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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감들을 가로막는 '좌파'의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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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감들을 가로막는 '좌파'의 위협

[민교협의 정치시평] '국공립통합네트워크'에 대한 단견들

소위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자마자 우리 사회의 특권적 사회 기득권 세력들은 보수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이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형성된 우리 사회 내 전교조에 대한 적대적 여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당선 하루 만에 전교조와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보도가 나왔고, 여당에서는 교육감 선거 폐지를 공론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소위 '서울대 폐지론'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앞세워 진보교육감들이 국공립대학통합네트워크를 주도했거나 지지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공격에 나섰다. 특권적인 사회기득권 세력들로부터의 공격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은 것이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국립대학을 시작으로 주요 사립대학까지 평준화시킴으로써 입시과열을 방지하고 학벌체제로 인한 사회적 모순을 해소하고자 하는 방안이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이다. 이 안에 따르면, 서울대는 학부학생을 모집하지 않고,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전환되며, 전국의 모든 국립대학을 단일한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체제로 통합하는 것이다. 또한 전문대학(의대, 법대, 약대, 경영대 등)은 대학원과정으로 편성하고 이들 국립대학들에만 설치하도록 한다. 그리고 주요 사립대의 경우 통합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전문대학 설립인가를 취소함으로써 점차 통합네트워크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이 과정 속에서 주요 사립대학들에 의한 또 다른 특권적 위계질서가 형성되지 않도록 통합네트워크 참여 국립대학의 등록금을 대폭 내리는 등의 방식으로 학생들의 진학을 유도하는 등 사립대학이 압도적인 현실 속에서 보완해야 할 다양한 방침들도 고안되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국공립통합네트워크 안에 대해서는 진보 진영 내에서도 많은 논의가 오가고 있으며, 대학사회의 상황 변화로 인해 수정 보완해야 할 점들도 많다. 물론 실현이 되더라도 그 효과에 대해서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보수언론들이 여론화하기 전까지는 그 열기가 상당히 식어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안에 대해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이들을 제외하면, 적어도 진보진영 내에서는 오른쪽으로부터의 공격만큼 격렬하게 반박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한 학술대회장에서 현재는 영향력이 거의 사라진 한 그룹에서의 공동 연구결과물이라는 것을 거의 그대로 옮겼음을 밝힌 한 논자가 공개적으로 국공립네트워크 안에 대한 비판을 한 일이 있었다. 국공립통합네트워크운동과 아무런 관련도 없으나 이러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 안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우 자주 오히려 왼쪽으로부터의 부당한 사변적 공격이 어떤 면에서는 더욱 해악적이라고 판단하는 바 그 비판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발표는 개인이 했지만, 그 내용은 자신의 독자적 주장이 아니라, 그 그룹의 집단적 학습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저자 자신의 주장에 따라 이러한 주장의 주체를 이하 '이들'로 표기하기로 한다). 
  
이들은 국립대학 통합네트워크로 상위권 대학들이 평준화되어도 이들 역시 대기업/공기업 취직을 위한 경쟁에 노출됨으로써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되고,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무원 등의 안정적인 직장에 진입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간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면서 노동시장 내부의 단절과 특정 수준 이상의 대학출신자들에게만 안정된 일자리가 제공되는 상황에서라면 학력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은 지속될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국립대통합교육 네트워크는 오로지 평준화의 이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대학이 실질적으로 담당해야할 전문교육의 심화는 방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는 현재 대학들은 실제 경제성장에 필요한 과학적, 기술적 지식을 제대로 학습시키지 못하고 있는 소위 '과소교육'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구와 기술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대학이 장기적으로 교양수준의 교육만을 담당하는 반면 제대로 된 과학, 기술 지식인을 양성하지 못한다면 국가경제의 성장 동력은 점차 약화된다면서 과학, 기술 및 전문적인 생산자 서비스의 생산을 위해서는 보다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평준화 자체가 아니라 대학 자체가 지식노동자를 생산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볼 때, 반값등록금 정책은 정부의 재정지출을 확대시킬 뿐만 아니라 현재의 과잉학력을 더 부추긴다는 점에서 정책적 대안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다면서 그것은 그저 인민주의적(대중영합적) 구호일 뿐이라고 폄하한다. 
  
이들은 또한 국립대통합네트워크는 대학위기에 따른 두뇌유출을 사고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국내대학 학위의 가치가 소멸하게 되면서 더 높은 학력이 필요했으며, 이를 보증하기 위한 미국 유학은 한편으로는 두뇌유출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대학의 아메리카화를 유발했다는 저자는 국립대학통합네트워크는 국내대학을 평준화시킴으로써 과소교육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국내학위의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외국 유학의 매력을 더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할이 자본이 노동과정을 통제하는 문제라고 하면서 '국공립대학통합네트워크론은 대중대학의 발전과 함께 구체화된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구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노동자들이 육체노동자이자 정신노동자가 될 수 있도록 좌파들이 개입하여 노동자들의 자주적 통제능력과 정치적 주체로서의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들은 대학위기에 대한 가장 중요한 대안으로 노동간 임금격차를 해소를 주장하며, 학력 간 임금격차를 해소함으로써 과잉학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 상승은 중등교육을 마친 학생들로 하여금 어떤 분야에 취직해도 일정한 수준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줌으로써 고등교육에 대한 욕망을 줄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신랄한 반박을 할 수 있지만, 지면의 한계 상 그리고 글의 성격상 자세히 논박할 수는 없기에 기본적인 것만 지적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육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 분야에서 혁명에 가까운 대변혁이 일어나야만 가능하거나 혹은 사실상 불가능한 원칙론적인 이야기를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대학 국공립화로 해결하지 못 할 것이라면서 그 단계적인 취지조차 왜곡하고 부정하고 있는 이들의 주장은 매우 추상적일 뿐 아니라 매우 사변적인 주장이다. 그 어느 누구도 대학을 국공립화한다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금격차 등의 최소화나 임금 외 다양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 나가는 다양한 개혁들, 그리고 소득 지출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는 각종 복지 제도들의 도입과 같은 대학교육 외적인 영역에서의 개혁들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이러한 영역들은 대학교육개혁 외적인 영역에서의 개혁이다.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은 물론 교육의 모든 영역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특정 몇 학교 학벌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한 계급 지배와 계급 재생산, 그리고 그들만의 특권 구조를 타파하자는 것이 국공립네트워크 안의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들의 안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이와 동시에 보편적 복지 사회로의 대대적 변혁이 동반되어야 하고, 반드시 사립대학까지 국공립화해야 해야 하는 전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중요한 것은 현재 모든 대학을 국공립화할 수 없는 한계 속에서 거의 모든 대학들이 국공립인 서구 국가들을 모델로 한 단계적, 그리고 한국적 특수성을 반영한 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들을 국공립화하여 서울에 있는 특정 대학들로의 집중 현상을 완화시키는데 일정정도 성공함으로써 학벌 중심의 특권 계급 지배 질서를 흩뜨릴 수 있다면, 굳이 특정 소수 대학 졸업장에 대한 특권 의식도 약해져 소수 특정 대학을 가기 위한 경쟁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안이 현실화될 경우, 지금처럼 그 소수 대학에 못 간 학생들의 박탈감도 완화될 수 있으며, 굳이 특정 지역의 특정 소수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내 고향 주변의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대학이 주는 특권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서서히 약화될 경우 굳이 대학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럴 경우 당연히 지금과 같이 70-80%에 이르는 대학 진학률도 크게 떨어질 것이며, 따라서 과잉학력 문제나 과소교육 문제도 해결 될 수 있다. 즉 무슨 노동 분할이 없어지고 하는 그런 가능하지도 않은 상상이 이루어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상당한 사회의 변화를 가져 온다는 것은 유럽 각 국가들의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진학률이 80%에 이르는 지금 현 상태에서 어떠한 변동도 없이 그대로 등록금만 완화된다는 조건 하에서 국공립무상화를 추진한다고 생각하는 무지는 진보 진영 인사들에게도 만연해 있다. 이들 역시 이것이 대학과 국가의 재정위기를 가져 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연히 국공립네트워크 안은 대학진학율이 지금보다 떨어지는 것, 그리고 이 안을 통해 떨어뜨리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안이다. 국공립네트워크 활동가들이 이러한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그렇게 무책임하게 '대학가는 문턱만 낮추자, 평준화하자'라는 주장을 한다고 왜곡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가장 황당한 부분은 바로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구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이다.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 자체도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몰역사적이며 비과학적인 주장인데, 설사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할 문제가 대학 위기의 본질이라고 치더라도 불가역적인 어마어마한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왜 국공립통합네트워크가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대학통합네트워크가 노동과 계급 문제 등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 혹은 모든 문제들을 극복해야 한다는 억지야 말로 한국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위한 논의를 가로막는 주장이다. 
  
이들은 대학위기의 본질이 경제위기 이후 엔지니어와 중간관리자를 담당하는 지식노동자의 수요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학의 위기의 본질이 지식노동자의 수요부족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황당하지만, 그 오만방자한 논리를 근거로 국공립통합네트워크론을 비판하는 것은 더욱 황당하다. 대학을 평준화시킴으로써 입시과열을 막고 사교육 시장의 팽창을 억제하며 학벌에 따른 위계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노력이 단순히 대학의 위기만을 극복하려는 데에 목적을 두는 것이 절대 아님은 물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이들의 주장은 국가를 막론한 보편적인 대학 교육의 문제일 수는 있어도 한국의 특권 계급 지배 구조와 연관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국공립통합네트워크론이 우선적으로 목표하고 있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는 주장이다. 
  
또한 이들은 국공립통합네트워크 안이 좌파들이 요구하는 노동자 운동, 대안적인 사회운동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대학통합네트워크 안은 노동자 운동도 아니고, 대안적인 사회운동의 힘을 강화시키는 데에 목적을 둔 안이 아니다. 좌파가 참여하면 꼭 거대담론과 사회의 모든 부문을 다 다뤄야 한다거나, 좌파가 참여하면 반드시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의 힘을 강화시키는 데에 목적을 둬야 한다는 논리에 입각한 비판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더욱이 '좌파가 추진해야할 것은 선별주의에 따른 격차해소를 위한 투쟁이지 선별자체를 유지한 채 학벌만 없애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국공립통합네트워크와 같은 교육 평등화 정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 하는 무책임한 주장일 뿐이다.
  
현재 과잉성장된 대학의 규모는 줄여야 하며,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의 규모를 확정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대학에 대한 투자확대를 통해 경쟁력 있는 지식노동자를 생산해야 한다는 이들의 논리 자체에 대해서는 커다란 이견이 없다. 다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의 규모를 확정하는 것은 국가의 계획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은 자명하고, 경쟁력을 갖춘 지식노동자 생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들이 주장하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간의 차이가 극복된 세상이라는 개념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지식에 대한 대중의 권리를 확장해야 한다. 그리고 지식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시민교육의 확대가 필요하다. 그러한 시민교육의 확장은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차이를 극복하고 노동자의 지식화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다. 즉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의 분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시민들, 노동자들의 지식에 대한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노동일의 단축과 노동생산성의 증가가 동시에 필요하다. 더불어 현재의 대학체제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자주적인 자기교육체계의 확립을 통해 지식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극복할 수 있다.'
  
위 글들에는 원칙론적인 주장과 관념적인 주장, 추구해야 할 주장과 몰역사적인 주장이 마구 뒤섞여 있다. 당장에 이러한 원칙론적인 목표를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못 하고 있다고 한국 교육의 문제와 교육제도로 인한 사회의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이나 다름없는 노력에 교조적이고 사변적인 논리로 찬 물을 끼얹는 행위는 교육 운동이나 사회 운동 뿐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의 발전에도 해악을 미치는 행위이다. 교육감들이 수행할 교육 정책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들만이 정통한 변혁론을 수호하고 있다는 식의 아집에 근거한 교조적이고 사변적인 비판은 자기만족적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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