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가 시작되었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는 무난히 채택되었지만, 오는 7일부터 진행될 7명의 장관과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다른 어느 때보다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될 듯하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여당과 야당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존재한다. 인사청문회의 주체는 국회이지만 대통령이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자신이 지명한 후보자들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박 대통령이 꺼내 든 카드가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론이라는 점이다.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장에 앉아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사퇴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 되었던 것일까. 박 대통령은 30일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총리 후보자가 연이어 도중에 사퇴하면서 국정 공백과 국론 분열이 심화되고, 혼란이 지속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어서 고심 끝에 지난주에 정홍원 총리의 유임을 결정했습니다. 청문회에 가기도 전에 개인적인 비판과 가족들 문제가 거론되는 데는 어느 누구도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고, 높아진 검증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습니다."
총리 후보자의 적격성 여부를 두고 형성된 여론의 추이를 '국론 분열의 심화'라는 상투적 수사로 환원하는 박 대통령의 어법에 대해서는 굳이 토를 달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다만, 월드컵 경기 다 즐기면서도 장관,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적격, 부적격 여부는 너끈하게 가려낼 줄 아는 우리 국민의 눈높이를 감안할 때, 박 대통령이 염려하는 '국론 분열'은 '과도한' 걱정임이 분명하다.
나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나온 박 대통령의 인사청문회 관련 발언이야말로 맥이 빠질 뻔했던 이번 인사청문회를 흥미진진하게 관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내가 꼽아본 이번 인사청문회의 관전 포인트다.
첫째, 대한민국 인사청문회 14년이 갖는 역사성을 이번 청문회를 통해 지켜볼 일이다. 2000년 6월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국무총리, 장관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 후보자들이 이러 저러한 사유로 낙마했다. 낙마 사유의 단골 메뉴로는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다운계약서 작성, 탈세, 병역 문제, 논문 표절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씁쓸한 기억이지만 그동안 우리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다수는 노블레스(noblesse)의 옷은 입었으되, 오블리주(oblige)로 무장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난 14년 동안의 인사청문회가 우리에게 증명해준 사실은 '이유 없이 낙마한 사람 없다'는 사실이다. 자, 그렇다면 이번 인사청문회장에 앉게 될 후보자들은 어떠한가. 지난 인사청문회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부적격 낙마 기준의 마지노선을 이미 넘어선 사람은 없는가. 이번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며, 각 후보자별로 평점을 매겨보면 어떨까. 월드컵 경기에서는 포지션별로 최고점에서 최저점까지 평점이 주어지지 않는가. 종전 인사청문회에서 동일한 사유로 문제가 되었던 후보자들과 비교해서 평점을 매겨보자. 최소한 기존에 낙마했던 후보자들보다 낮은 평점을 받는 후보자가 있다면 '교체'함이 마땅하다.
둘째, 이번 인사청문회 후보자들 중에는 앞으로 그 공직을 잘 수행할만한 적임자인가에 대한 '전망적' 평가에 앞서, 그 후보자의 과거 행적에 대한 '회고적' 평가가 선행되어야 하는 사례가 존재한다. 오는 7일 청문회가 예정되어 있는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대표적 인물이다. 이병기 후보자는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정치특보로 일하면서, 이인제 의원을 매수하기 위해 불법정치자금 5억 원을 직접 전달하여,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안기부 2차장으로 근무하던 1997년 대선 당시 '북풍 공작'에 연루됐다는 주장도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밝혀져야 할 주요 쟁점이다.
이병기 후보자 청문회의 하이라이트는 국정원 '셀프 개혁'을 주문하면서도 정치공작 전력이 있는 사람을 국정원장으로 지명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국정원 개혁'이라는 시대의 대세를 거스르고 스스로 권위 실추를 자초하게 될 이병기 후보자의 임명 강행을 관철할 것인가? 아니면 후보자 교체 카드를 뽑아들 것인가? 오로지 자신에 대한 '충성심'만을 보고 이 후보자를 지명한 것이라면, 박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임명을 강행할 것이다. 수비 위주 경기를 하다가 전반전에서 한 골 먹은 감독이 후반전에도 선수 교체 없이 계속 수비만 고집할 것인가, 아니면 조커를 교체 투입하여 분위기 반전을 노릴 것인가. 감독의 고민은 이해되지만, 선수 교체의 시기와 경기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셋째, 박 대통령은 "국정 시행 능력이나 종합적인 자질보다는 신상 털기, 여론 재판식" 청문회가 문제이니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의 개선 방향을 모색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을 위해 머리를 맞대어야 할 사람은 여야 국회의원이 아니라, 대통령과 청와대 인사 기능을 담당하는 비서관들이다.
미국의 인사청문회 운영 실태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미국에서는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과거 행적을 지닌 인사들이 대통령의 인선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는 인사가 상원 인사청문회장에 앉아 있을 가능성이 극히 낮기 때문(<견제와 균형인사청문회의 현재와 미래를 말하다>)"에 인사청문회에서 굳이 후보자 개인의 신상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이 불필요하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추천한 후보자는 개인정보진술서(Pesonal Data Statement)를 작성해서 백악관에 제출하게 되는데, 후보자는 이 개인정보진술서 작성을 위해서 253개에서 800개까지의 세부적인 항목에 걸친 질문에 답해야 한다. 질문 항목에는 가족 문제, 친인척 문제, 이성 문제, 본인의 과거 행적, 그리고 해당 직책에 임명될 경우 여론의 비판을 받거나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사실까지 구체적으로 적도록 돼 있으며, 마지막 질문은 "내가 왜 이 공직을 꼭 맡아야 하는가"라고 한다. 백악관의 후보자에 대한 검증과정은 통상 2~3개월이 걸릴 정도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위 책)
이번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 드러나게 될 일이지만, 청와대는 과연 이번 장관 후보자와 국정원장 후보자를 지명함에 있어 후보자 개인에 대해 몇 가지 항목의 질문을 통해 개인 신상에 관한 조사를 하였는지, 후보자에 대한 검증과정에는 얼마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지를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불만이나 제도 개선의 요구는 그와 같은 자문 뒤에 하더라도 늦지 않다. 청와대가 하지 못한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은 국회와 여론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튼 소리나 후보자에 대한 일방적 두둔과 찬사로 청문의 시간을 까먹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다음 총선 때 레드카드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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