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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한 대한민국호, '국가가 알아서 해주겠지'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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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한 대한민국호, '국가가 알아서 해주겠지'는 안 돼!

[프레시안 books] 힐러리 웨인라이트의 <국가를 되찾자>

지난 9일,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망언에 대해 KBS의 사과를 요구했으나 반응이 없자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청와대로 향했다. 왜 그들은 청와대로 향했을까? 이유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그들은 투표로 뽑은 국민의 대표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국민들은 자신이 선택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 그리고 국가행정을 수행하는 공무원들이 국민들을 대신하여 국민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며 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지난 9일, KBS 앞에서 김시곤 보도국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시민들. ⓒ프레시안(최형락)

그러나 문제는 바로 대의 민주주의에 의해 국가가 잘 돌아가리라고 너무나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세월호의 침몰 원인이 단순히 책임의식을 망각한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이익을 위해서는 안전도 무시했던 청해진해운의 배후 권력자 유병언 회장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이해관계와 결탁된 채 제대로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에게 있다는 것은 점차 분명해 지고 있다. 연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보여주듯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우리가 동시에 목격한 것은 국가라는 제도의 침몰"이었다. 그렇다면 침몰하는 국가가 알아서 국민을 보호해 주리라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닌가?

▲ <국가를 되찾자>(힐러리 웨인라이트 지음, 김현우 옮김, 이매진 펴냄). ⓒ이매진
이에 대해 힐러리 웨인라이트는 <국가를 되찾자>(김현우 옮김, 이매진 펴냄)에서 국민들의 직접적인 참여 없이 국가가 제대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애초부터 잘못이라는 답을 제시한다. 그녀는 "국가 기구들이 파편화되고 방치돼 있는데다 민주주의의 지렛대가 멈춰 있는 세계에서" 국가의 대표들이 제대로 공적 자원을 통제하고 증진시키기는 힘들다고 본다. 그녀에 따르면 대의 민주주의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성취되려면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대의자들에게 통제와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웨인라이트는 브라질의 예를 들면서 노동자가 국가의 대표가 된 경우에도 참여 민주주의는 예외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2002년 전직 자동차 노동자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는 노동자가 권력을 장악한 이상 더 이상의 대중적 참여는 필요 없다고 하였지만, 대중운동의 주체들은 정부의 의사결정에 자신들이 참여하는 못하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아나키스트들과 달리 웨인라이트가 이렇듯 여전히 국가(지방 정부 포함)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국가가 여전히 공공적 재화 및 공공 서비스의 제공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무교육, 보편적 보건 서비스, 공공 미디어와 정보통신 수단, 도서관, 공원, 자연환경 등은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다. 이런 재화들은 시장의 원리가 아니라 공공성을 통해 재분배되고 제공되어야 하는 공공재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국가를 포기하기보다 참여를 통해 국가와 국민의 대표를 통제함으로써 민주적으로 공공재를 재분배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국민들은 권력을 공유함으로써 공공재의 민주적 분배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웨인라이트가 참여 민주주의 현실의 첫 번째 사례로 꼽고 있는 것은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리의 참여예산제이다. 브라질 노동자당(PT)에 소속된 두트라와 같은 시장들은 이전까지는 닫혀 있던 지방 예산의 블랙박스를 민중적 기반의 의사결정과정(PB)에 개방하였고 이로써 대의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가 결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금 다른 형태이지만 영국 루튼의 남동쪽 마을에 있는 마쉬 농장에서 만난 엑소더스 사업단의 활동 역시 지역 공동체가 창조적인 방식으로 참여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 청년들로 이루어진 이 사업단은 NDC 재정지원 입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지역 청년들이 즐길 비상업적 레이브 파티를 조직하였을 뿐 아니라, 빈 건물을 재생해서 레이브에 온 사람들에게 주거와 일거리를 제공하였다. 이것은 지역 공동체 재생을 위한 정부 보조금을 어떻게 어디에 지출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지역 공동체가 지역 정부에 영향을 미친 참여 민주주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여성주의자인 나의 눈길을 끈 또 다른 사례는 '우리의 도시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뉴캐슬에서 벌어진 민영화 저항운동 중 가정요양 노동자들의 운동이었다. 이들은 요양 민영화 이후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이 제 시간에 요양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80대 노인을 침대에 눕히는 훈련도 받지 못한 16세 학생들이 서비스에 투입되는 등 요양의 질이 떨어지는 것에 분노하면서 회합을 열었고, 이에 공공 부문 노동조합(UNISON)의 뉴캐슬 시의회 지부는 가정요양 노동자, 노동조합, 이용자 조직 등을 규합하여 캠페인을 벌였다. 반민영화주의자들은 결국 시 전역에서 지지를 얻어냈고 이를 통해 요양 노동의 공공적 성격을 지켜냈다.

▲ 지난해 말, 철도 총파업 결의대회에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참여 민주주의를 통해 국가와 지방 정부의 권력을 공유하고 스스로 뽑은 정치 대표들을 통제하려는 이러한 시도들은 비단 외국의 사례에만 지나지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의 여러 지자체들과 교육청은 이미 지역 공동체들이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실시하고 있고, 한 대학의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에서 출발하여 결집한 대학생, 노동조합, 성소수자 집단 등의 연대는 철도 민영화 반대 운동을 이끌었다. 성패를 떠나, 이 모든 운동은 공공재와 공공 서비스를 어떻게 지출하고 제공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국민들이 국가에, 국가의 대표에게 직접적인 통제의 영향력을 발휘했던 참여 민주주의의 실천들이다.

물론 웨인라이트는 이 책에서 이러한 참여 민주주의의 어려움도 지적한다. 그녀는 행정당국의 톱-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참여 제도화가 오히려 참여율을 저하시킨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으며, 직접적인 참여가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도 주지시킨다. 그러나 이 책은 국가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수고로움을 무릅쓰고라도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국가에 통제력을 미치는 것임을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아마도 웨인라이트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대표가 알아서 잘 하리라는 순진한 믿음은 민주주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국가의 모순을 밝혀내기 위해서 국민의 대표에게만 맡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그들의 권력을 공유하고 그들을 통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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