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19일 대국민 담화에는 그동안 파편적으로 언급됐던 국가 안전 대책이 망라됐다. 그러나 효과를 가늠키 힘든 정부 조직 개편에 방점을 찍은 데다, 포괄적인 수용 의사를 밝힌 특검 등 진상 규명의 내용에 관해선 정부의 미숙한 초동대응이 누락돼 있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는 평가다. (관련기사 보기)
박 대통령이 '대통령 책임'을 인정하며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려 감정에 호소했으나, 이조차 '감정 과잉'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기존 대책 망라, 실종자 수색 와중에 해경 해체?
재난 대책과 관련해 이날 담화에서 처음 발표된 내용은 해양경찰청의 해체다. 그동안 해경이 담당해 온 수사와 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해양구조와 구난, 해양경비 분야는 총리실 산하에 신설되는 국가안전처로 이관시키는 계획이다.
그러나 세월호 실종자 수색 작업이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격적인 해경 해체를 언급함으로써 진도 현장의 수색 작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논란이 일자 박 대통령은 담화 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오늘 담화문에서 밝힌 해경 해체 발표에도 불구하고 첫째, 마지막 한명까지 실종자 구조에 최선을 다해달라. 둘째, 현장의 해경 지휘부 등 민관군 수색과 구난 체계에는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셋째, 특히 민간 잠수사들의 건강 관리와 사기 진작에 만전을 다해달라"고 했다고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안전행정부 역시 행정자치 업무만 남기고, 안전 업무는 국가안전처로, 인사와 조직 기능은 신설되는 총리실 소속의 행정혁신처로 이관키로 했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명했으나, 이번 조치로 안행부는 안전 관련 업무 자체가 공중분해 돼 사실상 행정자치부 시절로 돌아가게 됐다.
해양수산부의 해양교통 관제센터(VTS)도 국가안전처로 통합키로 해, 해수부도 업무와 조직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결국 해경과 안행부, 해수부에 분산돼 있던 안전 관련 기능을 모두 흡수한 국가안전처가 광범위한 재난안전의 컨트롤 타워로서의 임무를 수행토록 한 것이 박 대통령이 담화에서 강조한 조직 개편의 골자다.
국가안전처의 기능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안전 관련 예산의 사전협의권과 재해 예방에 관한 특별교부세 배분 권한을 부여키로 했다. 아울러 민간 전문가들의 제안을 수렴해 '안전혁신 마스터플랜'도 마련키로 했다.
그러나 국가안전처는 신설 계획이 처음 발표됐을 때부터 청와대의 역할이 불분명해 책임 피하기 논란이 이어져 왔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서도 국가적 재난 발생 시 청와대의 역할에 관한 명시적 방안은 빠져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소위 '관피아'로 대표되는 민관 유착에 대한 근절 의지도 밝혔다. 이는 공직 임용과 보직 관행을 개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퇴직 공직자 취업 제한 규정을 강화하고, 안전 업무나 인허가 규제, 조달 업무와 직결되는 공직 유관단체 기관장과 감사직에는 공무원 임명을 금지토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직자 윤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대신 민간 전문가들의 공직 참여 기회는 넓혔다. 고시 등 획일적 선발 방식에서 벗어나 직무 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전문가를 뽑는 체계를 만들어나가겠다는 것. 공직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순환보직제도 개선키로 했다.
박 대통령은 또 사기업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입힐 경우, 그로 인한 이익을 모두 환수하는 조치도 밝혔다. 이를 위해 사주의 재산 뿐 아니라 가족이나 제3자 앞으로 숨겨놓은 재산까지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 조치를 추진할 방침이다.
한편 이번 담화에 포함된 특별법과 특검 수용 의사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향한 대책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구상하는 특별법안의 골자는 "국가가 먼저 피해자들에게 신속하게 보상을 하고, 사고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토록 하는 것으로, 피해보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와 함께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과 관련된 특별법도 제안하며 정치권의 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민관기구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이 수사할 수 있는 조사권 부여를 요구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와는 차이가 있다.
박 대통령은 또 진상 규명의 방법으로 특검 도입을 시사했지만, "필요하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박 대통령은 "많은 국민들이 청해진해운의 성장과정에서 각종 특혜와 민관 유착이 있었던 것을 의심하고 있다"고 해 정부 측의 대응 미숙보다는 선사의 비리에 특검의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드러냈다.
"눈물, 감정의 과잉"
박 대통령이 내놓은 이 같은 조치들에 대해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장은 "무조건 폄하하거나 엉터리라고 할 건 아니다. 오늘 나온 내용을 추스르고 사회적, 정치적 의제로 만들어서 잘 키워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소장은 그러나 "오늘 나온 여러 가지 조치는 박 대통령의 선(先)의지를 가지고 한 게 아니라 여론에 떠밀린 것"이라며 "오늘의 담화는 민심의 승리, 민심이 따낸 것"이라고 했다. 그는 "힘 있는 사람이 여론 때문에 떠밀려서라도 개선책을 내놓고 터닝 하는 것이 정치의 힘"이라고 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는 "박 대통령이 언급한 것 대부분이 입법 사항"이라며 "정부조직법, 공직자윤리법, 김영란법 등은 국회에서 왜곡되거나 지연되거나 변질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책임자가 방향을 제시하는 인도자로 위치변경을 스스로 해버린 담화"라며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이 책임자로서 종아리를 먼저 걷는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개각 문제가 담화에서 거론되지 않은 점을 거론하며 "대통령이 개각 등 이런 조치를 취할 테니 국회도 여러 법안을 뒷받침해달라는 식으로 나왔어야 하는데 국회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이미 언급됐던 조치들을 종합한 담화의 주된 내용보다 이날 담화의 하이라이트는 박 대통령이 담화 말미에 '의인'으로 주목받는 일부 희생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눈물을 흘린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담화를 낭독했으며, 일부 대목에선 목이 메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가 끝나고 연단을 돌아 나가 카메라에서 사라질 때까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굳이 닦지 않았다.
국민적 비애를 통감하는 대목이었으나 "감정의 과잉"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철희 소장은 "국민들은 눈물을 흘릴 만큼 흘렸는데 대통령은 뒤늦게 눈물을 흘린 것"이라며 "연출을 심하게 한 것 같다"고 혹평했다.
그는 "대통령이 할 만큼 했다고 볼 수 있지만, 너무 과잉이었다. 지방선거 전에 세월호 국면을 정리하고 가자는 의도가 너무 강하게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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