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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갑 끼고 불끄던 소방관, 왜 광화문 거리로 나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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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갑 끼고 불끄던 소방관, 왜 광화문 거리로 나섰나

[소방관 동행르포·①] 그들이 "국가직 전환" 외치는 까닭은…

소방관들이 광장에 섰다. 25kg의 무거운 방화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들은 지난 7일부터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징계 등을 우려해 1인 시위는 잠정 중단된 상태지만, 소방관들은 여전히 현장에서 또 인터넷 공간에서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소방 조직이 탄생한 이래로 이같은 집단 반발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을 해체하고 국가안전처에 편입시키기로 한 정부 안을 재검토할 것, 지방직 소방 공무원들 신분을 국가직으로 일원화할 것 등이다. 각기 다른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 두 주장은 결국 '국민의 안전'이라는 하나의 목표점을 향한다. 재난 현장과 괴리를 낳는 조직 개편안을 막고, 지방 재정에 상관 없이 전 국민이 고루 소방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국민이 안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소방관들은 탁상공론을 멈추고 제발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소리친다. 이에 <프레시안>은 지난 13일, 그들의 현장에 직접 찾아갔다. 당도한 곳은 지방의 어느 소도시에 위치한 한 소방안전센터. 이곳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편집자.

▲지난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광화문 광장에서 소방관들의 모임인 소방발전협의회의 회장인 고진영 전북 군산소방서 소방장이 도심 더위속 두꺼운 방화복을 입고 지방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구급, 구급!"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본부 상황실의 출동 명령이 떨어지자, 구급대원 두 명이 구급차에 재빠르게 올랐다.
차 문을 닫자마자 운전대를 잡은 구급대원은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무슨 사고래?"
"ATV(레저용 사륜 오토바이) 타다가 도로 아래로 추락했대요."

사고 지점은 센터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떨어진 개울가. 사고 현장 부근에 당도하자, 신고자로 추측되는 여성이 다급하게 손을 흔들며 뛰어 온다.
신고자를 따라가다 보니, 도로에서 아래 7m 가량 떨어진 개울가에 앉아있는 환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상체를 세우고 앉아있는 것으로 보아 심각한 외상은 아닐 것으로 판단, 대원들은 일단 구급상자만 챙겨 도로 아래로 내려갔다.

환자 상태는 다행히 심각하지 않았다. 추락하면서 바위 등에 허리를 찍혀 상하로 길게 상처가 벌어지고 요추염이 의심되는 상황. 팔다리 등에도 타박상을 입었으나, 거동은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상처 부위에 거즈와 반창고를 붙인 뒤 환자를 부축해 구급차에 올라탔다. 운전대를 잡은 대원이 이제야 조금 안심한 듯 말을 꺼냈다.

"오늘 환자는 경미한 수준이라 괜찮았지만, 척추 손상 환자의 경우는 난감해요. 절대 움직이면 안 돼서 들것으로 옮겨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같이 도로 아래로 추락하면, 더군다나 바닥이 바위투성이면 구급대원 두 명으론 어림도 없죠. ATV 사고는 자동차 사고랑 비슷해서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으니 외관상으론 멀쩡해 보여도 들것으로 가는 게 좋긴 한데 사람이 없으니…."

이 대원은 응급구조사 자격증조차 없다고 했다. 긴급 환자가 생겼을 경우, 응급처치 할 인력은 나머지 한 명뿐인 것이다.

"심정지 환자 같은 응급 환자는 병원 이송 중 차 안에서 심폐소생술도 해야 하고, 또 병원이 바로 수술 준비를 하도록 보고도 해야 하거든요. 저야 운전만 해서 편하지만 뒤에서는 한 명이 그걸 다 해야 해요. 가끔 환자들이나 보호자가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며 대원들을 폭행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걸 제압하려면 적어도 뒷자리에 두 명은 타야 하는데, 한 명이서 하려니 죽어나는 거죠. 서울은 운전사 포함해 세 명이 타니 이런 걱정은 덜 하겠죠."

▲사고 현장 인근 도로에 구급차를 주차한 뒤 구급 상자를 들고 뛰어가는 구급대원. ⓒ프레시안(서어리)
▲환자의 상처를 응급 처치 중인 구급대원들. ⓒ프레시안(서어리)

지방 소방관은 '일당백'…작은 사고를 큰 사고로 키우는 인력난

물 맑기로 소문난 이 지역 안전센터에는 주말마다 관광객 추락 사고, 수난 신고가 들어온다. 산 좋기로도 유명해 화재 신고도 많다. 소방차와 구급차가 번갈아가며 출동하느라 이곳 안전센터 대원들은 늘 긴장 상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다.

방금 구급 출동 이전에는 화재 신고가 들어왔다. 구조대원 한 명과 팀장 둘이 나갔다. 세 명 출동이 원칙이지만, 이날은 휴가자가 생긴 탓이다. 구조대원 두 명이 더 있긴 하지만 또 다른 출동을 대비, 최소 인원만이 출동했다. 이들은 구급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인력난을 호소했다.

"운전하는 대원 빼면 거의 혼자 불 끄러 가는 식입니다. 이게 소방의 현실이에요. 어떤 사고든 초동 대처가 중요해요. 처음에 몇 명이 가느냐에 따라 구조 결과는 천지 차이로 벌어집니다. 인력이 부족한 지방에서는 초동 대처를 잘못해 작은 사고가 큰 사고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김완기(가명) 팀장은 최근 발생한 고양 버스터미널과 장성 요양원 화재를 비교했다.

"고양터미널 화재는 20분 만에 다 진화가 됐지 않습니까. 동시다발적으로 소방차가 10대가 넘게 투입이 됐어요. 그런데 장성에는 고작 소방차, 구급차 각 한 대에 세 명만 갔지 않습니까. 노인들을 일일이 옮겨야 하는데, 한 명은 불길 잡고, 구급대원이 고작 두 명으로 되겠어요. 희생자가 많을 수밖에요."


▲지난달 26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현장에 투입됐던 한 소방대원이 구조작업을 마친 뒤 생수로 눈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김 팀장이 지적한대로, 응급 상황에서 적정 인원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구급대원의 경우 '소방력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운전자를 포함 3명이 출동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많은 지역에서 이같은 규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윤재옥 의원이 지난해 10월에 낸 자료에 따르면, 운전자 포함 2인 1조 출동 비율이 전국 평균 83.2%였다. 서울은 12.1%로 가장 낮았다. 바꿔 말하면 서울에서는 3인 이상 출동 비율이 87.9%에 달한다는 얘기다. 그 외 지역은 2인 1조 출동 비율이 90%에 육박했다. 특히 울산, 강원, 충북, 충남, 경남, 제주, 창원 지역은 100%였다. 이들 지역에선 3인 이상이 출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도별 구급대원 법정 수요 인원 배치율에서도 80%를 넘긴 곳은 서울 단 한 곳뿐이었다. 서울은 95.8%를 기록, 법정 수요 인원을 거의 충족시켰다. 전국 평균은 68.9%에 불과했다. 지방은 하루 5~6명씩 3교대로 근무하는 반면, 서울은 최소 10명 이상이 3교대 근무한다.

비(非)서울 지역에서는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각 대원이 전문 분야와 상관없이 화재든 구급이든 일단 현장에 마구잡이로 투입되기도 한다. 최근 화재 신고는 줄었지만 벌집 제거, 뱀 퇴치 등 민원성 신고가 늘어 업무량이 더욱 늘어난 상태다.

결국 '일당백'의 각오로 일하는 탓에 소방관들이 다치거나 숨지는 일도 발생한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순직자는 연 평균 5.8명, 부상자는 325.2명이다. 김 팀장의 군 시절 후배였던 고(故) 김종현 소방교는 지난 2011년 강원도 속초시 교동의 한 건물에서 고양이를 구조하다 추락해 숨져 최근 국립현충원에 안장되기도 했다.

"한 명이 열 명 몫을 하다 보면, 소방관 개인의 위험 부담이 높아지는 게 사실입니다. 오늘처럼 휴가자가 한 명이라도 발생하면 그저 큰 사고가 없기를 바랄 뿐이죠.

저는 화재 진압을 하러 펌프차에 네 명이 타면, 네 명이 아니라 마흔 명이 출동한다고 생각해요. 실제 앉은 사람은 네 명이지만 부모, 형제, 자녀들도 거기 앉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원들 가족들에게는 항상 '출근할 때 모습 그대로 집에 돌려드리겠다'고 다짐합니다"

▲센터 벽면에 걸려 있는 '안전사고 줄이기 실천 운동' 팻말. ⓒ프레시안(서어리)

"빨간 목장갑 끼고 불 끈 적도…소방관도, 국민도 안전 '빨간 불'"

김 팀장은 인력난에 더해 장비난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군대의 경우 이젠 사람이 직접 총칼을 들고 싸우는 백병전이 아니라 장비전이지 않습니까. 소방대도 마찬가집니다. 장비가 좋고 많을수록 구조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역마다 똑같은 장비가 들어가지 않아요. 장비가 지역마다 차별적으로 보급됩니다"

소방방재청이 지난 1월 1일 공개한 '소방장비통계집'에 따르면, 경기도가 109.1%로 가장 높은 보급률을 보였고, 그 다음이 울산 107.1%였다. 보급률이 가장 낮은 곳은 부산 75.5%, 서울도 78.1%, 전북 82.7% 등으로 지역별 편차를 보였다. 전국 평균 보유율은 91.8%였다. 소방관에게 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최근엔 일부 지역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용 방수 장갑을 사비로 구입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강원(가명) 대원은 "2008년까지만 해도 방수 장갑이 지급되지 않아서 슈퍼마켓에서 파는 빨간색 목장갑을 받고 불 끄러 가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많이 나아져서 낡긴 했지만 한 켤레를 갖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장비 보급이 불균형하게 이뤄지는 이유는 지방마다 소방 관련 예산을 따로 편성하기 때문이다. 현재
소방 관련 국가 지원 예산 비중은 1.7%에 불과하다. 나머지 98%는 각 지자체에서 충당한다. 지자체장의 판단에 따라 소방 예산이 좌지우지되는 구조다. 이 지역은 전국을 통틀어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편에 속하지만, '도지사님의 배려' 덕에 다행히 소방 물자가 모자라지는 않는 편이라고 서 대원은 말했다.

"언론에서는 단순히 재정자립도의 문제와 장비 보급 문제가 직결되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다만 예산 배분 권한이 자치단체장에게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장비 지원을 해달라고 시장, 도지사한테 빌다시피 하는 경우도 있죠. 우리 좋으려고 하는 게 아닌데도요."

그렇다고 '도지사님'의 선처만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장비 예산이 만만치 않은 규모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 들어가는 장비만 520만 원입니다. 만일 일 년에 백 명을 충원한다고 하면 예산 5억이 추가로 들어가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개인 장비를 3~5년마다 바꾸게 돼 있는데 그렇다면 일 년에 소방관 개인 장비로만 수십 억이 들어갑니다. 소방차 한 대에 십몇 억씩 하고요. 그걸 돈 없는 지자체에 요구하기 쉽지 않죠."

▲소방관에게 지급되는 개인 소방 장비. ⓒ프레시안(서어리)

결국 인력도, 장비도 결국 지자체별로 예산 사정, 지자체장의 판단에 따라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다. 이같은 형평성 문제를 해소할 길은 소방공무원을 지방직에서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해 정부에서 일괄로 예산을 배분하는 방법 뿐이다.

소방대원들은 단순히 월급 올리자고, 처우 개선하자고 소방관들이 징계를 감수하면서 일인 시위를 하는 게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국가직 전환을 하면 대원들에게 불이익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다. 엉뚱한 곳으로 발령받을 수도 있고, 승진을 코 앞에 둔 사람의 경우 승진 시기가 늦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런 문제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딱 잘랐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의 안전입니다. 어디에 살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국민은 똑같은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지 않나요. 일산에 살면 구조되고, 장성에 살면 구조가 안 되어 희생당하는, 적어도 그런 차별은 없어야지요."

대원들이 바라는 것은 딱 하나, '국민 모두에게 평등한 소방 서비스'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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