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 결과는 평가가 갈리는 주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인천 1곳을 대전·세종과 맞바꿨다. 야당 단체장 수는 오히려 늘었다. 그러나 수도권만 보면 오히려 새누리당이 2승 1패로 유리한 형국이 됐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세월호의 출항지인 인천에서는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이 시장 당선자가 됐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세월호 참사로 표출된 민심을 받아안는 데 정치권, 특히 야당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선거를 "야당의 패배"로 보느냐 "승패 없는 현상유지"로 보느냐는 시각이 엇갈렸지만, 선거를 계기로 청와대와 여당 등 집권세력이 기존의 행보를 바꿀 것 같지는 않다는 데는 공감대가 있었다. 다음은 정치분야 전문가 3인과의 전화 인터뷰 내용을 요약·재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국민들은 세월호 사고를 겪으면서 뭔가 우리 사회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고, 기존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개발·성장 등의 가치, 교육 면에서는 편향된 수월성 교육과 엘리트 경쟁교육 같은 가치에 대해 굉장한 염증을 표출했다. 그래서 단체장이든 교육감이든 '다른 가치'를 제시하는 후보들에게 강한 선호를 표출하는 경향을 보였다.
다만 그것이 당파 구도와는 엇각이 난 부분이 있다. 변화에 대한 기대를 새정치연합이라는 야당이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지속돼온 실망감이 작용해서 야당의 '심판론'이나 '책임론' 선거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이는 교육감이나 광역단체장이나 비슷하다. 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 교육감'들이 선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여당의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는 후보를 10%포인트대로 눌렀는데, 이는 총·대선까지 포함해 서울에서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이 선거들에서는) 다른 가치를 찾아야겠다는 분위기가 공통적으로 작용했다.
반면 경기와 인천에서는 김진표·송영길이라는 인물이 사람들의 열망과 기대를 담아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게 아닌가 한다. 김진표는 남경필보다 오히려 더 성장, 개발, 관료의 이미지로 읽힌다. 송영길도 조금 다르긴 하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다.
반대쪽으로 가면 남경필·유정복 후보는 정권 초기의 선거에서 '박근혜 구하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보수를 결집시켰는데, 김진표·송영길은 양 쪽(새로운 가치 추구 또는 기존 지지층 결집 전략) 가운데 어느 것도 취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낀 형국이 되면서 패배한 게 아닌가 한다.
이번 선거의 구도는 무슨 '심판·책임 대 안정' 같은 게 아니라고 본다. 보다 밑의, 저변을 관통한 기류는 가치 구도로 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다. 굳이 말하자면 '개발 대 안전'이라고나 할까.
■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SNS 전문가
형식적으로는 무승부지만 실제로는 야당의 패배라고 본다. 세월호 참사 정국에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분노가 광범위하게 제기됐다. SNS에서 세월호 참사는 전무후무한 언급량과 지속기간을 보여줬다. 언급량 1위 낱말은 '참사', 2위가 '분노'였고, 분노의 방향을 따라가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이준석 선장의 4배 정도를 기록하고 있고 정부, 해경, 청와대 등이 연관어 상위에 올라가 있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도 계속 같이 언급됐다.
또 하나 참사 과정에서 두드러진 것은 정치의 완벽한 실종이었다. 무능한 국가권력과 분노한 국민이 직접 대면하는 과정에서 정당은 새누리당처럼 막말로 상처를 입히거나 새정치연합처럼 비겁하게 숨었다. 새정치연합은 거의 20위권 밖이었고, 새누리당은 한기호·권은희 의원이 막말을 했을 때나 언급량이 올라갔다.
그런데 야당의 경우 선거 과정에서 이런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노를 전혀 수렴하지 못했고 지지층의 투표 참여 열정을 불러내지 못한 것이 수도권 패배로 직결됐다 본다. 야당에서 박원순·안희정·이시종·최문순이 이긴 지역조차 정당의 역할보다는 후보 개인의 경쟁력이 많이 작용했다. '박근혜 눈물' 마케팅이 보수 결집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야당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감 선거 결과에서 나타난 (야당의 패배와 대비되는) 진보 교육감들의 약진은 이같은 '정치의 역할이 뭐냐'는 근본적 질문이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지방선거를 야당의 실질적 패배로 보는 이유는 선거 이후 청와대의 국정기조가 그대로 유지될 것 같다는 점과, 새누리당이 변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7월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청와대는 '친박 대표'를 만들려 할 것이고 새누리당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정당 본연의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는 새누리당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 새누리부(部)'라고 표현하겠다. 새정치연합도 애매한 평가를 하면서 혁신은 뒤로 미루고 7.30 재보선 공천파동으로 넘어갈 것 같다.
■ 강원택 서울대 교수
비겼다고 본다. 딱히 승자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아직 정부 출범 15개월밖에 안 돼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아직 있다고 본다. (유권자가) 야당을 마땅한 대안으로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면도 있다. 그런 게 결합돼서 이같은 선거 결과가 나온 거라고 보는데, 근본적으로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현상 유지'다.
세월호 참사 와중에 인천에서 유정복 전 장관이 당선된 것은 내셔널(전국적) 이슈가 많이 안 먹혔을 수 있다고 본다. 유 당선자가 친박인데, 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과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보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 합쳐진 결과가 아닌가 한다.
진보 교육감들의 대거 당선은, (세월호라는) 이슈 자체가 교육에 관심을 가질 만한 이슈였다. 과거 나왔던 복지, 경제민주화 이슈와 연결되는 면이 있다. 세월호 참사는 아이들의 문제였고, 교육 문제를 되돌아보게 했다. 교육감 선거는 이슈가 없는 선거였지만 정책적인 면에서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진 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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