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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덕분에, 적어도 괴물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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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덕분에, 적어도 괴물이 되지 않는다

[TV PLAY] <밀회><개과천선> 그리고 《NEWS 9》

주위로부터 어른 대우를 받기 시작한 언젠가부터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나?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거창한 실존 철학에 기반을 둔 물음도 100세 시대의 노후 계획을 위한 질문도 아니다. 그냥 밥을 먹다, 무심히 TV를 보다, 잠들기 직전 불쑥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는 결국 제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유독 이 질문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세월호 사태를 비롯해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났던 게 가장 큰 이유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이토록 이상한 세상에 날카로운 현미경을 들이대고 정교한 정망치를 내리치는 귀한 TV 프로그램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NEWS 9》의 손석희 앵커. ©JTBC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NEWS 9》은 올해 상반기 가장 인상적인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어떻게 보면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언론이 제 역할을 잊은 세태 속에서 돋보인 것일지도 모른다. 갈지자로 걷는 인파 속에서 평범하게 걷는 사람이 눈에 띄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태를 보도하는 《NEWS 9》의 끈질기고 묵묵한 태도는 요즘 같은 세상에 이 나라에서 똑바로 걷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귀한 것인지 새삼 생각하게 한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도 《NEWS 9》의 첫 꼭지는 세월호 보도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의 첫 본선 경기가 있었던 날, 지상파 저녁 뉴스 프로그램들이 길게는 방송 시간의 절반이 넘도록 월드컵과 대표팀 소식을 전했던 그 날도 《NEWS 9》은 여전히 찾지 못한 세월호 실종자와 가족들의 소식을 전했다. 아래는 그 날 손석희 앵커의 오프닝 멘트다.

"세월호 참사 64일째입니다. 오늘은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1:1로 비겼습니다. 붉은 악마들은 거리 응원전을 하면서도 세월호를 잊지 않았다고 하지요. 팽목항에서 저와 인터뷰했던 이호진 씨의 아드님인 고 이승현 군은 축구 선수가 되기를 열렬히 원했습니다. (중략) 오늘도 팽목항부터 연결하고 총리 후보자 관련 소식과 월드컵 등 다른 소식들도 모두 전해드리겠습니다."

▲ <밀회>의 유아인과 김희애. ©JTBC

지난 5월 열린 제 5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연출상과 극본상을 수상한 JTBC <밀회>와 최근 조기종영 소식이 전해져 아쉬움을 산 MBC <개과천선>도 자주 상념에 잠기게 한 작품들이다. 두 작품의 외피는 굉장히 다르지만 던지는 질문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싸움을 이어온 김석주(김명민)를 덮친 공사장 목재는, "우아한 노비"로 살아온 오혜원(김희애)의 삶에 뛰어든 이선재(유아인)과 닮았다. 마흔 살 오혜원과 서른아홉 살 김석주는 지금의 자신들을 만든 과거의 자신과 힘든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싸움은 혜원이 속해 있던 상류층 클래식 마피아의 세계와 석주가 속해 있던 법조계-정계-재계의 검은 커넥션을 뒤흔든다.

때로 <밀회>와 <개과천선>를 보는 것이 《NEWS 9》이 전하는 세월호 소식을 듣는 것 못지않게 힘들기도 했다. 이는 두 드라마가 안락한 삶을 위해 혹은 많은 이들의 정의와는 어긋나도 스스로 옳다고 믿는 신념 위에서 살아온 인물들이 이 엉망진창의 세상을 만든 공범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 적극적으로 불의에 가담하거나 소극적으로 불의를 묵인하면서 살아온 공범이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시민윤리와 직업윤리가 충돌하는 하루를 보냈던 어느 날, <개과천선>을 보면서 별 것 아닌 장면에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 <개과천선>의 박민영, 김명민, 김상중(왼쪽부터). ©MBC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미래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살고 있나 라는 현재와 어떻게 살아왔나 라는 과거에 더 큰 빚을 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책과 신문을 읽으며,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어떤 사람들은 거리에서 이 질문들과 마주친다. 그리고 나 같은 또 어떤 사람들은 TV를 보며 어제를 후회하고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을 걱정한다. 사각 화면 속의 세상과 사람들의 가르침이 있어서 적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를 되뇌며 잠자리에 든다. 그래서 오랫동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친구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TV가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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