다.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강탈당했고, 이어 1910년 한국이 일본에 병탄되었습니다. 그때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화를 적어도 묵인 방조했습니다. 태프트·가쓰라 조약이 그 증거라 하겠습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대동아 공영의 꿈을 안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지요. 이때 우리 민족과 민중의 고통은 격심했습니다. 저의 형님과 아저씨들은 학병으로 징발되거나 징용으로 끌려갔습니다. 누님들은 위안부로 동원되었지요. 저는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패전으로 종전은 되었으나, 우리 민족은 해방과 광복을 누릴 수 없었지요. 통상 전범국이 받게 되는 영토 분할의 징벌이 뜻밖에 이미 36년간 부당한 식민지 통치를 받았던 우리 민족의 머리 위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기 일주일 전쯤 한반도는 미국의 사려 깊지 못한 결정으로 분단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한반도를 미소가 분할 점령했고, 그 후 소련을 계속 봉쇄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을 경제 대국으로 키운 것입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님. 일본의 패전 당시 총리님의 조부뻘 되는 일본 지도자들이 한국을 떠나면서 저주를 퍼부었지요. 일본이 항복한 직후 9대 조선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가 남긴 말을 기억하십니까? "일본이 오늘 패했으나 조선이 이긴 것은 아니다. 일본은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지 교육을 심어 놓았다. 조선이 제대로 일어서려면 백 년이 걸릴 것이다" 이런 식의 언명은 일종의 저주인데 이것이 오늘 우리 상황에서 부분적으로 사실처럼 드러나는 듯하여 저희들을 더욱 참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일본이 심어놓은 식민사관이 적지 않은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마음속에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일(현지시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의 임시 각의(국무회의) 결정문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 후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본격적인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한국전쟁은 일본에게는 신이 내린 축복이 된 셈이지요. 우리 민족에게 이 전쟁은 저주였습니다. 일본은 승승장구하는 사이 한반도는 초토화되었고, 경제적 정치적 후진국으로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겪었습니다. 1964년 일본은 올림픽 잔치를 벌이며 경제 강국의 모습을 세계에 보라는 듯 뽐냈죠. 이 모든 것은 소련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미국이 일본을 후원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미국의 국력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최초의 무승부 전쟁을, 베트남전쟁으로 최초의 패배를 경험했던 미국은 현명치 못한 이슬람권과의 무력충돌로 더욱 국력을 소진시켰지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아베 총리께서는 한편 미국과의 군사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능하면 독자적 군사대국으로 나가고 싶어 했습니다. 이제는 일본이 맥아더 체제에서 벗어나 경제력에 값하는 자주적 군사대국으로 뻗어 나가 총리 임기 중에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일으켜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 뜻이 이제 이뤄지는 듯하지만 다만 그 동기가 미국의 힘의 쇠잔으로 생긴 공간을 중국이 메꾸고 있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에서 온 것 같아 제가 심히 우려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우리와 함께 지난 세기 일본 제국주의 정책에 의해 부당하게 고통당했음을 총리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본은 미국이 그러하듯이 G2로 부상하는 오늘의 중국의 모습이 두려운 것이겠지요. 특히 120년 전 청일전쟁에서 승리했던 그 '영광스러웠던' 사실을 회상하며 더욱 지금의 일본 처지가 딱하게 여겨지겠지요.
여하튼 오늘 동북아시아는 세계 중심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는 세계의 안정과 평화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 역사의 흐름을 깨닫고 아시아 회귀정책을 채택했습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님,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는 미·중 간의 긴장과 마찰 해소 없이는 결코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이 지역 안에는 여러 긴장과 모순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미·중 간의 긴장 이외에 중·일 간의 마찰, 한일 간 분쟁, 한반도 남북 간의 대결 등이 있지요. 이 중 미·중 간 대결이 주요 변수입니다. 미국이 중국을 옛 소련을 봉쇄하듯이 견제하려는 한 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도 결코 보장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아베 총리께 이렇게 편지를 드리는 까닭은 G3로서 일본이 군사대국으로 나아가면서 G1과 손잡고 G2를 봉쇄하려는 움직임에 동조하지 말고, 오히려 G3의 자존심을 갖고 G1과 G2 간의 긴장을 해소하는 평화지향적 지도력을 발휘해 달라고 촉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일본은 지난날 서구 열강의 반열에 든다고 자부하면서 탈아(脫亞)정책을 선호했습니다. 지금 G1인 미국이 아시아로 회귀하려는 이 때 G3인 일본은 이미 아시아국가이므로 스스로 마땅히 아시아로 회귀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겸손하게 돌아와야 합니다. 전쟁을 할 수 있는 주먹을 불끈 쥐고 욱일승천기를 흔들며 돌아올 것이 아니라, 지난날 이웃 민족들에게 끼친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면서 아시아 평화 강국으로 겸손하게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일본은 한반도 냉전체제를 고착시켜온 한반도 주변 3각 냉전동맹을 강화하는 어떤 역할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는 어지럽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우리나라를 방문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7월 4일을 기해 남북 간 군사적 적대행위 중단을 제안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총리께서는 일본 자위대 군사력을 강화시키려 합니다. 게다가 한미일 합참의장 회의가 하와이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낡은 냉전 삼각동맹을 부활시켜 중국을 옥죄고 싶어합니다. 거기에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미국의 불편을 의식하면서도 일본 정부는 북한과 납치자 문제를 베이징에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논의를 통해 북·일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동북아 지역의 평화의 바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베 총리님, 참다운 지도력은 혼란 상황에서 더욱 빛나는 법입니다. 일본이 진정으로 보통국가, 자주국가의 명예를 얻고자 한다면 G3 국가로서 G1과 G2 간의 긴장과 대립을 해소하는 일에 앞장서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워싱턴으로 하여금 베이징을 잠재적 주적으로가 아니라 우호적 전략동반자로 존중하도록 설득시키는 일입니다. 장기적으로 그것은 미국에도 유익한 일일 것입니다.
저는 이 일에 한일 두 정부가 공조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한국이나 일본이 동북아에서 평화와 번영을 조성하고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G1과 G2 간의 대립을 총체적 협력관계로 전환시키는 일에 공조하는 지도력이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공조하게 되면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남북한 간의 관계개선은 말할 것도 없지요. 지금 이 혼란의 상황에서 남북 간, 북·일간, 중·일 간의 제로섬 관계를 상생의 관계로 전환시키는 일에 한일 정부가 공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일본도 보통국가, 자주국가로 발돋움하되 전쟁을 일으키는 군사강국이 아니라 총리의 지도력 아래 평화와 번영을 창출해내는 평화 강국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이번 일본 각의의 결정을 보면서 총리의 얼굴이 자꾸 히틀러와 겹쳐 떠오르고 있어 저부터 이 악몽 같은 환상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부디 건강하시어 G3의 자긍심으로 세계를 평화의 충격으로 놀라게 해주시고 결속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결례를 무릅쓰고

대한민국 전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 한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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