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첫 인상이 날카롭다. 가는 눈매와 검은 피부, 깡마르고 키가 큰 체형 때문인 듯하다. 겉모습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얼핏 말투까지 까칠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줄담배에 말술이다.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괜한 걱정이 들 정도다. 아니나 다를까, 젊은 날 엽총 한 자루 매고 전국 팔도를 돌아다닌 엽사 출신이다. 이 정도만 보면 얼추 첫인상과 맞아떨어지는 행적이자 이력이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마을’을 공통의 화두로 몇 마디 말을 섞다보면 인물평은 180도로 바뀐다. 말과 표정에서 마을공동체에 대한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의욕과 자신감이 넘친다. 게다가 부드러운 내면도 점차 드러난다. 그는 ‘돌’과 ‘별’을 사랑하는 아마추어 천문 동호인이다. 아예 살고 있는 와룡마을에 천문대를 마련해 별자리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다. 국내 유일의 마을 천체관측센터 플라타리움은 온전히 별을 사랑하는 그의 작품이다. 그런가하면 젊은 나이에 부도 위기의 용담농협 조합장을 맡아 정상화시킬 정도로 리더십과 위기관리능력도 뛰어나다.
‘마을 만들기’는 곧 ‘마음 만들기’라는 마을지도자
진안 와룡마을 위원장이자 진안마을주식회사 대표이사 강주현(60세). 이른바 국내 마을 만들기 선진지 진안의 마을 만들기 판에서 그를 빼놓고는 할 만한 얘기가 많지 않다. 진안군 마을 만들기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그의 이름은 한 군데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주역이라는 말이다. 마을이 살아야 농촌이 산다는 확고한 지론을 그는 신주단지 모시듯 움켜쥐고 있다.
“마을 만들기는 마음 만들기입니다. 도대체 마을 만들기가 무슨 말일까요? 아니, 이미 마을이 있는데 또 무슨 마을을 자꾸 만들라고 하는 걸까요. 이상하고 의아하지 않습니까?”
강 씨는 마을 만들기를 하는 이들을 만나면 이런 돌발질문을 던지곤 한다. 지금까지 제대로 답을 하는 마을주민, 공무원을 못 봤다고 한다. 이쯤에서 ‘마을 만들기’, 또는 ‘농촌지역개발사업’의 근본적인 의미와 목적을 다시, 진지하게 되새겨봐야 한다고 힘을 준다.
“지난 십수년 동안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이나 되는 막대한 정부의 개발사업비가 수천 곳의 마을에 투입됐어요. 그런데, 과연 이들 가운데 잘 된 마을은, 제대로 굴러가는 마을은 얼마나 될까요. 5퍼센트나 될까요. 다섯 곳이나 될까요. 그 정도도 안 될지 모릅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마을 만들기의 의미와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을 만들기는 곧 마음 만들기라는 진리를 애초부터 아예 몰랐거나, 이후 초심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미처 마음을 만들 준비도 하기 전에, 마을 만들기에 무모하게, 무계획적으로. 무책임하게 덤벼들었기 때문입니다.”
강 씨 나름의 확고한 마을 만들기 철학에 따르면 “마을 만들기는 곧 ‘우리’라는 한 마음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다. “‘이웃사촌’이란 농촌의 정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대부분 마을에서는 정부가 일방적, 시혜적으로, 거의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사업비로 건물과 시설부터 짓고 봤어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전에 사람들의 마음이 쪼개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요. 왜 우리가 마을사업을 해야 하는지 공유하고 공감하는 게 먼저예요. 비로소 그런 순정한 마음들이 한데 모아져야 마을공동체가 살아나고 농촌이 살아날 수 있어요. 그런 농촌은 되어야, 그 정도의 농촌 정서가 살아있어야, 그렇게 농촌다움의 향기가 자연스레 퍼져나가야 도시민들이 농촌에 제 발로 찾아오게 되는 거지요.”
농산물가공이야말로 농민의 활로라는 마을기업가
강 씨는 마을사업 중에서도 특히 ‘농산물 가공분야’에 힘을 쏟고 있다. 와룡마을의 좋은동네영농조합법인 대표로서 그렇고, 진안마을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도 마찬가지다. 농민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자 권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농산물 가공’이라고 생각한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원래 누가 만들었지요? 농식품부인가요, 식품공학 박사들인가요? 바로 우리 농민이잖아요. 우리 농민이야말로 농산물 가공을 잘 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있는 거잖아요. 앞으로 농촌이 잘 살기 위해서는 농산물 생산에 그쳐서는 어려워요. 부가가치와 소득을 높일 수 있는 2차 농산물 가공사업까지 챙겨야 해요. 농림부가 왜 농식품부로 이름을 바꾸었는지, 왜 6차 산업화를 강조하고 있는지 새삼 되짚어볼 필요가 있어요.”
이제 남다른 마을지도자이자 마을기업가 강 씨의 남다른 생각과 실천을 알아보는 남들이 많다. 지난 해 에는 대산농촌문화상 농촌발전부문 대상도 받았다. 대산농촌문화상은 교보생명 창립자 고 대산(大山) 신용호 선생의 뜻을 기리고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1991년 제정한 상이다. 가히 국내 농업, 농촌분야 최고 권위의 상이라 할만하다. 와룡마을 위원장, 진안군 으뜸마을가꾸기 추진위원장, 진안군 마을만들기 지구협의회장, 그리고 진안마을(주) 대표를 역임하며 지난 10년여 줄기차게 마을공동체에 헌신해온 공을 인정받은 셈이다.
요즘 강 씨는 진안마을주식회사 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기 집권하던 마을위원장 자리마저 마을의 후배에게 넘겨줄 정도로 매진하고 있다. 회사는 로컬푸드 사업을 목적으로 진안군의 21개 마을과 11개 단체, 농업인 68평 등이 공동출자, 2011년 농업회사법인으로 설립했다. 지난 3년간의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법인의 모태가 된 진안군마을만들기협의회에서 91회의 금요장터 개설, 진안시장 상설매장 운영 등의 노하우가 바탕이 되었다.
“로컬푸드 사업 등을 통해 마을의 소농과 가족농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이죠. 농가공 활성화, 안정적 유통망 확보, 체계적 도농교류 등의 업무를 15명의 직원이 분담하고 있어요. 농산물 꾸러미 배달사업을 이미 시작했고, 학교급식 지원센터로 진안군 전 학교에 친환경 급식재료를 공급하고 있어요. 산나물, 잡곡 등 독자브랜드 상품도 개발했고요. 북부 마이산 관광단지 내의 농촌테마공원에는 로컬푸드 식당, 직매장, 잡곡가공장, 농가공장, 발효 체험장 등 6차 산업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군민이 주인인 진안마을(주)는 마땅히 공공성과 수익성의 조화를 꾀하는 공동체회사를 지향하고 있죠. 수익금은 전액 지역에 환원할 겁니다.”
와룡마을을 진안을 대표하는 군 대표 마을로 키워낸 강 씨. 진안마을주식회사도 국내 대표 농업회사로 키워 내리라는 기대를 안팎으로 받고 있다. 하지만 그게 부담이 될 때가 적지 않다.
“그 지역의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은 그 지역의 주민이 소비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지산지소의 본모습이겠죠. 독일 같은 농업선진국에서도 유기농산물보다도 그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주민들이 더 선호하고 더 높이 쳐준다고 해요. 하지만 소비자와 시장이 적은 진안군의 경우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어요. 이웃 완주군 같이 적정한 내부시장이나 전주 같이 인접한 배후소비도시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강 씨는 약선식당 콘셉트의 로컬푸드 농가레스토랑, 로컬푸드 직매장, 흑돼지 육가공사업 등 진안군이라서 잘 할 수 있는, 경쟁력과 사업성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진안스러운’ 지역특화 상품을 기획하고 연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내년 봄이면 마이산 자락에서 강 씨와 진안마을주식회사의 성과를 도시소비자들은 직접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강 씨가 보여준 마을공동체사업의 성과처럼 남다를 것이다. 고객들은, 진안에서만 즐길 수 있는 먹거리와 식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치와 감동을 기꺼이 구매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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