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국방위원회가 6월 30일,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틀어쥐고 북남관계개선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으로 우리 정부에게 "특별제안"을 해왔다. 북한은 7.4공동성명이 채택된 42돌을 계기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과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을 틀어쥐고 북남관계개선의 새로운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갈 단호한 결심"으로 그렇게 특별제안을 한다고 했다.
특히, 지난 2월 남북고위급접촉에서 합의한 대로 "7월 4일 0시부터 상대방에 대한 온갖 비방과 중상, 그와 관련된 모든 심리모략 행위를 전면 중지하는 정책적 결단"을 내리자고 호소하고, 또 "조선 서해 열점수역을 포함한 모든 대치계선에서 하루도 쉴 새 없이 벌어지는 모든 군사적 적대행위도 7월 4일 0시부터 전면 중지"하자고 했다.
그런데 북한의 제안에는 위와 같은 요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통일대박론, 드레스덴 제안의 전면철회, 한미공조체제의 전면철폐, 북핵 문제와 북한의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에 대한 비판의 중지 등을 요구하고, 또 만일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을 시행하면,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했다.
박근혜정부는 바로 다음 날인 7월 1일 통일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의 제안이 '진정성'이 없다는 이유를 이를 공식 거부했다. 즉 북한의 제안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 고조와 남북관계 경색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하는 얼토당토않은 주장과 진실성이 결여된 제안"이며, "북한이 한반도의 평화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비방중상과 도발 위협을 중단함은 물론, 한반도 평화에 대한 근본 위협인 핵 문제 해결에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하며,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우리의 제안에 적극 호응하고, 남북 간 대화와 협력의 장에 성의 있는 자세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7.4남북공동성명 42주년을 앞두고 북한은 남한에 대한 '대화와 평화의 공세'를 취해 일시적으로나마 세간의 관심을 끌었고, 남한은 또 한 번 북한의 '진정성'을 문제 삼으면서 소위 '북한이 먼저 손들고 나오기 전에는 우리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는 '완고'함과 '터프'함을 과시했다. 상호 간에 '명분 쌓기'용 행동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박근혜정부의 말마따나 북한이 먼저 핵도 포기하고 우리가 원하는 '진정성'을 먼저 보여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상대방이 있는 관계'에서는 어느 한 쪽이 항복하고 손들고 나오는 식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고, 또 전쟁 중이 아닌 이상 상대방에게 그렇게 요구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박근혜 정부도 현실적으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북한이 그렇게 못하듯이, 우리도 북한과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에 대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남북관계나 국제관계처럼 '상대방이 있는 관계'에서 '진정성'은 결국 진지한 협상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 내고 또 그 합의를 성실히 이행함으로써 만들어내고 키워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남북관계가 줄곧 악화되어 천안함 침몰사건과 5.24조치, 연평도 포격사건과 원점 타격 대응 천명, 2013년 3~4월 한미합동군사훈련 시 '실질적이고 명백한' 전쟁위험을 겪었는데도, 이 위험한 남북관계를 뭔가 보다 덜 위험하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생각과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박근혜 정부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작년 2013년 3~4월 한미합동군사훈련 기간에는 미국이 'Playbook' 작전에 따라 B-52 전략폭격기, B-2 스텔스 폭격기, 샤이엔 공격형 핵잠수함 등을 '공개적'으로 동원하여 북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 위협'을 통해 힘을 과시하고, 북한은 이에 대응하여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북한의 '전략적 노선'으로 선포하고, 또 이동용 차량에 탑재한 무수단 중거리 미사일을 사용하여 괌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국 기지들에 대해 '핵 공격'을 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로써 한반도에서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핵무기 사용 위협'이 공개적으로 문제가 되는 전쟁위기 상황이 빚어졌다. 그것이 바로 작년 봄의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언제까지 우리가 남북관계와 한반도 상황을 화해와 긴장완화, 평화의 방향으로 주도해내지 못하고 항상 '북한 위협과 도발에 대응하는 식'으로만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볼수록 답답한 일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북한 국방위가 이번 '특별 제안'을 한 배경에 대해서 7월 3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북한이 "우리와의 관계를 마치 전향적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인상을 주려는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런데 우리가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도 중국에게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중국으로 하여금 보다 더 우리정부의 대북정책을 적극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로 만든다면 그것이 무슨 큰 잘못인가.
더구나 어제인 7월 1일 일본 각의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결정하여, 한반도에서 전쟁과 같은 유사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이 동맹국인 미국의 요청 등으로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북한이 대화를 제의하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남북관계를 개선시켜야 한반도에서 무력충돌과 전쟁을 방지할 수 있고, 그렇게 되어야 일본이 ‘집단적 지위권’을 구실로 한반도에 파병하는 일도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주지하다시피,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은 박정희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1969년 닉슨독트린, 미국이 베트남을 포기하는 '베트남 전쟁의 베트남화', 대규모 주한미군 감축, 상하이코뮈니케, 중국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 획득 등 미·중 데탕트와 국제정치의 급변, 1968~69년 김신조부대의 청화대 습격, 프에블로호 남치 등 북한의 대형 도발사건 등 남북관계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낮추고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 북한과 대화를 한 결과로 생겨났다.
박정희 대통령은 최소한 북한과 대화하는 동안에는 전쟁위험은 줄어들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5천 년간 우리 인류가 동서고금을 통해 쌓은 지혜 덕분에 국내 정치에서는 분열이 아닌 통합, 대외정치에서는 전쟁이 아닌 평화라는 정답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의 상황에서 나름대로 정답을 찾아 북한과 대화한 것이었다.
우리가 온고지신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아는' 노력을 못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정치와 외교가 압도적으로 현재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만, 그것도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떤 제안과 조치를 취해 상황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취한 정책과 행위에 대응하는 식으로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만 해 나간다면, 그것이 무슨 정치이고 외교인가. 냉전 시대도 끝나고 탈냉전 과도기도 끝나고 이미 미·중 양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질서가 짜이고 있는 이 때, 7.4공동성명에 대한 진정한 온고지신을 통해 우리정부도 국민들도 모두 민족화해, 평화정착,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데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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