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민이 봉인가? 안철수는 광주에서 철수하라!"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를 찾았다가 당의 전략공천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혔다. 야권 심장부인 광주에서 야당 지도부가 이처럼 '박대'를 받은 것은 이례적인 일로, 윤장현 후보의 전략공천에 대한 성난 지역 민심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당의 자체 추념식을 위해 광주시 망월동 국립 5.18 묘역을 찾은 두 대표는 참배 전부터 일부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했다. 당의 전략 공천에 반발해 탈당한 강운태, 이용섭 후보 지지자들과 '공정경선수호시민연대' 등 일부 단체들은 묘역 입구에서 피켓 시위를 진행하며 "새 정치를 한다더니 밀실, 야합 정치를 했다"고 당 지도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오후 2시께 두 대표와 의원단이 묘역 입구인 '민주의 문' 앞에 서자,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왔나, 당장 나가라"는 고성과 함께 욕설이 터져나왔고, 일부는 "개XX" 등 거친 욕설을 퍼부으며 두 대표에게 달려들었다. 양 측 사이에 몸싸움까지 벌어져 당직자들과 경찰이 두 대표를 에워싸고서야 간신히 이동할 수 있을 정도였다.
5.18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망월동 묘역에서 거친 실강이가 이어지자, 참배를 온 한 시민은 "싸울 거면 너그들 당에 가서 싸워라!"라고 혀를 차기도 했다. 한 광주 정치권 관계자는 "역대 지도부 중에 경찰이 둘러싸고 묘역에 들어온 지도부는 처음"이라며 씁쓸해 했다.
두 공동대표와 의원들이 '민주의 문' 안으로 들어서자, 참배객들이 방문할 때 흘러나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보훈처에 의해 올해도 공식 행사 제창이 무산된 이 노래는 흥분한 사람들의 욕설과 고성에 묻혀버렸다. 묘역 입구에서 추모탑까지, 두 대표는 사복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간신히 한 걸음씩 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안철수 대표는 침통한 표정으로 윤장현 후보의 손을 잡은 채 묘역 안으로 입장했다.
욕설은 묵념과 분향 순서에도 이어졌다. 당초 두 대표는 이날 추념식에서 정부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금지를 비판하는 내용의 발언과 추모사를 할 예정이었지만, 장내가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이 노래를 제창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결국 당의 추념식은 분향과 묵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서로 짧게 마무리됐고, 두 공동대표와 의원단은 행사 시작 20여 분 만에 서둘러 망월동을 떠났다.
이날 피켓 시위에 참석한 윤모(59) 씨는 "안철수의 전략공천은 DJ 때의 전략공천과 다르다. 누가 봐도 경쟁력도, 자격도 없는 안철수 측근을 낙하산 공천한 것"이라며 "이는 광주시민을 완전히 우롱한 밀실 야합이며, 시장은 시민이 뽑는 것이지 중앙정치에서 내리꽂는 것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번 공천 사태로 최근 민주당을 탈당했다고 했다.
냉소를 보내는 시민들도 있었다. 신묘역에서 만난 시민 박모(29) 씨는 "어차피 다 자기들끼리의 싸움 아니냐"면서 "정치인들이야 보여주기 식으로 참배를 왔겠지만, 다른 데도 아니고 묘역에서 저런 추태를 부리는 것이 보기 안 좋다"고 꼬집었다. 박 씨는 "먹고 살기 바빠 공천 문제엔 관심없다"고 했다.
이후 두 공동대표와 윤장현 후보는 '광주시민군 주먹밥 나눠주기 재연 행사' 참여를 위해 금남로와 충정로 일대를 찾았다. 젊은이들이 비교적 많이 모인 충장로 일대는 망월동 묘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많은 시민들이 안 대표에게 악수와 사진 촬영을 요청하며 환영했고, 안 대표도 이에 응하며 윤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한편, 5.18 민주화운동 34주년 기념식과 맞물려 '광주 민심 달래기' 차원에서 광주를 방문한 두 대표는 18일 있을 국가보훈처 주관 5.18 기념식엔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공식 기념곡 지정을 거부하고 공식 행사에서의 제창을 금지해 5.18 관련 단체들이 행사를 전면 '보이콧'한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항의 차원에서 참석치 않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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