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오후 '공공기관 감사, 공직기강 재정립을 위한 간담회'에 직접 참석해 '이과수 세미나'에 참석한 감사들을 강하게 질책했다.
이 모임은 지난 주말 노 대통령의 지시로 긴급히 소집된 것으로, 청와대가 느끼는 사태의 심각성을 방증했다.
노 대통령 "내 참석을 알라지 말라"?
최근 공공기관 감사혁신포럼 소속 감사 21명이 남미로 연수를 떠나며 '외유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과 관련, 공공기관 감사들의 공직기강을 확립하기 위한 취지로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열린 이 간담회에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감사 109명과 주요부처 장관,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 청와대 수석·보좌관급 이상이 총출동했다.
그런데 이날 참석한 공기업, 공공기관 감사들은 단지 기획예산처 주관 모임으로 알고 참석했지만 이 행사는 노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준비된 것이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지난 금요일쯤 기획예산처에 지시해서 감사들 소집하라고 주문한 것"이라며 "감사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대통령이 편하게 솔직담백하게 할 말씀을 하기 위해 보안을 유지했던 사안"이라고 행사가 끝난 후에야 밝혔다.
게다가 노 대통령의 참석 사실조차 행사 시작 한 시간 전에야 공개됐다.
천 대변인은 "대통령께서 먼저 국민들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을 표명하고 감사들의 부적절한 행태에 대해 엄중하게 질책했다"고 전했다.
천 대변인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세상이 변하고 있고 국민들의 요구수준도 날로 달라지고 있다"며 "이번 일에 대해 국민과 언론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라"고 참석자들을 질타했다.
기예처, '이과수 감사단'에 경고·경비 환수
한편 기획예산처는 이날 오후 2시 감사혁신포럼 소속 감사들의 남미 연수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와 조치 내용을 발표했다.
기획처는 이들 '이과수 세미나'에 참석한 감사 21명 전원에 대해 '경고' 조치를 내리고, 기관 예산에서 지원된 경비를 전액 환수토록 했다. 이번 조치는 성과급 지급, 연임 여부 결정 때도 반영된다.
기획처의 조사 결과 공공기관 감사 8~10명은 지난 2월 감사협회 등을 통해 남미지역으로 해외연수를 추진하기로 하고 감사협회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감사협회 측에서 협조가 어렵다고 하자, 감사혁신포럼에 추진을 요청한 것. 이를 감사혁신포럼 의장인 곽진업 한국전력공사 감사가 수용하면서 '이과수 연수'가 실제로 추진됐다. 해외연수의 경우 감사포럼의 회칙에 따라 운영위원회 제안을 통해 전체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또한 이번 조사 결과, 이들은 남미 연수 경비로 1인당 최고 1240만 원을 기관 예산에서 지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황당 사건 연속…'제가 바로 무능한 낙하산입니다' 단체 구매
한편 노 대통령의 고강도 경고와 기획예산처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공기업 감사가 관련된 '황당 사건'이 이날도 새로이 드러났다.
공공기관감사혁신포럼의 의장이 강동원 농수산물유통공사 상임감사의 저서를 단체구매토록 79개 공공기관에 공문을 보낸 사실이 드러난 것.
김기현 한나라당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강 감사가 포럼 간사기관인 한전에 직접 공문을 시달토록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공문을 받은 기관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저서를) 대량 구매했다"고 주장했다.
당초 이과수 세미나에 참가 신청했다가 불참한 강 감사는 지난 2월 <제가 바로 무능한 낙하산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고 지난 19일에는 한 신문에 의해 '모범 감사'로 소개된 인물이다.
김 의원은 이날 "강 감사가 포럼 간사기관인 한전 담당 팀장에게 지난 달 24일 79개 기관에 저자의 개인계좌와 휴대전화 번호까지 명기해 공문을 보내주도록 협조요청 메일을 보냈다"며 이메일 사본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현재 확인된 것만 한전은 60권을 60만 원(권당 1만 원)에 회사공금으로 구입했고, 석유공사는 30권, KOTRA 10권씩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앞으로 확인결과 대량 구매 기관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북 도의원,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조직특보 등을 거쳐 2004년 12월부터 농수산물유통공사 감사로 재직 중인 강 감사의 이 책에는 공공기관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와 부조리, 잘못된 관행 등이 빼곡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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