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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인종차별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정치경영연구소 유럽르포] 이탈리아 '이민자 통합'…다문화 사회인가 다인종 사회인가'

이탈리아의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외국인 혐오가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이다. 뿌리 깊은 외국인 혐오는 인종 차별적 언사를 통해 자주 표출되며,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 전 총리는 2008년과 2009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부인 미셸에게 "선탠했다"라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최초의 흑인 장관인 세실 키안주(Cécile Kyenge)는 여러 차례 공식 석상에서 오랑우탄과 원숭이에 비유됐다. 한 지상파 스포츠 프로그램 진행자는 일본 축구선수 나가토모 유토(長友佑都)가 골을 넣자, 카메라 앞에서 양손으로 눈을 찢어 보이기도 했다. 체조선수 카를로타 페를리토(Carlotta Ferlito)는 흑인 선수 시몬 바일스(Simone Biles)가 우승하자, 팀 동료에게 '다음에는 피부를 검게 하고 나오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든 것처럼 이탈리아의 외국인 혐오는 이미 일상생활 전반에 퍼져 있다. 기차에서 검표원이 아프리카인의 표만 검사한다거나 상점에서 중국인들에게 가방을 열어 보이라고 요구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영국 <가디언>은 세실 키안주 사건을 다룬 기사에서 현재 이탈리아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인종차별이 일상인 곳. (중략) 이곳에서 인종차별은 좌우와 노소,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여기에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이 자리하고 있다. '캄파닐리즈모(campanilismo)'로 불리는 고향에 대한 강한 애착과 가족주의적 문화는 이탈리아인으로 하여금 외부 문화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 만들었다. 게다가 경제위기로 이탈리아인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이탈리아는 최근 이민 인구가 급증했다. 이 또한 원인 중 하나로, 이탈리아는 이민자와 그들의 문화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 프라토 시의 한 중국인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의 모습. 외국인들이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두려움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 이민 노동자들은 전통적인 섬유 생산 중심지였던 프라토(Prato) 시의 의류 산업을 장악했다. 지난해 12월 프라토 시의 한 중국인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7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이탈리아 언론들은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중국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과 인권 문제를 집중 조명하고 나섰지만, 한 중국인 노동자는 어떤 이탈리아인도 중국인에게 집을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증언했다. ⓒwww.fanpage.it

방임에서 규제로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이탈리아는 이민을 떠나는 나라, 즉 노동력 수입국이 아닌 수출국이었다. 1886년 출판된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Edmondo De Amicis) 원작의 <아펜니노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Dagli Appennini agli Ande)>(한국어판 <엄마 찾아 삼만리>의 원작)는 제노바 소년 마르코가 일자리를 구하러 아르헨티나로 떠난 엄마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빈곤한 남부에서 산업화된 북부로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는 내부 이민이 두드러졌고, 1960년대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1970년대부터는 외부에서 노동력 유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유럽인종차별위원회(ECRI)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가 통일되던 1861년 전체 인구의 약 2.5%에 불과했던 이민자는 2012년 현재 약 8%(약 486만 명)에 해당한다.

불법체류자의 수를 감안하면, 실제 이민자 수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민자 가정의 출산율은 2.07명으로, 이탈리아 가정의 평균 출산율 1.33명을 훨씬 상회한다. 이탈리아 사회가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탈리아는 1980년대까지 이민자 유입을 사실상 방관했다. 80년대 후반 이민자의 법적 권리 보장과 사회정책 실시를 통해 이민 노동 인력을 합법적인 테두리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간단한 신고 절차만 거치면 쉽게 체류허가가 발급됐고 불법 체류자에 대한 특별한 제재조치 역시 시행되지 않았다.

이후 1990년의 마르텔리(Martelli) 법을 기점으로 이탈리아는 이민자 체류허가 발급과 갱신에 보다 까다로운 기준을 도입했으며, 1998년의 투르코·나폴리타노(Turco-Napolitano) 법을 거쳐 2002년의 보씨·피니(Bossi-Fini) 법에 이르기까지 이민자 규제 일변도로 흘러 왔다.

특히 보씨·피니 법은 이민자의 기본 인권을 제한한다는 점 때문에 입안 당시부터 좌파 정당과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고, 국제기구로부터 폐지 권고를 받아온 법안이다. 법 시행과 동시에 임시직 노동자와 시간제 노동자는 더 이상 체류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됐으며, 체류허가를 신청한 모든 외국인은 열 손가락 지문 날인을 의무화했다. 또 불법 체류자를 고용한 업주나 이들에게 집을 빌려준 소유자도 처벌 대상이 됐다. 이로 인해 프라토(Prato) 시의 한 중국인 노동자는 집을 빌리지 못해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불법 체류자를 실은 배는 이탈리아 영토에 정박할 수 없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어,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온 난민들이 육지에 상륙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 일이 종종 발행했다. 지난해 람페두사(Lampedusa)에서 아프리카 난민이 탄 배가 전복됐을 때, 인근을 지나던 선박이 즉각적으로 구조에 나서는 것을 망설이기까지 했다.

▲ 아프리카 난민을 실은 배가 해상에서 의료지원을 받는 모습. 보씨·피니 법에 따라 정치적 망명자와 난민들의 신분 확인 및 난민들에 대한 의료 지원 등이 해상에서 이루어지게 됐다. ⓒwww.fanpage.it

이민자 통합 협약

보씨·피니(Bossi-Fini) 법을 입안한 북부동맹(Lega Nord)은 그동안 이탈리아에 반(反) 외국인 정서를 확산시킨 장본인이다. 이들은 2008년부터 '이민자 통합 협약 (Accordo d'Integrazione)'이라는 또 하나의 배타적 법안을 마련했다. 2008년 북부동맹의 대변인 로렌초 보데가(Lorenzo Bodega)는 언론을 통해 북부동맹이 이민자의 체류허가 갱신에 '포인트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시민사회 반발이 거세자, 2009년 3월 하원의장 잔프랑코 피니(Gianfranco Fini)와 내무부 차관 알프레도 만토바노(Alfredo Mantovano)는 의회가 이 같은 반민주적 법률을 절대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당시 집권당이던 자유국민당(Pdl)은 연정 파트너인 북부동맹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이민자 통합 협약은 2010년 2월 별다른 저항 없이 의회를 통과했고, 2011년 9월 대통령령으로 채택돼 2012년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이민자 통합 협약의 주 내용은 포인트제 도입이다. 이탈리아에 입국한 모든 이민자는 체류 허가 신청과 동시에 위 협약에 서명, 16점을 받는다. 체류 허가 연장을 위해서는 2년 동안 총 30점을 취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이탈리아어를 구사해야 하며, 이탈리아 헌법과 정부 조직 및 문화에 대한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또 사회 보장 서비스 등록 여부, 부동산 구입 여부 등에 따라 추가 포인트가 부여된다. 만약 언어 구사 능력이 미달하거나 교육에 불참할 경우, 범죄를 저지르거나 법규를 위반할 경우에는 포인트가 차감된다.

협약이 만료되는 2년 차에 포인트가 0점 이상 30점 미만이면, 유예 기간 1년이 다시 주어진다. 유예 기간 내에도 포인트를 채우지 못하면, 경찰서장의 직권에 따라 체류 허가가 거부될 수 있다. 만약 포인트가 0점 미만인 경우, 더 이상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돼 체류 허가 갱신이 거부되고 추방 조치가 내려진다.

민주당(Pd) 소속 하원의원 잔클라우디오 브레싸(Gianclaudio Bressa)는 이민자 통합 협약이 승인된 직후,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외국인 혐오가 가장 심한 나라라는 점을 인증한 셈이라고 개탄했다. 그러나 좌파 정치인은 찬반이 갈렸고, 시민사회도 소규모 시위가 산발적으로 조직됐을 뿐 뚜렷한 저항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민자 통합 협약 옹호론자들은 포인트 제도가 인종, 종교, 정치색, 출신지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세워 협약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그러나 국제 인권문화단체인 '애브리원 그룹(EveryOne Group)'은 동일한 국가에 거주하는 특정 집단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은 인종, 성별, 언어에 따른 차별을 부정하는 세계인권선언(UHDR)뿐만 아니라 법 앞의 평등이라는 이탈리아 공화국 헌법의 원리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이민자 통합 협약 적용 대상은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하고자 하는 귀화 희망자 혹은 영구적인 체류 희망자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관광객을 제외한 16세 이상 모든 외국인이 대상이다.

이탈리아에서 영어 혹은 다른 외국어로 수행되는 학업이나 연구, 기업 활동 등을 위해 일정 기간을 체류하는 외국인들 역시 의무적으로 이탈리아어를 습득하고 이탈리아의 헌법과 정부 조직, 문화를 배워야 한다는 것은 황당하고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다. 보다 큰 문제는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서로 다른 법률이 적용된다는 점, 특정 언어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권리 제한의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심각한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
다문화 사회인가, 다인종 사회인가

이민자 통합 협약은 이민 인구의 급증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이탈리아가 택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이탈리아 내무부 홍보자료에 따르면, 협약은 언어와 문화 교육을 통해 이민자가 이탈리아 사회에 실질적으로 통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통합보다는 배제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모든 이민자에게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을 전제로 한 통합을 강요하는 한편, 이를 거부하는 자는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즉, '선별적 포섭'과 '폭력적 배제'라는 상반된 수단을 통해 소수 인종 집단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다문화 사회란, 한 국가 혹은 공동체 안에 다양한 집단과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다. 또한 인종과 민족이 차별의 근거가 되지 않으며, 특정 문화에 대한 습득 수준이 법적 근거가 되지 않는 사회이다. 이탈리아가 택한 통합의 방향은 다문화 사회가 아닌 다인종 사회를 지향하는 통합이다.

인권 침해의 요소가 명백한 법안에 대한 이탈리아 시민 사회의 침묵은 현재 이탈리아에 만연한 반 외국인 정서와 묘하게 맞물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자 통합 협약이 향후 외국인 혐오 정서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또한 제기되고 있다. 단일한 문화적 정체성을 강요하는 방식의 '통합'은 필연적으로 다른 문화에 대한 배타적, 적대적인 태도의 강화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한국 역시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빠르게 변모해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약 27만 명이었던 다문화 가정 인구가 2050년에는 10배에 가까운 216만 명으로 증가한다고 예상했다. 오늘날 이탈리아 사회가 마주한 문제는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이 직면하게 될 문제이기도 하다. 이탈리아가 선택한 '통합'의 방향, 그리고 그것이 불러올 결과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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