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 작성 경위 검증 보고서 발표를 두고 정부는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불러들여 일본 정부의 보고서는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신뢰성과 평판에 악영향을 미칠 뿐이라고 공식 항의했다.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은 23일 오후 2시 벳쇼 대사를 불러들인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은 온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역사적 진실"이라면서 "아베 정부가 고노담화를 흠집 내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아베 정부의 신뢰성과 국제적 평판만 상처 입게 될 것이란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차관은 고노 담화는 일본 정부의 문건이며, 따라서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이를 검증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된 행위라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담화 작성 당시 한일 간 외교 채널로 오간 내용을 아베 정부가 자의적으로 편집하여 보고서에 넣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즉 아베 정부가 고노 담화의 신뢰성을 훼손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조 차관은 보고서 작성과 관련 △한일 양국 간 사전 조율 문제 △위안부 피해자 증언 문제 △아시아 여성기금 문제 등에 대해 벳쇼 대사에게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 정부 간 사전 조율 문제에 대해 정부는 1993년 당시 일본 정부가 사전 협의 요청을 했을 때 고노 담화는 일본 정부 조사 결과와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는 점을 수차례 일본 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협의를 요청했고, 특히 고노 담화 발표 6일 전, 한국 정부에 초안을 전달한 뒤 한국과 전혀 협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의견을 내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당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가 담화 작성 당시 한일 간 협의를 먼저 원했음에도, 이번 보고서에는 한일 정부 간 면밀한 문안 조정이 있었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결국 아베 정부가 고노 담화를 정치적 협상물로 평가해 담화의 가치를 손상시키려는 시도라는 것이 정부의 평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증언과 관련해 담화 작성 당시 일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 증언에 기초해 담화를 발표하겠다고 했고, 한국 정부가 증언 청취에 협조해준 것에 대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에는 사전에 고노 담화 문안을 내놓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은 성의 차원에서 실시한 요식행위였다고 서술돼 있다. 이는 증언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행위이자 당시 증언에 나섰던 16명의 피해자들에게 모욕과 상처를 주는 조치며 고노 담화의 신뢰성을 훼손시키겠다는 아베 정부의 의도가 드러난 것이라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또 보고서는 고노 담화 작성 경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을 자세히 서술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일본 측의 성의를 과장하고 한국 정부와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보고서는 위 기금 사업이 실패한 원인을 한국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한국 정부의 잇따른 말 바꾸기로 사업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기금 사업을 진행할 당시 피해자들의 입장을 일관되게 일본 측에 전달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당시 피해자들은 처음부터 명예 회복을 위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런 입장을 수차례 일본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한 고려 없이 사업을 밀어붙였고 결국 기금 사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정부는 일본의 이같은 ‘고노 담화 흔들기’에 맞서 일본군 위안부 실태 백서 발간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 협의를 위한 한일 국장급 협의의 개최 시기와 관련해서는 우선 이번 보고서 대응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국장급 협의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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