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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첫 재판, "교복 입은 애들 보면 '아빠, 나 왔어'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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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첫 재판, "교복 입은 애들 보면 '아빠, 나 왔어' 할 것 같아"

[언론 네트워크] 세월호 사고 첫 기소된 이준석 선장 등 총 15명 혐의 부인

"아주 씩씩하게 잘 들어온다. 이 사람들아 밥은 잘 넘어가지! 우리 딸은 죽었어!"

세월호 참사로 기소된 첫 재판이 열린 6월 10일. 세월호 피해자 유가족들은 안산에서 광주로 먼 길에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부터 광주지방법원 주변은 경찰과 기자들로 북적거렸고, 외신까지 눈에 띠었다.

오후 2시가 되자 광주지법 201호 법정은 15명의 피고인을 제외한 모든 좌석의 자리가 채워졌다. 본법정 201호 방청석 103석 중 추첨을 통한 10석을 제외한 나머지 좌석은 유가족들과 유가족측 변호인이 방청했다. 검문을 통해 방청권을 소지한 사람 이외에 입장을 제한했다.

▲ 세월호 참사로 기소된 이준석 선장 및 선원 등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부. ⓒ시민의소리

▲ 세월호 참사 이후 첫 재판이 열린 10일 광주지방법원 법정동 앞은 경찰 및 기자, 외신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시민의소리

피고 입장 전부터 비통한 분위기 속 울분

재판을 시작하기 직전 법정 안을 어수선하게 채운 너무 많은 법원 관계자들과 피고인석을 가리며 자주 일어서는 교도관으로 인해 실랑이가 있었다. "앉아, 앉으라고! 뭐하는 거야 안 보이는데! 그만 좀 돌아다녀! 그 뻔뻔한 놈들 얼굴도 안보이게 앞가리고 이게 무슨 짓이야" 유가족들은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만 입장하기를 기다리며 문 쪽으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재판부가 입장하고 임정엽 부장판사는 "법정에 계신 방청객들과 많은 국민들도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다.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이번 사건의 실체의 진실을 밝혀내고, 변호인들도 피고인에 대한 변론을 하면서 변호인의 의무를 다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피고인들이 입장하기 전 피고측 국선변호인단이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시민의소리

이후 피고인 입장에 앞서 방청석에서 유가족들이 지켜야할 사항을 알렸다. 임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유리한 주장을 할 수 있고 유리한 증거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 하지만 유가족 분들의 심정을 이해하나 재판 과정 중에서 유가족 분들의 생각과 다른 주장을 한다고 큰소리로 욕하거나 고성을 지르면 안 된다. 피고가 주장하는 것도 진상규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아무런 손도 쓸 수 없이 어린 자녀를 떠나보내야 했던 유가족들은 울분을 토해낼 방도가 없었다.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재판장은 온통 분통이 터지는 속마음을 삭히기 위한 깊은 한숨소리만 계속 흘러나왔고, 어려운 법률 용어만 흘러나오는 재판을 보고만 있기에 너무 가혹한 시간이었다.

"아니오. 못합니다!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방청하고 말을 다른 데로 돌리면 끝까지 큰소리 칠거라고요."

다시 재판부는 피고인의 구속기간이 6개월인 점을 일러주면서 재판이 계속 중단되면 실체 진실을 규명하기 전에 피고들을 풀어줘야 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을 명시했다.

"그런데 어떻게 감정을 억누릅니까… 정말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피고인들이 계속 거짓을 얘기하고 딴소리를 한다면!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거 아닙니까"라며 유가족들은 눈물을 참아내고 있었다.

이후 유가족들은 "피고인들이 들어오면 그 뻔뻔한 얼굴 좀 정면으로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요청했다.

임 판사는 인정심문을 하는 동안 돌아서서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피고인들은 신분을 확인하는 인정심문 시간동안 방청석을 바라보지 않고 몇 십 초정도 일어섰을 뿐 재판 내내 앉아 있어 정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유가족들은 재판 내내 앉아있는 피고를 측면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피고인들은 4시간동안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터라 "졸고 있는 거 아니냐!"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 세월호 재판이 진행된 광주지법 201호 본 법정 입구에는 유가족들의 진술을 도와줄 피해자 의견서가 비치됐고, 응급상황을 대비해 의료진을 대기시켜놨다. ⓒ시민의소리

'대피하라' 방송 딱 한번이라도 해줬더라면

피고인들을 처음으로 마주한 유가족들은 온몸이 떨리고 심장이 요동을 치며 뛰는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어 보였다. 피고인 중 한 명은 착석하는 과정 중에 잠깐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는 모습을 유가족에게 들켜 큰 공분을 사기도 했다.

재판 시작에 앞서 피해자들의 의견을 모아 진술할 김병권 대표가 증인석에 착석하고, 유가족들이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적어온 종이를 꺼내 읽어나갔다.

"사고가 난지 2달 가까이 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도 아문다고 하지만 저희들에게 시간은 정지된 것이나 같습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서 우리 손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 시간들이 얼마나 길까 생각하면 긴 잠을 청할 수가 없습니다."

"바다에서는 돌아왔지만 이제는 우리 곁에 없는 아이들. 아직도 교복을 입고 돌아오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엄마, 아빠 나 왔어 하고 말할 것 같습니다……." 울먹이던 김 대표는 결국 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한 글자 한 글자를 힘들게 읽어나갔다.

숨을 죽이며 듣고 있던 방청석에서도 끝내 소리 없는 오열이 터져 훌쩍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고, 김 대표는 잠시 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우리들은 현실이길 바라지 않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었던 그 소중한 이름들을 일일이 목 놓아 부르고 싶지만 너무 많아 부를 수 없는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피고인들은 살았습니다. 누구보다 그 배에 동선을 잘 알고, 승객들을 살려야 했던 사람들이 뛰쳐나와 살았습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대피하라' 방송만 했더라면……. 탈출하라는 안내 방송을 단 한 번이라도 했더라면 우리 아이들은 살 수……있었습니다."

결국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유가족은 돌아오지 못한 딸의 사진이 붙여진 수첩을 부여잡고 어루만지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리고 승무원들은 승객들만 죽인 게 아닙니다. 우리 가족들의 영혼까지 모두 죽였습니다. 현실이 너무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왜 그렇게 갑자기 죽어야 했는지 적어도 누가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 아이들과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철저하게 밝혀주세요."

피해자들의 의견을 듣고 법정 안은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을 갖고, 본격적인 재판이 진행됐다.

12명의 실종자 명단(6.10일 기준)에 포함되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피해자의 유가족도 참석했다. 이 모씨는 "사고 첫날부터 가서 현재까지 아이를 찾지 못하고 있어 이 자리에 왔다"며 "실종자 가족들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재판장님이 반드시 인지를 해주셨으면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총 15명의 피고인 중 13명은 중장년층인 남성이었지만, 2명의 여성 피고인은 88년생으로 만 25세의 젊은 나이었다. 본인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수 있는 15명의 피고인들은 법정에서 국민참여재판을 받기를 모두 희망하지 않았다.
▲ 세월호 재판이 오후 2시에 진행될 예정으로 피해자 유가족들이 입장하는 도중 법원 관계자들과 약간의 실랑이가 벌여졌다. ⓒ시민의소리

▲ 세월호 참사 첫 재판이 끝난 이후 법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들이 피해자 유가족 김병권 대표의 인터뷰를 따기 위해 몰려들었다. ⓒ시민의소리

피고인, 잘못 이상 형사책임 묻는 것 옳지 않아 주장

이후 검사의 약 20분가량 공소사실에 대한 모두 진술이 있었다. 진술로 인해 세월호가 기울어졌던 당시 선원들은 5층에서 3층으로 1층에서 3층까지 이동을 했다는 점이 알려졌다.

검사측이 공소장을 낭독하는 동안 유가족들은 또다시 세월호가 침몰한 4월 16일, 살려달라고 했던 아이들이 겪은 아픈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공소장을 읽던 검사도 목이 메어 눈물을 참는 듯한 얼굴을 보였다.

판사는 3시 20분 휴정을 하고 20분 뒤인 3시 40분 다시 개정을 했다. 다음으로 피고인측 국선변호인들이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 진술을 시작했다. 이준석 선장의 국선변호인은 "가슴 한 가운데에 돌덩이가 놓여있는 듯한 무거운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피고인들이 주장하는 진술은 유가족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찢는 듯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살인, 업무상과실선박매몰, 수난구호법 위반 등 피고인별로 적용된 공소사실이 전부 달라 재판은 장시간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5박 6일 임시 선장에 불과한 점, 결정권이 없는 계약직 선원인 점, 이동 중 본인도 상해를 입은 점, 침몰 당시 정신적 공황장애를 겪은 점, 도주가 아닌 구호조치를 이행하던 중 해경에 의해 구출된 점, 무리한 선박개조 등 세월호 침몰관계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했다.

또한 수난구호법 위반에 대해 자체적으로 조난된 배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강한 의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피고인은 오히려 구조 이후 가능한 구호활동을 위해 배를 타고 돌아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살인죄로 기소된 피고인들은 살인에 대해 미필적 고의가 없어 잘못한 것 이상의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진술했다. 더욱이 세월호 불법증개축, 화물 과적 등 청해진 해운과 화물하역 업체인 우련통운이 침몰 원인을 제공한 점을 어필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목소리를 높여 반박했다. 하지만 원활한 재판 진행을 위해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다시 눌러 담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시 오후 4시 50분 경 휴정을 하고 10분 뒤 오후 5시에 개정을 했다.

유가족들은 피고인석 앞에 붙은 모니터 때문에 얼굴이 가려져 앉아 있는 이준석 선장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속기 모니터를 떼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재판부터 의견이 반영될 예정이다.

이날은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이지만 많은 피고인들로 인해 피고인 진술을 전부 진행하지 못했다. 재판장이 남은 4명의 피고인의 공소사실에 대한 진술을 다음 기일로 넘기자는 제안을 하자 유가족은 계속 진행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재판부와 유가족들간 의견조정을 통해 다음 기일인 6월 17일은 오전 10시부터 진행키로 결정했다. 한편 검사측은 1만 페이지가 넘고, 책 50권 분량의 1929개 증거를 준비해 다음 기일에는 증거 조사, 증인신청, 현장검증, 남은 4명의 피고인 진술 등에 대한 내용이 오갈 예정이다.

시민의소리=프레시안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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