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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자동차 박혀 있는 스튜디오, 안에 들어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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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자동차 박혀 있는 스튜디오, 안에 들어가보니…

[현장]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방문기

아이들 키워본 사람이면 다들 안다. 아이들이 구르는 장난감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바퀴달린 물체는 확실히 사람의 눈길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 나이를 먹어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는 지친 몸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만이 아니다. 속도를 향한 욕망을 담는 그릇이고, 옷이나 구두처럼 자신을 치장하는 장신구이며, 조금씩 뜯어고치면서 재미를 느끼는 장난감이다.

그런데 늘 아쉬웠다. 거리마다 자동차로 미어터지는 나라에서, 장신구이자 장난감으로서 자동차가 지닌 멋과 맛을 제대로 느낄만한 곳은 찾기 힘들었다.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자동차 문화’가 없었다.

서울 강남 도산공원 사거리. 포드, BMW, 메르세데스 벤츠 등 수입차 전시장이 한데 몰려 있는 곳이다. 대한민국 자동차 1번지라 할 만한 이 자리에, 독특한 건물이 들어섰다. 자동차를 테마로 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자동차를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흐름이 생겨나는 걸까.

▲서울 도산공원 사거리에 있는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외벽.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5월 초에 문을 연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을 찾았다. ‘제네시스’ 자동차가 통째로 박혀 있는 외벽이 인상적이었다. 1층으로 들어가면, 공간이 탁 트여 있다. 벽에는 거대한 영상 캔버스가 걸려 있는데, 영국 미디어아트 그룹 ‘유나이티드 비주얼 아티스트(UVA)’의 작품이라고 한다. ‘The Rhythm of a journey(여행의 리듬)’이라는 제목인데, 달리는 자동차에서 옆면 창문을 열고 찍은 영상을 편집했다. 운전하는 사람은 흔히 앞만 바라보기 마련인데, 작가는 옆으로 흐르는 풍경을 카메라로 잡았다.

그 아래에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양궁과녁 같은 작품이 있다. ‘Principles of Motion(움직임의 원리)’라는 작품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1층에 아예 자동차가 없다는 점이다. 자동차 전시장 1층에 자동차가 없다? 그렇다. 안내를 맡은 직원은 “자동차를 파는 곳이 아니라 편하게 자동차 문화를 체험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안내를 담당하는 이들을 여기선 ‘구루(Guru)’라고 하는데, 카레이서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유니폼 역시 ‘자동차’라는 콘셉트에 맞춰져 있다. 자동차 소재와 부품을 활용해서 만든 옷이다.

2층에는 도서관과 카페가 있다. 자동차 전문 도서관인데, 2500권이 비치돼 있다. 사서의 설명에 따르면, 자동차 문화, 기술 등으로 분류돼 있고, 일반인이 구하기 힘든 희귀서적도 있다. 동시에 2층은 점심시간에 제일 북적이는 곳이기도 했다. 직장인들이 커피 또는 간식을 들면서 삼삼오오 모여 대화하는 장소로 제격이다.

이 건물 3층부터 5층까지가 실제로 자동차를 만나는 곳이다. 3개 층 창문에는 자동차를 뒤집어서 박아 놓았다. 밖에서 보면, 자동차 지붕이 튀어나와 있는 모양이다. 대신, 안에서는 자동차의 바닥이 보인다. 자동차 전문가가 아니라면, 차의 밑바닥을 자세히 들여다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흥미로웠다.

3층에는 고급차가 전시돼 있는데, 에르메스와 협업해서 만든 에쿠스 리무진, 제네시스 신형, 그랜저 하이브리드 등이다. 에르메스와 2년 간 함께 만든 에쿠스리무진은 전세계에 3대뿐이라고 한다.

4층에서 눈에 띈 건 천정에 설치된 파이프였다. 집 모양이다. ‘가족’이라는 콘셉트를 구현했다. 실제로 이곳엔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과 보육 담당자가 있다. 종이 재료로 자동차 모형을 만들 수 있고, 모형 자동차 경주도 할 수 있다. ‘자동차 문화’의 뿌리는 결국 즐거움일 게다. ‘바퀴로 굴러가는 탈 것’,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 아이들이 자동차를 갖고 노는 모습은 그걸 확인시켜 준다.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자동차’가 콘셉트인 까닭에 건물이 온통 금속 이미지다. 안내를 담당한 ‘구루’는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의 설계 콘셉트가 ‘0to0’”라고 설명했다. 무(無,0)에서 와서 무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자연에서 캐낸 철이 자동차가 되고, 자동차가 고철이 돼서, 재활용되는 순환을 건축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건물 전체를 은색 파이프로 휘감고 그 흐름이 S자 모양의 푸른 강판으로 이어지면, 그 위에 자동차가 서 있는 식이다.

서을호 서아키텍스 대표가 건물 설계를 맡았다.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개관식을 하던 날, 서 대표도 연설을 했다고 한다. 안내 책자를 펼치면, “현대 모터스튜디오를 만든 사람들”이라는 코너에 서을호 건축가의 이름이 있다. 현대자동차 CEO 이름 바로 아래다. 흔치 않은 모습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건축가는 자기 이름을 내세우기 힘들었다. 건축가의 아이디어는 건축주의 소유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만든 사람들’ 명단에 건축가 이름이 박혀 있다. 그게 반가웠다. ‘만든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세련된 자동차 문화의 출발점일 게다.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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