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봄날이 지나가고 있다. 소중한 생명들이 연이어 우리 곁을 떠났다. 많은 사람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그 생명과 삶을 방치한 것 같아 온 국민이 가슴을 친다. 세월호의 학생들과 승객들의 죽음, 화재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중증장애인 송국현 씨의 죽음, 신안의 염전에서 적게는 1~2년에서 많게는 44년에 이르는 강제노역. 이들의 죽음과 인권침해는 모두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관련 기사 : 세월호 참사 다음날, 국가가 또 한 사람을 죽였다)
지방자치에서 장애인의 인권옹호와 자립생활이 중요한 이유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가 단지 선언적인 조항에 그쳐선 안 된다. 이 조항이 진정으로 유효하려면 그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복지 제도를 정비하고 국민이 함께 참여하여 구체적인 조치들을 실행해야 한다. 특히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존중받지 못한 채 차별받는 삶을 살아가도록 방치하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
장애인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조치가 없어 그들이 염전이나 화재 현장 같은 곳에서 소중한 삶을 훼손당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이번 6.4지방선거에서 우리는 '장애인의 인권침해 예방'과 '장애인 자립'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장애인의 인권침해 예방'과 관련하여 지방선거 출마자와 유권자들이 장애인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장애인 인권을 증진할 제도를 만들고, 이를 실천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와 함께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현재도 장애인의 인권을 증진하고,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하기 위한 몇 가지의 제도적 장치들은 있다. 인권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인권침해를 받은 장애인을 위해 '장애인 인권침해 예방센터'가 예방 및 구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나 인권침해가 발생할 경우 장애인들이 중앙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수 있다.
또, 몇몇 지방자치단체에 설립된 '장애인 인권센터'에서 인권침해 조사와 인권교육을 하고 있다. '장애인 자립지원 생활센터'를 통해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여 살 수 있도록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많은 장애인복지 제도들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현해야 하지만, 지방정부 차원에서 선행해야 할 일들도 많다. 특히 중앙정부가 하고 있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일들은 지방정부 차원에서라도 실현해야 한다.
5개 광역자치단체의 '장애인 인권센터'를 더 많이 확대해야
우선, 장애인의 인권침해 예방 및 구제에 대해서 살펴보자. 장애차별이나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장애인 인권침해 예방센터'의 조사나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한 진정만으로는 다소 부족하다. 시의성이나 적절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에는 장애 차별 및 인권침해 문제를 담당하는 조사관 수가 부족하다. 한 조사관이 맡은 담당 건수가 몇백 건에 이를 정도로 너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진정 사건에 대해 조사관이 현장에 실사를 나가거나 대면조사를 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지난 정부에 이어 현 정부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직과 활동을 확대할 의지가 없고, 오히려 기존의 인원들마저 줄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관들이 밤을 새워가며 진정 사건들을 처리하고 있음에도, 차별 진정을 신청한 장애인들과 장애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 사건 처리 속도와 방식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렇게 중앙정부 차원에서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현시점에서, 지방정부 차원에서라도 이러한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력한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있다. 예를 들어, 부산광역시는 '부산광역시 장애인 차별금지 및 인권보장 조례'를 제정하였다. 이를 근거로 '장애인 인권센터'를 설치하고, 센터를 통해 장애인 차별행위와 인권침해에 대한 사례를 접수하고 상담하며 인권침해 관련 조사와 현장지도 등을 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역시 '서울특별시 장애인 인권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이 조례를 근거로 장애인 인권침해와 관련한 상담 및 조사를 수행하는 '장애인 인권센터'를 개소하였다.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는 '장애인 인권센터'는 이밖에 대전광역시, 경기도, 전라남도에도 있다. 이들 5개 광역자치단체의 모범적인 사례는 더 많은 지방자치단체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자립생활 지원센터'의 인력과 재정 지원을 더 늘려야
다음으로,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해 고민해보자.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여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으로는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센터'가 있다. '중증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센터'는 '장애인복지법'을 근거로 시·군·구청장이 추천하고 시·도지사가 선정하여 운영하는 기관이다.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센터'는 중앙정부 차원의 일괄적인 서비스 기관이라기보다 지방자치단체의 의지와 노력이 더 필요한 기관이라는 점에서 '장애인 인권센터'와 유사하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적응과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자립생활 센터에 관한 조례' 등을 시행하고 있다.
숫자가 적은 '장애인 인권센터'와 달리, '중증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센터'는 2014년 5월 현재 전국적으로 564개소에 이른다. 그러나 '자립생활 지원센터'는 숫자는 많지만, 기능적 측면에서 부족함이 많다. '자립생활 지원센터'는 본래 자립생활을 위한 상담·정보제공·의뢰, 장애인의 권익옹호, 동료상담 및 사례관리, 자립생활 프로그램 운영, 자립생활 이념에 대한 연구 및 보급, 장애 청소년 역량 강화, 스포츠 및 문화 여가 활동, 이동 서비스,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관이다. 그러나 예산 부족으로 현재 대부분의 '자립생활 지원센터'가 하는 일은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을 연결하는 활동보조 서비스 제공에 그치고 있다.
'자립생활 지원센터'가 본래의 기능을 다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인력과 재정 지원을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에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의지를 갖고 앞장서서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장애인이 더 이상 차별을 받지 않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정책 개발과 행정 지원에 나서야 복지국가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복지국가를 위해 유권자가 깨어 있어야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선진국 진입이 가까워졌다는 한국 사회에서 복지국가의 실현은 고사하고 원시적인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제 우리 이웃인 장애인들이 자신의 생명을, 가족과 누려야 할 행복한 삶을 잃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꼼꼼하게 되짚어 보아야 한다.
이웃인 타인의 삶에 무관심하고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사회를 함께 만들어내려는 의지가 부족한 우리가 모두 함께 잘못을 통감하고, 책임을 나누어야 할 문제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지방선거를 맞이하여 우리 유권자들은 장애인 복지와 관련된 제반 문제의 해결에 앞장서려는 자세와 실천력을 두루 갖춘 후보가 누구인지 잘 판단하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행사하는 나의 한 표가 우리의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국가 전체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복지제도의 실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복지국가에 대한 요구를 올바르게 대변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후보자를 선출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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