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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 '엄친아' 대신 '시민운동가' 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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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 '엄친아' 대신 '시민운동가' 택하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당선의 의미

그의 당선을 예상한 이가 얼마나 됐을까. 인지도와 지지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후보였다. 그러나 이겼다. 4%대 지지율의 꼴찌가 1등이 되는 대역전극을 펼쳤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 이야기다. 6·4지방선거에서 조 당선자는 38.4% 지지율을 기록해 2위인 문용린 후보를 9%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5일 새벽 1시 46분 기준.) 당선이 확실해졌다.

시민은 '엄친아' 교육감 원치 않았다

많은 이들이 예상한 당선자는 3위인 고승덕 후보였다. 고시 3관왕, 경기고-서울대 법대-미국 아이비리그 유학, 잇따른 방송 출연, 국회의원 경력 등은 이 땅의 학부모들이 자식 교육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극대치를 보여주는 듯 했다. 이런 고 후보가 하필 서울시 초중등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이 되려 한다니. 누가 그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겠는가. 하지만 시민이 원한 교육감은 ‘엄친아’가 아니었다. 대신, 유신 체제에 맞서다 징역살이를 하며 대학 시절을 보낸 시민운동가를 뽑았다.

이런 반전은, 사실 시민의 근본적인 의식 변화 때문은 아니다. 고승덕 후보의 큰딸 희경(영문명 캔디 고) 씨의 폭로가 결정적이었다. 고 후보가 서울시 교육감으로서 자질이 없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희경 씨는 “고 후보는 자신의 자녀의 교육에 참여하기는커녕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고 후보의 지지율은 수직하락 했다. 고 후보 지지자 가운데 상당수가 문용린 후보로 옮겨갔고, 일부는 조 후보자를 택했다. 그 결과가 38,4%(조희연), 29.9%(문용린), 25.5%(고승덕)라는 지지율이다.

ⓒ 프레시안(손문상)

딸 때문에 진 고승덕, 아들 때문에 이긴 조희연

조 후보의 당선은 보수 지지층의 표가 절묘하게 분할된 데 주로 기인한다. 그리고 이는 상당부분 고 후보 딸 희경 씨의 폭로 덕분이다. 그렇다면, 조 후보의 당선이 꼭 ‘어부지리’였다는 건가. 그건 아니다. 고 후보가 딸 때문에 졌다면, 조 후보는 아들 때문에 이겼다. 조 후보의 아들 성훈 씨는 지난달 29일 다음 아고라 정치 토론방에 '서울시교육감 후보 조희연의 둘째아들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솔직하고 담담한 내용의 글에 누리꾼들은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각종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줄곧 머물렀다. 조 후보의 인지도가 대폭 상승한 건 물론이다.

또 진보 단일 후보 선출과정에서 큰 잡음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막판에 윤덕홍 전 교육부 장관이 진보 후보로 출마 입장을 밝혔으나 결국 정리가 됐다.

"세월호 이후의 한국 교육, 달라져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표심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하병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국민이 교육에 대해 집단적인 성찰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쟁을 넘어서는 협력의 가치”에 눈을 떴다는 게다. 이런 변화가 ‘엘리트 교육’의 수혜자 고승덕 대신 사람의 가치를 강조하는 조희연을 택하게 했다는 게다. 실제로 조 후보 역시 당선소감에서 "평소 주목받지 않던 교육감 선거에서 서울을 포함해 민주진보 후보가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것은 세월호 이전과 한국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현재와 같은 교육 체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고,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라는 요구가 이번 선거에서 표현됐다"며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세월호 이후의 한국 교육의 새로운 변화의 과제를 끌어안고 열심히 실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곽노현의 불운, 조희연의 행운…궁합 맞는 서울시장의 존재

서울시 초중등 교육행정을 책임지게 된 조 후보에겐 다행스런 대목이 많다. 가장 큰 행운은 서울시장이다. 박원순 후보의 당선이 확정적이다. 조 후보와 박 후보는 서울대 사회계열 75학번 동기다. 그러나 이런 ‘학연’만으로 둘의 사이를 설명할 수는 없다.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함께해왔다. 유신체제에 저항하다 시련을 겪었고,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했다. 그리고 이제, 교육감과 서울시장으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서울시의 첫 번째 진보교육감이었던 곽노현과 비교하면, 이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곽 전 교육감 재직 당시 서울시장은 오세훈이었다. 무상급식 등 중요 의제를 놓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조 후보는 이런 충돌을 겪을 필요가 없다. 대신 협력을 기대할 수 있다.

취약한 지지 기반, 어떻게 극복할까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우선 조 후보는 초중등 교육 전문가가 아니다. 해당 분야를 전공한 것도, 관련 활동을 오래 한 것도 아니다. 노회하고 보수적인 관료들을 지휘하는 데는 아무래도 약점이다. 더욱 결정적인 건 지지율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은 50%를 훌쩍 뛰어넘는다. 투표 참가자 과반수가 지지했다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야권에 적대적이었던 서울 강남 지역에서도 40%대의 지지율을 얻었다. 지지기반이 안정적이다. 따라서 안정적인 정책 추진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조 후보 지지율은 30%대다. 그를 반대한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다. 시민이 보기에, 그는 보수 후보의 분열 덕분에 당선된 교육감이다. 게다가 교육정책은 이념과 입장,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특목고 정책을 놓고서도 계층과 지역에 따라 입장이 갈라진다. 지지기반이 약하면, 정책 추진이 쉽지 않다. 교육감 당선보다 더 어려운 시험대가 조 후보를 기다리고 있다. 이를 넘어서는 건 조 후보 혼자서만 감당할 몫이 아니다. 그를 단일 후보로 밀었던 민주진보 진영 전체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조희연 후보가 성공회대 제자인 방송인 김제동 씨와 손을 잡고 있다. ⓒ조희연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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