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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거 빼곤 안 남았다'…그때야 결심한 불매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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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거 빼곤 안 남았다'…그때야 결심한 불매 운동

[기고] "콜트콜텍 기타 좋은데 왜 안 쓰냐" 따지던 해고자들

사람들에겐 대개 '샌드페블즈'나 '대학가요제 수상곡'으로 기억될 '나 어떡해'는 나에겐 '콜밴'의 노래다.

'콜밴'은 기타를 칠 줄도 모르면서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의 밴드다. 근골격계 질환, 유기용제 노출에 인한 직업병, 기관지 천식, 만성 기관지염에 시달리며 콜트·콜텍악기를 세계 시장 점유율 30%의 회사로 성장시켜온 그들.

그러나 어느 날 출근해보니 예고도 없이 닫혀있는 공장 문 앞에서 해고자가 되었다. 사장을 한국 120대 부자로 만들어준 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 딱 하나 때문이었다. 공장은 노동조합이 없고, 임금이 더 싼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옮겨갔다.

그들은 단지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구호를 외치며 지난 8년간 거리에서 살았다. 천막 농성, 고공 농성, 삭발, 단식, 1인 시위, 선전전, 집회 등 안 해본 일이 없었고, 때로는 악기 쇼가 열리는 미국으로, 독일로, 일본으로 원정 투쟁도 다녀왔다. 누구보다 가장 먼저 이 노동자들의 노동과 투쟁에 화답한 것은 기타를 치고, 음악을 만드는 음악가들은 물론 시인, 화가, 사진가, 영화인 등 문화 예술인들이었다.

내가 만난 이 노동자들은 참 이상했다. 악질 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일의 기본은 '불매 운동'일 텐데 그들은 몇 년 동안이나 불매 운동을 결심하지 못했다. 심지어 연대하러 오는 음악가들이 다른 회사의 기타를 쓰고 있으면 '콜트콜텍' 기타, 좋은데 왜 안 쓰냐며 따지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하며 통기타를 만들던 대전 공장에 가보고 나서야 나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해하게 되었다. 생각 이상으로 공장의 상태와 노동조건은 열악해 보였는데, 기계가 멈춘 공장으로 문화 예술인들을 초대했던 그들은 기타를 만드는 각 공정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각 공정에서 일하던 조합원들이 거의 경쟁적으로 자기가 일하던 공정이 좋은 기타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 공장에 있는 기계들은, 기계라고 하기엔 참 단순해 보였다. 기타를 만드는 일이란 게 워낙 섬세한 사람의 손이 있어야 하는 일이라서 완전 자동화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들은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곳에서 기계의 부품 중 하나가 되어 일하는 노동자들이 아니었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일해도 그들의 노동엔 소외가 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만든 기타에, 그걸 만드는 장인이자 예술가들인 노동자들이 애착을 갖는 건 당연했다.

ⓒ콜밴

죽는 거 빼곤 안 남았을 때야 결심한 불매 운동

그들은 죽는 것 빼고는 안 해본 투쟁이 없다고 할 만한 시간이 지나서야 불매 운동을 결심했다. 그날 나는 꽤 크고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다른 노동'을 상상할 수 있었다. 끔찍하게 나 자신을 소외시킬뿐더러 단지 돈벌이를 위한 노동을 그만두고, 내가 먹고 입고 쓸 것을 내 몸 놀려 짓고 생산하는 노동을 하고 살겠다며 귀농을 결심하기까지 이 경험은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들의 노동뿐 아니라 이들의 투쟁도 내 보기엔 참 별나다. 이 해고자들은 투쟁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었다. 투쟁 기금 마련을 위해 물건을 떼어다 파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때로는 친환경 수세미를 떠서 팔고, 때로는 천연 비누를 만들어 팔았다.

지금은 조합원 몇 명이 밭을 임대해 정갈하게 농사를 짓고 직접 전통방식으로 된장·고추장을 만들어 팔고 있다. 그뿐 아니다. 이들은 어느 날 '콜밴'이란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올 초엔 '구일만 햄릿'이라는 작품으로 연극에도 도전하더라.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연대하고 있어서, 그리고 투쟁을 알리기 위해, 또 도와줘서 하게 됐을 뿐이라고 당사자들은 말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이들의 노동이 21세기 자본주의 시대의 일반적인 노동과 달랐던 것처럼 이들의 투쟁은 뭔가 다르지 않으냐고.

지난달 12일, 콜텍 해고자들은 마지막 희망이었던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대법원은 이들을 해고하기 전 7년간 당기순이익이 66~117억 원에 달했던 회사의 '미래에 닥칠지도 모르는 경영상의 위기'를 이유로 들며, 자본가의 손을 들어주었다.

낙심하여 절망에 빠져있을 줄 알았던 이 노동자들은 지금 연대하는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프란츠 카프카의 원작을 각색한 '법정에 서다'라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지구와 인류를 위해 유익한 발명품을 둘만 꼽으라면 '기타'와 '자전거'라 했던가? 나는 이들이 다시 기타를 만들었으면 정말 좋겠다. 나는 정말로 이들이 만든 기타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싶다.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하고 끊임없이 필요와 욕망을 생산하는 이 끔찍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들의 노동과 투쟁은 무가치하고 이들의 연주와 공연은 아마추어들의 어설픈 장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이들의 노동과 투쟁에서 내가 살고 싶은 다른 세상을 본다.

지속가능한 세상을 꿈꾼다면 누구라도 지금, 이미 미래를 살고 있는 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해주시라. 아직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이들이 지속가능한 투쟁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해주시라. 다음 카페 '산들바람 (☞바로기)'이나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바로 가기)'에 가시면 이 노동자들과 함께 미래를 향한 우리의 꿈을 후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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