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서울시장 선거를 통틀어 최다 득표 차 당선이다. 2년10개월 전, 백두대간에서 막 내려와 덮수룩한 수염을 깎지도 않은 채 서울시장 도전을 선언했던 박원순(58) 서울시장이 그의 두 번째 시장 임기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시장 도전 자체가 낯설었던, 많은 이들에게 '시민운동가 원순 씨'로 기억됐던 그가 이번 재선 성공으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의 위치까지 뛰어올랐다.
이제는 '정치인'이란 이름표가 어색하지 않게 됐지만, 박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서울'에 전념할 수 있다는 기대와 의욕이 넘쳐흘렀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이 붙인 '일 중독자'라는 별명 그대로다.
박 시장은 2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임기가 "구상하는 단계였다"며 "앞으로의 4년은 이제 성취하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년8개월의 임기는 '예고편'이었다는 자신감이다. 1000만 수도 서울을 "세계 최고의 사회적 경제 도시"로 만들고, 통일 시대에 대비해 평양과의 교류 협력을 시작하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서울을 역사가 살아있는 문화도시로, 마을 곳곳이 학교인 교육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소개했다.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지만, "서울시장은 시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시민의 꿈을 실현하는 자리"라며 시정에 몰두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다만 여야 정치권을 향해선 "패러다임 전환기에 정치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며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목소리를 들으면 다 답이 나온다"고 충고했다.
재선 임기를 시작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2일 서울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프레시안협동조합 박인규 이사장이 진행했다. 다음은 박 시장과의 일문일답.

"서울시장, '시장의 꿈' 아닌 '시민의 꿈' 실현해야"
프레시안 : 역대 서울시장 선거 중 최다 득표 차로 당선됐다. 혹자는 이명박 전 시장의 청계천 사업 같은 상징적인 '한 방'이 없어서 승리를 우려하기도 했는데, 이런 대승 요인을 무엇이라고 진단하나?
박원순 : 과거 서울시장 자리는 시장 자신의 '브랜드'로 평가받고 대권으로 가는 사다리 단계로 여겨졌다. 시민들의 생각이 이젠 달라졌다. 저는 과거부터 "한 일이 없는 시장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해왔는데, 시장의 자리가 시민들의 꿈을 실현하는 자리지 시장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장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과도한 전시행정은 하지 않겠다고 꾸준히 이야기해 왔다. 오히려 서울을 원칙과 기본이, 합리와 균형이 작동하는 반듯한 도시로 만들고 싶다.
지난 2년 8개월 동안 앞선 시장들이 만들어 놓은 20조 원 가량의 채무 덩어리를 3조8000억 원 정도 줄였고, 올해 연말이면 7조 원 정도의 축소도 가능하다. 헝클어진 지하철 9호선 문제만 정리해도 큰 돈을 아낄 수 있었다.
이밖에도 지난 임기 동안 수많은 변화를 만들어 냈다. 하나 예를 들면, 한양도성이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예정이다.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자원으로 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마음만 바꾼다면 이렇게 돈을 들이지 않고도 바꿀 수 있는 것이 도처에 있다. 서울시민들이 이런 것들을 체감했던 것 같다.
이제 과거처럼 외형상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하나 했다고 박수 받는 시대가 아니다. 시민들이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도시, 원칙이 바로 선 도시가 박수 받는다. 새로운 시대의 비전과 전망을 시민들이 이해하고 계신다. 어떻게 보면 우리 시대의 큰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에 대한 신뢰, 이게 정치인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이다.
프레시안 : 지난 임기 동안 시민이 시정의 주체로 참여하는 새로운 협치 모델을 만든 것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 다만 교육이나 복지, 주거 문제는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평도 있다. 1기엔 미흡했지만 이번 임기엔 반드시 이뤄야 할 중점 과제가 있나?
박원순 : 안전과 복지, 창조경제 세 가지를 (2기 시정의) 화두로 제시했고, 이를 달성하는 방법이 바로 혁신과 협치라고 생각한다. 지난 1기 시정에서 크게는 '2030 서울플랜'부터 작게는 '연극종합발전계획'까지 100여 개 정도의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다만 지난 2년 8개월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 구상하는 단계였고, 앞으로의 4년은 성취하는 시간이라고 본다.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 교육감이 다수 당선됐고, 서울에서도 조희연 교육감이 승리했다. 과거에 비해 교육청과의 협력이 수월할 것으로 보이는데, 교육 문제와 관련한 구상이 있다면?
박원순 : 기본적으로 교육이나 일반 행정은 당파적 입장에 따라 달라질 사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지난 임기에선 문용린 교육감과의 협조가 그리 잘 되진 않았다. 조희연 교육감은 저와 삶의 경험을 많이 공유한 분이고, 대체로 생각과 철학도 비슷하기 때문에 전면적인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향후 4년은 교육에 관한 한 교육청과 서울시의 궁합이 잘 맞는 시대가 될 것이다.
학생들이 교실에 있을 때는 학생 신분으로 교육감의 관할이지만, 학교 밖을 나서면 청소년이란 이름으로 서울시장 관할이 된다. 학교 밖에 나왔을 때, 이른바 방과 후에 아이들의 지도나 교육에 관해 함께 논의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제가 <마을이 학교다>라는 책도 썼는데, 그런 이념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본다. 말하자면 학교가 섬처럼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공간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 문을 열고 함께 가는 교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육감도 여기에 대해 전폭적으로 동의했고, 교육청 인수위원회와도 조율이 있었다. 이런 부분에 있어 큰 변화를 만들겠다.
"서울, 평양과 교류 확대…통일 시대 준비할 것"
프레시안 :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평양을 '파트너 도시'로 삼아 교류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남북교류와 관련해선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나?

그 준비의 시작은 일단 평양에 대한 연구다. 도시계획의 차원에서, 교통과 산업의 차원에서, 삶의 질의 차원에서 미리부터 연구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남북교류가 본격화되었을 때 결국 서울시의 파트너는 평양 아니겠나.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 지금부터 연구하고 있다. 공동의 역사 연구라든지, 오케스트라 협연 등 문화 교류가 지금부터 가능하다.
예컨대 서울과 평양 모두 역사도시다. 서울시가 한양도성과 관련해 이미 연구소와 박물관을 만들고,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도 이뤘으니, 평양성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 우리의 경험으로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평양은 전형적인 사회주의 계획도시다.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 될 수 있다. 박제화 된 박물관이 아니라, 지역 자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박물관'이 되는 것이다. 제가 만약 100년 전에 시장이 됐다면, 조선시대 수도 서울을 살려 '역사가 살아있는 도시'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평양 역시 어떻게 문화재를 살리면서 도시의 발전을 도모할지, 우리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지금부터 준비해나갈 수 있다. 통일이 된 뒤 아무런 계획이 없다면 무조건 뜯어고치는 식의 서울의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지난 임기 당시 이른바 '뉴타운 출구전략'을 세웠는데, 향후 뉴타운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갈 예정인가?
박원순 : 워낙 갈등과 분란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일종의 출구 전략이 있었다. 그걸 통해서 현재까지 156개 구역을 해제했고, 나머지는 지금도 추진이 되고 있거나, 아니면 경기 침체에 따라 중단돼 있는 상태다.
이번 임기를 시작하면서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추가로 해제할 곳은 해제하고, 추진할 곳은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추진을 독려하도록 지시했다. 또 뉴타운이 해제된 낙후된 지역은 강력한 도시재생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민간에서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 가되, 서울시가 공공시설 등 인프라를 만들어 가는 식으로 해서 도시 재생이 본격화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
이미 서울시는 22개 구역에서 주거환경관리사업을 하고 있고, 일부는 이미 완성된 상태다. 이것을 좀 더 본격화 할 계획이고, 특히 한양도성 주변의 22개 마을 등에 투자해 새로운 도시모델로 만들고자 한다.
"서울, 세계 최고의 사회적경제 도시로 만들 것"
프레시안 : '사회적 경제 특구'를 지정하기로 했는데, 구체적인 사회적 경제 진흥책엔 어떤 것이 있나?
박원순 : 사회적 경제 진흥은 서울시가 상당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향후에는 서울을 세계 최고의 사회적 경제 도시로 만들 생각이다. 지난해에 GSEF(Global Social Economy Forum), 즉 국제사회적경제포럼을 주최해 '서울선언'을 발표했다. 서울에 본부를 두는 국제 기구를 만든 것이다. 올해 2차년도 회의가 다시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협동조합이 서울시에만 지난해 1000개가 설립됐다. 서울시의 사회적 경제는 외국보다 늦었지만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서울이란 도시, 대한민국이란 국가에 워낙 산적한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적 경제는 그 시대와 사회의 도전 과제들을 해결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워낙 그런 부분에 대한 수요와 요구가 크고, 열정을 가진 많은 이들이 있기 때문에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서울시는 그런 인프라를 만들 것이다.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마을공동체지원센터 등을 만들었고, 서울시가 직접 지원하는 게 아니라 그 일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끔 중간 지원을 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를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정치, 패러다임 전환기에 갈피 못 잡고 있어"
프레시안 : 1000만 시민을 책임지는 서울시지만 중앙정부로부터 인사권이나 예산 자율권 등이 상당히 제약돼 있는데, 향후 중앙정부와의 관계는 어떻게 풀 생각인가?
박원순 : 저희는 을(乙)의 입장이니 갑(甲)에게 호소하고 요청하는 방법 밖에 없다. 지난 회기에 국회에 지방재정특별위원회가 만들어져 많은 제안을 했는데, 중앙정부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사실 지방분권 강화는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중앙정부가 시민들의 삶을 다 챙길 수는 없지 않나. 지방정부에 좀 더 자율적 권한을 줘야 시민들이 피부로 와 닿는 행정이 가능하고, 그게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길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지방정부가 따로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중앙정부가 큰 정책을 결정하고, 광역과 기초단체가 실행하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세출 비중은 4대6이지만 수입원인 국세와 지방세 비중은 8대2다. 일을 하고 있는 만큼의 예산 자율권과 조직적 권한을 줘야 한다. 이것이 보장이 되어야 진정한 지방자치가 된다. 이런 문제는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안이다. 국회가 좀 더 힘써줬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정당' 보다 '사람'을 보고 투표했다는 평이 나온다. 시민들이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감도 크지만,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서도 야당 역할을 잘 못하고 있다는 평도 많은데, 새정치연합 소속 단체장으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박원순 : 서울시를 정말 반듯한 도시, 세계적으로도 모범이 되는 도시를 만드는 게 저의 사명과 역할이다. 그것이 당에도 기여하고 대한민국 정치와 행정에도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정치를 오래한 사람도 아니고 논평할 입장도 아니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정치란 시민들의 삶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보다는 나아지긴 했지만, 선거 때 재래시장 가는 이벤트로 시민들과 가까워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지금은 말 그대로 창조의 시대가 아닌가.
그런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정치가)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정치의 문제는 우리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문제를 해결하는 강한 추진력, 시민들과의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고 본다. 저는 현장 시장실을 상당히 선호하는데, 결국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목소리를 들으면 다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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