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러 갔더니 죽어서 나오다니
'얼른 나아서 저 창문 밖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14년 동안 에이즈로 투병하면서 수차례 병원에 입원했을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다. 내가 늘 누리고 살던 일상의 소소함,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 심지어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마저도 그립다. 어디 HIV 감염인뿐이겠는가, 장기간 입원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다행인지 나는 아직 요양병원에 입원한 적은 없다.
하지만 1200개가 넘는 요양병원 중에 우리가 갈 수 있는 요양병원이 하나도 없는 현실은 캄캄한 바다에 침몰한 세월호 같기만 하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은 고립된 섬에 갇힌 것만 같다. 종합병원에서 퇴원 날짜를 받아두었으나 갈 곳이 없는 환자나 가족의 마음은, 그 애타는 마음은, 하찮은 목숨이 되어버린 듯한 그 비참함은 개인의 몫이어야 할까? 그렇게 고립된 HIV 감염인을 질병관리본부가 '구조'해주겠다며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외딴곳에 위치한 S요양병원에 위탁해왔다.
질병관리본부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은 고립된 HIV 감염인을 '구조'한 게 아니라, 단지 외딴 곳으로 옮겨 '수용'한 것뿐이었다. 지난해 8월 S요양병원에 입원한 30대 환자가 11일 만에 호흡곤란이 왔다. 환자는 자신이 외래 진료를 받던 큰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S요양병원은 이를 무시하였다. 환자는 이틀 만에 사망하였다. 감히 단언하건대 그 30대 환자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큰 병원의 의료진도, 환자의 지인도, 환자를 간병했던 이도 상상 못 했던 일이었다. 이 사망 사건을 계기로 외딴 곳에서 3년간 은폐되었던 에이즈 환자들의 '수용소' 생활이 세상에 드러났다. (☞관련 기사 : 성폭행, 사망…에이즈 환자 인권은 어디에?)
외딴 '에이즈 환자 수용소'
S요양병원에 입원했던 환자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짐짝처럼 취급하는 수용소 같은 그곳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증언했다. 병원건물 밖에 못 나가게 하고, 타 병동 사람들과 접촉을 못 하게 감시를 하는 그곳. 병실에 생쥐가 돌아다니고, 빈대가 생기는 곳, 환자의 머리를 강제로 빡빡 밀게 하고, 병실에 모아놓고 예배를 강요하는 곳, 암환자가 먹다 남은 반찬이 다음날 에이즈 환자 반찬으로 나오는 그 곳. 입원과 퇴원 결정을 보호자에게만 맡겨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보호자와 연락이 안 되는 환자는 퇴원을 원해도 안 시켜주는 사례도 있었다. 한 환자는 화장실에 목을 매고서야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인권'은 비싼 본인부담금을 내고, 가족이 찾아오는 암 환자에게만 존재했다. 이런 부당함에 문제를 제기하면 쫓아낸다는 협박만이 돌아왔다.
"이번 사망사건 얘기를 듣고,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고, 그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병원에 보내자고 건의해도 심각해지면 보낸다"는 증언도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보호자가 없는 환자들에게는 더욱 위험천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이 '병원'인지 몰랐다고 증언한 환자도 있었다. 원장이 병실을 돌아보지만 '몸은 어떠냐?' 한 번 물어본 적이 없어 원장이 의사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환자 가족들도 내 자식, 내 동생을 S요양병원에 다시는 보내고 싶지 않다고 진저리를 쳤다. 종합병원에서 치료 후 앞으로 요양 잘하면 좋아질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S요양병원에 보냈는데 건강이 더 악화된 환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욕창도 심해지고, 가래를 뽑는 석션기에 곰팡이가 피는 등 위생상태도 엉망이었다. 병원에 항의하니 '50만 원에 합의해주겠다'는 말로 가족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소변줄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염증이 생겨 수시로 종합병원에 이송하여 치료하고, 다시 S요양병원에 보내면 또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돼 칠순이 넘은 어머니는 너무 힘들었다고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물리치료가 필요 없는 환자에게 매일 물리치료를 받게 해 진료비 부당 청구 의혹도 있었다.
'돌봄'이 아닌 '감시'를 해야 했던 간병인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통해 간병인과 상담간호사, 코디네이터(사회복지사)의 월급을 지원하여 에이즈 환자를 돌보게 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에이즈 환자를 보호하지 못했다. 도리어 '병원 사람'이었던 코디네이터는 간병인과 상담간호사를 "잡았고", 그 사람과 병원장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쫓겨나는 수밖에 없었다.
S요양병원에서 에이즈 환자를 간병한 이들은 건강한 HIV 감염인, 즉 '동료 간병인'이었다. 일반 간병인이 에이즈를 이유로 간병을 거부하고, 병력 노출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때문에 건강한 HIV 감염인이 간병을 하였다.
S요양병원은 간병인들에게도 인권 유린을 하였고 노동착취를 하였다. 에이즈 환자들이 타 병동 환자와 접촉을 못 하도록 감시하는 일을 맡았다. 간병인 한 명이 6~10명의 환자를 돌보게 해 제대로 된 간병 서비스도 할 수 없었다. 간병인에게 욕창 드레싱, 석션(suction) 등의 의료 행위를 시키는 불법도 저질렀다. 타 병동과 달리 에이즈 환자 병실 청소를 시켰고, 환자복을 세탁하게 하였으며, 환자 이송 등 간병 업무와 상관없는 일까지 시켰다.
40분밖에 안 되는 식사시간 안에 환자들 밥 먹이고 간병인도 식사를 해야 했다. 그러니 물에 밥을 말아 먹이거나 환자를 때리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급히 먹느라 환자와 간병인이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다. 휴식시간은커녕 밥 먹을 시간이 없는데도 S요양병원은 질병관리본부에 낼 보고서에 1시간 휴식시간을 가졌다고 서명을 하라고 강요했다.
책임감도, 상식도 없는 질병관리본부
S요양병원의 인권 유린을 키운 원인은 질병관리본부의 잘못된 대응과 관리감독 소홀이다. 2011년 S요양병원에서 에이즈 환자가 폭언, 구타, 성폭력을 당한 일이 알려졌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제대로 된 실태조사를 하지도 않고, 가해자 해고만으로 이 문제를 덮었다. 그 후로 S요양병원은 문제가 생길까 봐 환자와 간병인을 "더욱 잡았고", 입막음을 철저히 했다. 그 와중에도 질병관리본부에다, 밖에다 얘기해보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작년 11월 증언대회를 통해 언론에 알려지자 질병관리본부는 작년 12월 부랴부랴 실태조사를 벌여 올해 1월부터 S요양병원과의 위탁계약을 해지하였다.
우리를 더욱 화나게 한 건 질병관리본부의 후속 대책이다. 새로운 요양병원을 마련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2월에 환자들에게 S요양병원에 남을 것인지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인지를 묻고 서명을 받았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무엇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관련 기사 : "인권 침해 논란 에이즈 환자 병원, 나가기 싫으면 남아?")
우리가 항의해 서명받는 것이 중단되긴 했지만, 질병관리본부와 면담해야 했던 환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가관이었다. 코디네이터가 '저기 가서 면담하라'고 해서 어떤 여성과 면담을 했는데 누구와 면담을 하는지 몰랐고, 면담했던 여성도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앞뒤 설명도 없이 '다른 데 가겠느냐'고 묻기에 '갈 데도 없는데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지금은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 가면 여기보다 더 좋으냐'고 물으니 '그렇지는 않다'고 답변을 하더란다. 그렇게 41명의 에이즈 환자가 여전히 S요양병원에 방치되어 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목숨
우리나라에서 HIV 감염인이 보고되기 시작한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감염 경로가 밝혀져서 예방하는 방법이 분명해졌고, 에이즈 치료도 발전을 거듭하여 약 복용만 꾸준히 잘하면 건강하게 생활할 뿐만 아니라 HIV 감염인이 건강한 아기를 출산할 수도 있다. 감염내과 의사들은 에이즈가 더는 죽을병이 아니라고 말한다. 질병관리본부도 마찬가지로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만성질환이라고 말한다. 의학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3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HIV 감염인이 건강하게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험하다. 치료 잘 받으라고 격려받아야 할 환자가 비난과 냉대에 설 자리를 잃는 게 HIV 감염인의 현실이다. 병원 진료를 받으려 해도 거부당하기 일쑤다. 직장에서도 감염 사실이 알려지면 퇴사 당한다. 어디에 하소연도 못 한다. 가족과 지인들의 비난은 더욱 고통스럽다. HIV 감염인은 혼자 사는 경우가 많고, 많이들 가난하다. 5~6명 중 1명이 기초생활수급권자이다(2011년 말 기준 생존 HIV 감염인의 17.2%). 고립되기에 십상이다.
HIV 감염인 커뮤니티나 온라인 카페를 찾아온 이들은 그나마 낫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HIV 감염인은 약 먹을 이유와 기대감을 갖기 어렵다. 감염 사실을 알고도 항바이러스 약을 먹지 않거나 정기적으로 병원 다니기를 꺼리는 HIV 감염인들이 여전히 있다. 또 병이 한참 진행된 후에 감염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처럼 치료시기를 놓치면 면역력이 떨어져 각종 질환이 생기고 이 때문에 장애가 생기거나 생명이 위태롭기도 하다.
"에이즈 환자가 잘못되어도 밖에서 혹은 가족이 문제를 제기할 사람이 없으니까 환자에게 함부로 한다"는 증언은 HIV 감염인 요양서비스를 사회적으로 보장하여야 하고, 질병관리본부가 요양병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해준다. 가족, 지인, 사회와 단절된 HIV 감염인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픈 상황에서, 이들을 돌볼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없다면 이들의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 보듯 뻔하다.
아직도 S요양병원에 남아있는 41명의 환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창문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요양병원 문제에 대응하면서 많은 HIV 감염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다. "우리 아프지 말자!"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 말의 의미를 다들 너무 잘 알아 고개만 숙인다. 막막한 바닷속으로 침몰해가도 입으로만 구조하겠다는 정부 관계자들, 돈이 안 돼 구조를 거부하는 요양병원들. 304명 정도의 에이즈 환자가 치료도 못 받고 죽어야 행동으로 구조할 건지 묻고 싶다.
복지부 장관이 2010년 위탁한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수행해온 S요양병원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와 치료 방치가 발생하였다. S요양병원의 문제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낙인에서 기인하기도 하며, 요양서비스 제공자가 요양서비스 주체를 배제하고 이들의 열악한 처지를 악용하는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은 이 문제에 맞서 싸워가고 있는 활동가들로부터 '중증·정신질환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의 다양한 문제와 맥락을 살펴보고는 기획 기고를 연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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